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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Aug 15. 2017

그녀는 아름다운 무당

정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니까


무당을 보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연예인처럼 예뻤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 무속인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동생 취업문제였는지, 아버지 건강문제였는지 잃어버린 강아지 때문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머니 운전사 노릇을 하며 경기도 외진 곳 어딘가로 찾아갔다. 당시는 내비게이션도 없던 때라 지인이 그려준 지도만 가지고 운전을 했다. 차라리  짐이 가지고 있던 보물섬 지도라면 재미라도 있었을까,


내가 가진 지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대한항공 광고스러운 그림이었다. 급기야는 지도를 버리고 물어물어 기적적으로 무당이 있는 집으로 갔다(거의 신들린 자가 땅속에 묻은 방울을 찾아내는 격이었다).

무당의 집은 귀신이 트리오로 튀어나온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흉흉한 폐가는 아니었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4층 빌라였다. 맨 꼭대기층에 불상을 모시고 있었다. 헌데 불상이 큰 절에 있는 것과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미소가 야릇했으며 가슴 부위도 훨씬 더 발달한 듯 보였다.

" 오늘 안 보신답니다."

그런데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안내하는 사람이 다짜고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무당은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뭐라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이런 야박한 경우가 있나, 나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쳐들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 우리 사정이 딱하니 이번 한 번만.."

이라고 사극 흉내를 내며 방 안에 앉아있는 무당을 보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연예인처럼 예뻤다. 왜 이런 곳에서 색동저고리를 입고 방울을 흔들고 앉아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범한 옷을 입은 그녀를 놀이공원 같은 데서 보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전화번호를 받아냈을 것이다.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냅다 거실을 향해 방울을 던졌다. 뭔가 부정을 탔다는 눈치였다. 무속인이 싫어할 만한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닌데 뭘 알고 이럴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날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연출인지도 몰랐다. 처음 온 손님에게 강한 믿음을 갖게 하는 베팅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지만 그럴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우리는 누가 봐도 빌딩 서너 채를 가진 강남의 부호가 아니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모자였으므로.


한참 후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몇 년 후라 무당은 이전의 기억은 없는 듯했다. 그사이 그녀의 미모는 빛이 조금 바래 있었고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풍파를 겪은 듯이 보였다. 연신 담배를 피워댔는데 그 탓인지도 모른다.


그 여자가 방울을 흔들자 눈은 흰자위로 뒤덮였다. 마치 자신의 뇌 속의 메시지나 영상을 눈을 뒤집어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 행동을 몇 번 반복했는데, 놀랍고 신기했지만 무섭기도 했다.

" 경찰서에서 전화 온다."

대뜸 알듯모를 듯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뭔가를 조심하라는 투로 이야기했다. 좀처럼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도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한마디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들의 입을 벌린 연기가 그날 나를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몇 달이 지나 정말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의 와이프와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 논두렁에 차를 박아버린 것이다. 캄캄한 밤이었고 아무리 전후진을 반복해도 차는 빠져나오질 못했다. 급기야는 근처 공장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처음 당한 사고고 회사 차라 보험을 부를 생각도 못했다). 영화 <옹박>의 주인공처럼 생긴 남자가 따라 나왔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빤히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닌가.


관중이 있어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이 어이없는 차가 터닝메카드라도 된 듯이 갑자기 논두렁 위로 튀어 올라왔다. 남자는 자신이 염력을 발휘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눈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역시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나는 얼떨결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대상이 옹박인지, 터닝메카드인지, 떨고 있는 여자 친구인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컴컴한 밤, 그가 마음속으로라도 격려를 해준 덕분이라고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안았다. 당시 와이프는 무척이나 긴장했고 어둠은 살아있는 실체처럼 두려웠다. 그런 이유로 앞뒤 가릴 것도 없이 황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전화가 온 것은 다음날이었다. 지방 경찰서라며 차번호를 대며 차주를 찾았다. 물론 번호는 회사차였다. 내가 전후진을 반복하며 갈아버린 곳은 옥수수밭이라는 것이다. 너무 어두 웠고 경황이 없어 당시는 알 수 없었는데 옥수수가 제법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피해를 주고 도망 나오듯이 했다는 사실이 아찔했다. 역시 그 남자는 눈을 찌푸려가며 번호판을 외운 것이다. 그때 내게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 남자가 야속했지만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모든 잘못은 내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그날로 내려가 밭주인에게 사과했고 손해배상을 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나를 쓰러진 옥수수처럼 세워놓고 장시간 꾸짖긴 했지만 또 너그럽게 용서해주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동안 옥수수밭을 지날 때면 어딘가에서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무속인이 나를 지켜보는 서늘한 느낌과 함께. 그리고 염력 옹박이 쓴웃음을 지으며 112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 부록으로 따라다녔다.


그 후로 무속인을 찾아간 적은 없다. 그리고 그런 현상들을 잘 믿지도 않는다. 그때의 불가사의함은  세상과 내 주변이 어수선하게 돌아가던 때라 실재보다 심리적인 영향이 강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려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의 옥수수만큼이나 자라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사람 키보다 훌쩍 큰 옥수수밭 안에서는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무수히 벌어질 것이었다.

물론 옥수수를 털끝만큼도 미워하지 않으며 버터를 발라 구운 옥수수를 맛있게 먹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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