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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ul 24. 2017

세상의 무명들을 위하여

노래하다


그의 노래는 훌륭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무명가수의 가치는 거기까지였다.
비가 내리면 사라져 버리고 마는.




평창의 한 식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날 나는 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마련한 야외무대에서 무명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식당은 기업형으로 한꺼번에 수백 명이 밥을 먹을 정도로 컸다. 가수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명이겠지만 어딘가 성인 만화의 주인공 이름을 빌려온 듯했다. 그의 트로트는 구성지고 맛깔스러웠다. 애절했으며 한편으론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물론 트로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음악의 한 장르로 인정할 뿐. 하지만 그날 가수의 노래는 멋드러졌다. 그곳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느꼈음을 확신한다.


가수는 키가 큰 남자였고 신명 나게 기타를 쳤다. 의상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군 단위의 성인나이트에 어울릴법했지만 노래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이가 50이 넘은 듯이 보였다. 좋은 스폰서를 만나고 실력 있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붙었다면 어쩌면 그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평창군의 소읍에서 소불고기 냄새를 맡아가며 노래하는 대신 고급 호텔의 디너쇼에서 화려하게 실력을 과시했을 것이며 연말 시상식에 단골로 초대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를 대하는 운명은 인색하기 그지없었고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얄궂게도 노래 몇 곡을 하는 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간이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식당 안으로 들어가거나 주차장으로 가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그의 노래는 훌륭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무명가수의 가치는 거기까지였다. 비가 내리면 사라져 버리고 마는.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할당된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숙련공처럼 기타를 쳤고 사람들이 떠나간 빗속의 벌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남아있던 청중들에게 짧은 감사의 인사를 던졌다. 늘 그래 왔다는 듯 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담백한 인사였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악기와 앰프 등의 기자재를 주섬주섬 챙기며 무대를 정리하고 어딘가로 떠나갔다.


그 후로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무명들의 기를 꺾겠다는 듯이 퍼부었다.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차를 몰고 나오다 그가 서있던 무대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이름 모를 가수들이 무수하게 서있었을, 그리고 설 자리였다. 음표 몇 개를 잃어버린 노래가 떠도는 듯했지만 허름한 무대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무명들에게 어떤 의지를 심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담백하면서도 굳건한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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