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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Oct 28. 2023

모기, 드론처럼 떠있었어

어느 저녁 불현듯 날아온 시상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모기 한 마리가 드론처럼 날고 있네. 거리가 좀 있어서 나를 보고 있는지 뒤를 보고 있는지 알 순 없었지만 가만히 공중에 떠 있었어. 얼핏 먼지처럼 보이기도 했지. 나를 표적처럼, 어떤 목표물처럼 노려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 작은 눈으로 말이지. 본능적으로 피냄새를 맡았을까. 힘든 일과를 끝내고 팥죽처럼 혼탁한 피가 돌고 있을 중년 남자의 그것을. 우리 집에 다다라 더 이상 모기를 상대할 이유가 없어진 나는 하마스 같은 녀석을 남겨두고 나왔네. 오해하진 마. 하마스를 매도하는 건 아니야. 잠시 고요한 집 같았을 엘리베이터에 침입한 인간은 나였으니. 엘리베이터 모기는 누군가 납작하게 만들어줄 때까지 엘리베이터에서만 살 거 같더군. 오고 가는 사람들을 상상하기도 힘든 작은 눈으로 노려보면서 말이지. 아니면 먹이를 발견한 흐뭇한 표정으로. 피가 1리터쯤 남아돈다고 해도 모기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어. 그야말로 동해에서 물 한 컵을 뜬 느낌이겠지만 말이야. 드론 같은 모기를 보니 오랜만에  관뚜껑을 열고 올라오는 시상 같은 게 떠올랐지 뭐야. 시상이래 봤자 맹렬한 에너지를 갖지는 못했나 봐. 고장 난 드론처럼 흔들거리고 있네. 고작 몇십 분. 길어봤자 몇 시간 후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엘리베이터 모기에게 이렇게 긴 글을 남기다니. 사람에게 충실해야지. 피를 조금 빨리더라도. 100리터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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