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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Sep 18. 2016

아주 먼 여행을 떠난 사람

죽음이라는 불온한 관념


죽음은 판타지일 뿐이고
이곳에는 영원히 당도할 리 없는
먼 곳의 불온한 관념일 뿐이었다.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노천카페에 앉아 있었다. 휴가를 낸 날이라 브런치로 햄샌드위치와 우유 한잔을 마시려던 참이었다.


햇살은 올해 들어 가장 화창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눈부셨다. 누군가 태어난다면 축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날, 그는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났다. 지상에서 사는 동안 익숙한 것들과 제대로 작별을 고했는지 짧은 부고 문자에서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가장 역할을 한 아내와 세 명의 자녀가 남아 있다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큰 아이가 이제 중학교를 갓 들어갔다고 들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났을 채소 같은 아이들이 그려졌다. 췌장암으로 3년 정도를 고생한 아버지를 여읜 아이들이 인식할 죽음에 대해. 날이 눈부신만큼 아이들의 마음은 더 깊게 어두워질 것만 같았다.


상가에서 보고 싶지 않은 풍경 중 하나가 어린 상주의 모습이다. 하나가 아니라 셋이라서 그나마 위안이 될까. 아마도 막내는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사진으로만 보이는 아버지. 한없이 측은하게 쳐다보는 지인들. 갑자기 모여 울음을 터뜨리는 친척들. 이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상황일 뿐이다. 나이가 들며 서서히 흐릿한 퍼즐이 저절로 맞춰지듯 그날의 불가해한 상황들이 마음속에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갈 것이다.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그와 깊은 인연은 없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자 마음속에서 긴 눈물이 흘렀다. 차라리 흐린 날이었고 비라도 퍼부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남역 부근은 생기발랄하게 살아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죽음은 판타지일 뿐이고 이곳에는 영원히 당도할 리 없는 먼 곳의 불온한 관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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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05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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