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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an 21. 2017

겨울밤, 따뜻한 이야기

마음의 난로를 켜며



예전에 알던 이들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는 건
마음이 훈훈해지는 일이니까.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오는데 창밖은 홋카이도나 겨울날의 아키타를 연상시켰다. 건물과 도로 주변으로 흰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사진을 찍어 남기고 싶은 풍경들이 철로를 따라 무수하게 지나갔다. 등교하는 아이들, 길게 늘어선 자동차, 점멸하는 신호등은 모두 완벽한 겨울 풍경을 위해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소품처럼 보였다.


예전 출판사의 일 때문에 알던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다. 7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듯하다. 그녀는 변한 게 없어 보였지만 한편으로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았다. 번역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는 것이다. 종이를 매만지며 책 읽기에 몰두하던 사람이 낯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하다니, 언뜻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그녀는 누구보다 조용히 원고를 가다듬은 일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신설동 어딘가에 오픈한 게스트하우스는 평일에도  빈방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고 한다. 왜 진작 이 일을 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막심하다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간간이 들어오던 출판사 일은 이제 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막 왕년의 일을 다시 해보려는 사람 앞에서 그 일을 출구 없는 미로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브라보. 하지만 나는 아낌없이 축하해주었다. 예전에 알던 이들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는 건 마음이 훈훈해지는 일이니까.


좋은 대학에 들어간 딸 이야기. 새로운 나날들에 대한 걱정과 기대. 기억이 나지 않는 잡담들을 나누고 그녀와 헤어졌다. 눈은 거의 녹아 도로는 물을 쏟아놓은 듯 질척거렸다. 하지만 동대문 주변의 사람들은 다시 추워질 밤을 대비하기라도 하듯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오늘 밤은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다고 아이폰의 날씨가 경고하듯 일러주고 있다. 도로는 다시 얼어붙고 바람은 날 선 도끼처럼 불어올 것이다. 겨울이 완벽한 겨울이 되고 있는 날들.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는 건 겨울밤에 나눌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이야기 같다.






heat05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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