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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밥친구 미드 <오피스>

<The Office> 방영 20주년을 축하하며...

by 유현

오늘이 미국 방송사 NBC에서 <The Office>를 방영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란다. 영국 BBC에서 방영한 <The Office>가 원작이지만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미국 버전의)<The Office>가 국민 시트콤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방영을 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현재까지 두터운 팬층을 소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다소 마이너 한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미국 시트콤' 하면 제일 먼저 <프렌즈>나 <모던 패밀리> 같은 대중적이고 건전한(?) 작품을 떠올리곤 하므로.

때는 2022년,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를 해야 했을 때 나는 3주 만에 <오피스>의 시즌 9개를 모두 시청한 기억이 있다. 마치 길티 플레져처럼 다가온 <오피스>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되었고, 나는 그 후로 <오피스>의 엄청난 팬이 되었다. 웃기지만 나는 뭐랄까, 내 팬심에 대한 어떠한 자부심까지 갖고 있다. 실제로 나는 <오피스>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대학시절 전공시간에 <오피스> 작품으로 모큐멘터리 시트콤이라는 장르를 분석하고 발표를 하기도 했다. 내가 '왓챠'를 구독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 또한 <오피스>를 시청하기 위함이다. <오피스>는 이제 나에게 분명한 컴포트 쇼이자 밥친구가 되었다.

"도대체 네가 말하는 <오피스>의 매력이 뭔데?"라고 궁금해할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1. 미워할 수 없는 World's Best Boss, 마이클 스캇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오피스>의 초반부만 보고 하차해 버린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하고 짓궂은 농담을 쉬도 때도 없이 날려버리는, '던더 미플린' 회사의 스크랜튼 지점장 '마이클 스캇'을 당신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블랙 코미디의 매력 아니겠는가. 나를 방해하는 아무런 웃음 트랙 없이, 내가 웃고 싶을 때 마음껏 웃을 수 있고, 내 뒤틀린 유머 감각으로부터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또는 나는 제발 시즌2까지만 참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이클이라는 인간이 가진 진가는 시즌이 지날수록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이클의 천진난만한 긍정 에너지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절박한 욕구는 그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어준다. 가끔 나오는 이타적이고 따뜻한 모습이나 회사 직원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에게 어떠한 교훈까지 얻어가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은 내 최고의 길티 플레져다.(That's what she said.)


2. 오피스 내 최고 러브라인, 짐 & 팸

솔직하게 말하자면, 짐과 팸의 러브라인은 내가 오피스를 좋아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다.(원래 어떤 작품을 볼 때 러브라인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오피스> 작품 내에서 가장 눈여겨볼 러브라인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짐과 팸이 될 것이다. 친구 사이에서 연인 사이, 그리고 부부가 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여러 시즌에 거쳐 관찰하게 된다. 짐과 팸의 연애사가 이토록 많은 오피스 팬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사랑이 특별하게 엄청 로맨틱하지는 않아도 가장 현실감 있고, 공감되고, 진솔하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베스트 프렌드에서 소울 메이트로, 때로는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서로 함께 그려나가는 행복한 미래, 그런 것들을 다들 마음 한편에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오피스>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짐과 팸의 사랑 이야기가 자신이 <오피스>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하기도 했다.


3. 통통 튀는 사이드 캐릭터들

오피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뽑는다면 첫 번째로는 마이클, 그다음은 드와이트라고 말하겠다. 드와이트는 사이드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메인 캐릭터만큼 큰 분량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존재감이 크다. 비트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드와이트는 사회성이 없어 보이는 냉철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사실 굉장히 충성심 있고 의리 있는(심지어 로맨틱하고 관계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나는 드와이트의 뜬금없는 대사 한 마디에도 자지러지기도 한다. 드와이트뿐만 아니라 잰, 케빈, 켈리, 스탠리 등 <오피스>에 등장하는 모든 사이드 캐릭터들이 특색 있고 각자의 아이코닉한 성질을 갖고 있어 재밌다.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메인 캐릭터에게만 조명이 쏟아지는 경우도 있는데, <오피스>는 사이드 캐릭터에게도 존재감을 많이 불어넣었다. 이것이 오피스 팬층을 두텁게 만든 데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메인 캐릭터와 사이드 캐릭터 사이의 조합이나 갈등 또한 스토리 전개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청자는 사이드 캐릭터의 존재를 잊어버릴 틈이 없다.


4. 수많은 밈, 관용구, 클립 영상의 출처

<오피스>는 단순히 TV 쇼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밈의 소스가 되었다. 웃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상황에서 튀어나온 대사, 장면 등은 아직까지도 인터넷에서 밈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리액션 비디오나 숏폼 영상에서도 종종 랜덤 하게 쓰이기도 한다. <오피스>는 그 자체로 문화적 주춧돌이 되어 블랙 코미디와 모큐멘터리 시트콤의 레전드로 남았다. 오피스가 방영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농담의 코드나 대사, 연출이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일상적인 상황에서 공감을 많이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웃음 장치를 사용했음이 아닐까. 나는 <오피스>가 모큐멘터리 시트콤인 것이 좋다. 이 점 또한 <오피스>가 유행을 타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된 것에 한몫을 한 것 같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웃음은 바뀌지 않았다. 오피스는 20년 동안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효자 프로그램이다.


<오피스> 20주년을 맞이하여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자들이 뽑은 아이코닉한 모먼트를 모아놓은 영상을 게시했다. 사실 이 모먼트들은 앞뒤 맥락을 알아야 더 웃기게 느껴지지만, <오피스>를 맛보기 체험해보고 싶다면 이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추천한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TV 쇼가 있다는 것은 행운에 가까운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생각이 많을 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을 때, 조금의 뇌 에너지도 쓰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오피스>를 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복잡한 생각들과 고민들도 <오피스>를 볼 때만큼은 잊을 수 있다. <오피스>에 나오는 골 때리는 상황들을 보고 있자면 내 걱정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피스>는 나에게 단순히 미국 시트콤이 아니다. 내 잡념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가장 빠른 피난처이자 가장 편안한 스크린 속 가상의 세트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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