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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an 27. 2017

아빠의 문신

혹시 조폭이신가요



호랑이 한 마리가
물속에 잠겼다 올라왔다 하며
축축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목욕을 거의 집에서 하는 편이라 동네 목욕탕엔 가지 않는다. 그저 대중탕의 목욕문화가 습관이 안 되서이고 번거롭기도 하고 그런저런 이유 때문이다.

휴가를 맞아 아들 녀석과 물놀이 공원에 왔으니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금기를 깨고 사우나에 들어갔다. 탕에 들어가도 녹차티백 건져내듯이 금방 튀어나갈 마음이었다.


헌데 온몸에 문신을 한 깍두기 형님께서 초등학생 아들(아들이 아니길 바란다)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탕 안으로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요즘 문신이야 워낙 대중화가 된 터라 거부감을 갖는 게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깍두기 형님의 등, 배, 허벅지에서 자웅을 겨루고 있는 컬러풀한 용과 호랑이는 건전한 문화적 코드와 트렌드의 범주에 넣기에는 어두운 세계의 야생성이 너무나도 강해 보였다. 한마디로 딱 조폭의 그것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조폭이라니. 몸에다 동물원을 구현한 건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는 아닌 것 같은데...온몸을 휘감는 문신의 크기며, 그림이 주는 위압감이며, 함께 온 아이며 처음 마주하는 장면에 잠시 내 머리는 혼란스럽기까지 했다(타투이스트가 아닐까, 혹은 그 방면에 종사하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한편으론 훗날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 를 맞닥뜨리게 될 아이에게 연민이 생기기도 했다.


내 오지랖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여느 아이들 못지않게 발랄하게 목욕탕을 누비고 다녔다. 욕탕에서 깍두기 형님은 내 맞은편에 앉았는데 흘끔거리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유유히 목욕을 즐기고 계셨다. 몸을 뒤틀거나 움직일 때마다 가슴에 새겨진 호랑이 한 마리는 물속에 잠겼다 올라왔다 하며 축축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경 끄시라고.


오랜 기간 징역을 사셨던 신영복 선생께서는 그의 유작 <담론>에서 문신을 사회의 거대한 폭력적 메커니즘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는 '불행한 자들의 가난한 그림'이라고 했다. 문신이 패션의 한 코드로 자리잡기 이전, 교도소에서 만난 이들이 그려내는 모습만 보면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베컴을 비롯해 수많은 스타들의 그것이 선생께서 언급하신 범주에 들어갈 리 만무하다.


문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다. 가치중립적인 문제가 되었다는 뜻이다. 허나 그것이 폭력의 세계에서 심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거나 누군가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한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이 환호하는 스타의 아들과 조폭의 아들이 같은 시선으로 아빠의 문신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두 아이의 아빠로서 목욕탕에서 천진난만하게 놀던 아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빠로서 내 앞가림도 서툰 주제에... 물론 깍두기 형님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자상한 아빠고 나는 편견에 꽉 차 그를 바라봤는지도 모른다. 또 그가 내 생각만큼 어두운 세계에 어둠을 더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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