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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n 23. 2016

죽어가는 섬을 살린 현대미술

나오시마 섬의 재생 이야기


롯본기에 처음 간 날 카운터 보이드에 명멸하는 디지털 넘버들을 보았다. 거대한 전자시계가 눈앞에 놓여진 것처럼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각기 다르게 카운트되는 숫자들은 그 시각 도쿄를 걷는 사람들각자에게 남아 있는 수명 같았다. 나는 미야지마 타츠오라는 작가가 만든 이 작품을 반쯤 입을 벌리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이런 헬리코박터 같은 표정은 도쿄의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와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뇌가 받은 충격의 양상은 사뭇 달랐다.



일본의 시코쿠, 세토내해에 있는 작은 섬, 나오시마의 ‘작은 집’에도 미야지마 타츠오의 작품이 있다. 방안에는 물에 잠긴 수십 개의 LED 디지털 카운터가 있고 각기 다른 속도로 시간의 바다를 헤엄쳐 간다. 이 작품은 예술의 섬 나오시마에서 섬 사람들이 참여한 첫 작품이었다. 현대미술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현지인들은 예술가와 함께 직접 작품을 제작했다. 물에 잠긴 숫자의 속도를 각자 정하고 그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다. 내 꿈이 이뤄지는 속도, 우리집 뜰에 꽃이 피기까지 남은 날 등 저마다 사연있는 시간이 생겨났다.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은 5세 소년부터 95세에 이르는 노인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처럼 재미난 작품이 탄생하게된 배경에는 섬을 사들이고 예술가를 데리고 온 한 기업가가 있었다. 무모해 보였던 그의 꿈은 이 작품을 계기로 섬 전체로 확산되어 갔다. 일명 이에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 실험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섬의 가옥을 개조해 미술 작품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1997년 <시간의 바다> 카도야를 시작으로 7개의 가옥이 예술작품으로 변했다. 폐허가 된 낡은 집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활력을 되찾고 섬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산의 능선을 살리기 위해 지하에 세운 미술관


나오시마는 죽어가는 섬이었다. 근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도쿄와 같은 메트로폴리탄을 구축하기 위해 섬의 자원이 채취되었으며 용도 폐기된 자원은 다시 나오시마로 쓰레기가 되어 돌아왔다. 그 악순환 속에서 나오시마는 파괴되어 버려지고 있었다. 일본의 교육사업을 이끌던 베네세 홀딩스의 후쿠다케 소이치로는 폐허가 되어가는 섬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나오시마는 그의 부친이 일찍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장을 만들고자 했던 곳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명의 구축을 위해 희생되었던 세토내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는 1986년부터 죽어가는 섬에 예술이라는 호흡기를 달았다. 그후 현대예술은 섬을 치유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나오시마는 지금 일본에서 전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찾고 싶어하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후쿠다케의 꿈이 실현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대학생 때 나는 안도 다다오의 사진을 처음 보았다. 책꽂이를 배경으로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그의 표정은 소설가를 연상시켰다. 어두운 이야기를 잘 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명백한 건축가였다. 그가 지은 건물의 사진은 보는이를 종종 명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안도 다다오는 섬에 세개의 미술관을 설계했다. 그 중 지추미술관은 나오시마와 그 일대가 예술의 성지로 탈바꿈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산 중턱에 세워진 이곳은 산의 능선을 해치지 않도록 지하에 건립되었다. 입구조차도 아담한 담처럼 관람객을 맞는다.



빛을 주제로 한 명상적인 작품들


지추미술관에는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대지미술의 대가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이 있다. 세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 숙고하기도 하고 빛을 관찰하기도 하며 자신을 비춰보기도 한다.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작품은 빛이라는 공통주제를 가진다. 클로드 모네는 수련이라는 대장식화를 통해 시간의 연속성을 느끼게 한다.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에 따라 수련잎과 연못의 컬러도 시시각각 변한다. 제임스 터렐은 <오픈필드>라는 네모난 빛의 방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오픈필드>는 정면에서 보면 평면인 것처럼 보이지만, 곧 깊이 있는 공간이 숨어있음을 알게된다. 일종의 착시로 인한 인식의 교란을 유도하는데, 현대미술의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에 끌렸다. 오쿠 히로야의 <간츠>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신전 같은 공간에 놓인 거대한 화강암 구는 사자(死者)를 불러오는 간츠의 검은구와 유사하다. 검은 구를 중심으로 황금빛으로 도색된 긴 나무토막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도열해 있다. 강력한 기하도형들이 만드는 분위기는 가운데가 직사각형으로 뚫린 천장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으로 인해 단순한 기하도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연광이 변함에 따라 구의 색깔과 황금빛의 농도가 변한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자연의 변화에 따라 어떤 작품으로 재탄생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안도 다다오와 월터 드 마리아의 감각은 가히 천재적이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으로 폐허가 된 섬이 또 다른 인간의 노력으로 어떻게 재생될 수 있는지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더이상 쓰레기는 안돼


나오시마에는 베네세하우스라는 숙박시설이 있다. 이곳은 호텔이자 미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통합공간이기도 하다. 후쿠다케는 전세계의 예술가를 초청해 나오시마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최초로 제의를 받은 아티스트는 야니스 쿠넬리스로 그는 나오시마로 떠내려오는 쓰레기를 모으고 납으로 말아 김밥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층층이 쌓아올렸다. 그 무게 때문에 작품은 매년 조금씩 키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리처드 롱은 더 재미있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도 마찬가지로 세토내해로 떠내려오는 나무들을 주워 모아 미술관에다 거대한 원을 만들었다. 나무들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쓰레기’로서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 쓰레기들이 모여 무언의 함성을 지른다 '쓰레기는 이제 그만(No more trash)이라고'
 



I Love 노란 호박


현대미술의 추적자가 아닌 이상, 일반 관광객이 나오시마에 오는 이유는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을 보기 위해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선착장이라는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하는 노란 호박은 섬에 색다른 생기를 불어넣는다. 지추미술관과 베네세하우스 그리고 해변에도 많은 예술작품이 있지만, 노란 호박은 이제 나오시마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 되었다. 여행객들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호박을 끌어안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끊임없이 호박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후쿠다케와 안도 다다오가 죽어가는 대지에 물을 뿌리고 거대한 나무를 심었다면, 쿠사마 야요이는 그 나무에 색색의 꽃을 피운 작가이다. 노란 호박은 망망한 세토내해 한가운데서 나오시마를 찾아오는 여행객에게 밝은 모습으로 섬의 아름다운 재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람들은 죽어가는 외딴섬에 미술관을 짓겠다는 계획이 어쩌면 돈이 넘쳐나는 기업가의 망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은 현실이 되었고 후쿠다케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듯 자신의 꿈을 주변 섬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의 수많은 예술가와 행정가가 그 비결을 찾기 위해 매년 이곳을 방문한다. 물론 나오시마가 어느 국가에서나 실행해볼 수 있는 보편적인 사례가 될 수는 없다. 너무도 많은 재화가 필요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열정과 천부적인 재능에 공익적인 가치관까지, 그야말로 우주적인 기부와 투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시마는 예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선례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또 그 선례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지난 11월 서울을 찾은 베네세 홀딩스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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