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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Jan 08. 2017

도쿄라는 이름의 열정

인상적이었어. 안내방송이




영화가 끝나자 문득
도쿄에 가고 싶어졌다.



아이들과 같이 일본 애니 <너의 이름은.>을 보았다. 아들 녀석은 대략 서른여덟 번 정도 엉덩이를 들썩이며 몸을 뒤틀었고 열두 번쯤 뒤를 돌아보았다. 늦은 시간이라 앞이고 뒤고 사람은 없었다. 딸아이는 제법 진지하게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인 미츠하의 동생에게라도 감정이입이 된 건지 재미있어했다. 영화의 모티프는 <인터스텔라>의 신화적 형태 정도로 생각된다. 딸과 아버지가 아닌 이번에는 일면식도 없는 남녀라는 설정으로.


영화가 끝나자 문득 도쿄에 가고 싶어졌다. 이상한 페티시 같지만 주인공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지하철의 안내방송에서 다음 역명을 호명하는 "요요기, 요요기"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며 잊었던 추억을 불러냈다. 벌써 15년 전이다.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가끔 가던 신주쿠역 근처의 조그만 스테이크 집이 그대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원대 초반으로 먹기엔 너무나도 맛있는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었는데...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내겐 무엇보다도 지하철에서 다음 정차할 역명을 일러주는 성우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이케부쿠로는 굵은 바리톤의 목소리를 가진 군인이, 시부야는 아주 가는 목소리의 게이샤가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이케부쿠로를 향해 진격해야 할 것 같았고, 시부야에서는 유곽의 거리가 펼쳐질 듯했다.


어떤 지역을 처음 가는 사람에게 아주 사소한 것들이 그 지역의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곤 한다. 내게는 도쿄 지하철의 안내 방송이 그랬다. 같은 노선에서 왜 그런 차이를 두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물론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케부쿠로나 시부야를 성별로 구분할만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으니.


가끔씩 도쿄가 그리워진다. 그곳에서 유학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숨겨놓은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고작해야 열댓 번 일 때문에 갔던 곳에서 심정적인 분신이라도 나눠놓고 온 듯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 아마도 걷다가 쓰러질 정도로 힘든 줄도 모르고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내게 애틋한 감정이 생긴 듯하다.


깜깜한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호텔방에서 도쿄타워를 내다보며 뭔가를 이룰 것 같은 예감을 가졌던 10여 년 전의 날들이 추억이 된 지금, 일본 애니 한편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도쿄라는 이름을 가진 열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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