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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l 16. 2023

비오는 새벽, 달갑지 않은 허기의 방문

고독의 집하장에서

새벽 1시. 밖은 비가 내리고 내일은 휴일이다. 와이프와 나와 의도하지 않은 허기, 이렇게 셋이서 24시간 여는 식당에 가기로 합의를 봤다. 허기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우리는 허기의 주장에 이끌려 집 근처 태국 쌀 국숫집을 찾아갔다. 비는 이런 밤을 위해 준비해두었다는 듯 세차게 퍼부었고 4차선 도로에서도 차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다. 빌딩의 살아남은 불빛들은 비와 어둠 속에서 유충처럼 꿈틀거렸다.


쌀 국숫집에는 6명의 손님이 두 개의 테이블을 점령하고 있다. 젊은 여자 4명과 한쌍의 부부.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한분. 스피커를 통해 태국에서 소비되는 대중가요가 흘러나온다.


부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같다. 토마스와 테레사의 일상처럼 식탁 위에서 어떤 희열과 모종의 불안이 뒤엉킨 감정을 교환하고 있다. 조용한 젓가락질 속에서 수도를 열어놓은 듯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네 명의 젊은 여자들.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떠든다. 한 명의 남자가 식탁 위에 오르면 이내 다른 남자가 연이어 등장한다. 기억인지 추억인지 모를 콘베이어 벨트를 타고 남자들은 차례로 대화 속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파타야 인근에서 잡은 생선처럼 해체되고 있다. 젓가락을 얹고 싶을 정도로 통쾌한 이야기들. 18.5금의 이야기들. 그녀들의 애환과 적의가 태국 음악에 맞장구를 친다.


주방의 아주머니도 예사롭지 않다. 마치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산장의 주인처럼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챙 밑의 눈빛으로 인사를 건넨다. 새벽의 가게는 원래 이런 느낌일까. 모든 것이 평범의 궤도에서 아슬아슬하게 이탈해 있다. 물컵이나 숟가락 마저도. 그 모든 것을 포함해 새벽의 가게는 고독의 집하장 같다.


그들의 무관심 속에 우리는 자리를 잡고 쌀국수 하나와 새우튀김롤을 주문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제사상 같은 음식을 마주한다. 그릇 속에서 영혼처럼 오르는 김. 다소 느린 젓가락질이 음식과 위장과 와이프가 경험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언제였던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자존감이 살아난다는 연구결과를 읽은 적이 있다. 반드시 비싼 요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긴 레이스 후에 먹는 한잔의 물이 선수들에겐 세상 무엇보다 달콤하듯 입맛에 맞는 거라면 오백 원짜리 어묵도 예외일 수는 없다. 순간을 혀끝의 희열이 충만한 감각으로 보내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가성비가 꽤 높은 것이다. 굳이 타인의 동의는 필요 없다. 인정을 구걸하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니까.


아아, 테이블 위에서 행복의 폭탄이 터지는 일에 나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테다.


4명의 여벤저스들은 추억의 남자들을 초토화 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2차인지 13차인지 모를 술자리를 위해 어딘가로 택시를 집어타고 간다. 한바탕의 소동 속에서 그녀들의 건투를 빈다. 부디 행복하기를.


토마스와 테레사는 여전히 조곤조곤 대화를 주고받는다. 우리가 식사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도 그들의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는다. 대화의 끝에는 비둘기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네 명의 여자들과는 달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의도적인 청취는 아니다. 아마도 새벽의 식당에서 어울리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누군가 얼마 전 모든 것을 버리고 남미의 파타고니아를 찾아 떠났다는.


와이프와 나는 허기가 사라진 거리를 포만감과 함께 걷고 있다. 녀석은 여유가 있으며 장난기마저 엿보인다. 허기는 특유의 칭얼거림을 발산하러 또 누군가를 찾아 이 빗속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잘 가라. 어느 비 오는 새벽에 느닷없이 찾아왔던 위장의 소박한 고통이여. 집으로 가는 길. 어두운 도로 위에 검은 고래 한 마리가 둥둥 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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