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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Aug 09. 2017

폐교탐방

한여름, 매미소리 가득한 곳에서


대여섯 명 남은 아이들은
겨울을 이겨낸 채소 같지만,
그뿐이다.




어머니가 사시는 광주 마을에는 폐교가 하나 있다. 어머니댁에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가면 가끔 그 폐교에 들르곤 한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대한 대책 없는 낭만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묘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광주 마을에 있는 학교는 말 그대로 폐교다. 예전에 초등학교로 사용했을 법한데, 인적이 끊어져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과 예닐곱 개의 교실을 가진 낡은 교사가 있다. 한 동으로 되어있는 교사의 유리창은 군데군데 깨져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아마도 관리하는 이가 쇠사슬과 자물쇠를 문고리에 걸어 둔 것 같다. 쇠사슬의 두께만으로도 여간해서는 돌아오지 않을 듯한 관리자의 의지가 느껴진다.
교실에서는 먼지의 입자들만이 주인인양 떠다니고 있다. 익숙한 과목이 나열된 시간표도, 아이들이 흘리고 간 문구류도, 그 흔한 칠판의 낙서도 보이지 않는다. 교실은 마치 어떤 실험을 위해 텅 비워놓은 공간처럼 보인다.


잡풀이 우거진 운동장을 거닐다, 폐교가 되는 과정을 상상해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근 주민들이 도시로 떠나간다. 아이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그럴수록 주민들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학년별로 분반할 필요가 없어 아이들은 한 교실에 전부 모인다. 마지막 남은 선생은 열심히 풍금을 두드린다. 고학년들은 선생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어른들은 모두 언젠가 문을 닫을 학교를 애처로운 환자처럼 바라본다. 어느 날 교육청으로부터 날아온 공문서 하나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생은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고 아이들에게 그럴듯한 작별인사를 생각한다. 대여섯 명 남은 아이들은 겨울을 이겨낸 채소 같지만, 그뿐이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로, 폐교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번듯한 학교를 찾아 떠나갈 것이다.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에 겨울이 찾아온다. 그리고 아무도 반겨줄 이 없는 눈이 내린다. 벤치며, 철봉이며, 운동장에 수북이 흰 눈이 쌓인다. 이따금 생각난 듯 교육청의 관리직원이 다녀가지만, 폐교의 모습으로 충실히 있는지 확인할 뿐이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수돗가며, 공을 기다리는 골대, 물이 뿌려지기를 기다리는 모래밭은 기다림을 멈추고 긴 동면에 든다. 봄이 온다고 해서 깰 일이 없는 기나긴 잠을 자는 것이다.


폐교에 다녀오면 시간이란 관념이 왠지 물리적인 실재보다 조금 더 흘러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곳은 침입자들에게 추억을 주다 못해 더 깊은 무언가를 소비하게 만든다. 문이 닫힌 이후로 남겨진 공기와 함께 그곳에 발을 들이는 모든 것들이 미세하게 부식되어 간다.


한여름, 매미소리가 장악한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낡은 교사는 내 안에서 사라져 가는 무거운 기억들과 무척이나 닮았다. 어딘가 인생이 꼬여가는 먼 친척을 생각나게 한다.
 




heat05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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