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3부작을 시작하며
글을 읽는 중입니다 - 24겨울
올 겨울은 참으로 삼엄한 겨울이 되어버렸습니다.
과거 유물 정도로 취급되던 '독재', '계엄령' 이런 단어를 다시 현실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여기에 갑작스러운 큰 사고로 인한 슬픔까지 더해질 줄은 몰랐네요.
사고로 떠난 분들과 그 분들의 남은 가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꽤 오래 전부터 이 세 권의 책을 같이 서평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준비했습니다.
인생과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으로 선택해 본 체코 3부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 평범한 인생 - 카렐 차페크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체코 3부작으로 이 책들을 선택한 건 체코의 지형적 위치가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에 있는 중유럽 국가로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역사적 풍파에 자주 휘말렸던 나라,
그러면서도 자주독립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한 나라가 바로 체코이기 때문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신인 보헤미아왕국은 수백 년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영토였습니다.
제국 내에서도 가장 근대적이고 산업화되었던 이 지역은 1차대전이 끝난 1918년에 모라비아, 슬로바키아, 실레시아 등을 통합한 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인 51%, 슬로바키아인 16%, 독일인 22%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은 체코인 외의 민족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으나 소수 민족은 처음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중 독일어권인 수데테란트 지역이 대표적으로 불만을 내비치는 곳이었습니다.
뮌헨 협정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수데테란트 지역을 독일에게 양도함으로서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의 야욕을 키우는데 일조합니다.
위의 세 권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은 바로 그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직후에 걸쳐 있습니다.
본인의 생각과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의 삶은 어떠했는 지 세 명의 작가가 풀어내는 인생 이야기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차 세계대전과 카렐 차페크
카렐 차페크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수립되기 전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했지만, 오랜 외세의 지배 때문에 체코 고유의 언어 문화적 특성은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 많은 작가들이 노력했고, 그 중에 카렐 차페크가 있습니다.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대 초반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 질환으로 평생 고통받으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칩니다.
해외에서는 '로봇'이라는 단어의 창시자로 유명하지만, 자국내에서는 민주주의와 반파시즘 투사로 유명했습니다.
카렐 차페크는 체코슬로바키아 제 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마사리크의 측근으로 제 1공화국의 종말과 뮌헨 협정은 그에게 큰 충격이면서 동시에 그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그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져 1932년에서 1938년까지 연이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며 체코공화국 최초의 국민 작가로 떠오릅니다.
나치 독일의 비밀 국가경찰 게슈타포가 그를 '공공의 적'으로 꼽았다는 소문이 있었고, 영국에서 망명제안도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고국을 떠나길 거부했습니다.
카렐 차페크는 1938년 48세 크리스마스에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불과 3개월도 안 되어서 체코슬로바키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되고, 뒤이어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했습니다.
형인 요세프 차페크가 고된 수용소 생활로 고초를 겪고 죽은 정확한 날짜와 무덤 위치까지 불명확하기에 차라리 나치 독일에 병합되기 전에 사망한 것이 카렐 차페크에게는 다행이라는 세간의 평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소련침공 그리고 보후밀 흐라발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보후밀 흐라발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체코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 당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때인지라 10년에 걸쳐 학업을 마쳤습니다.
그는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긴 했지만, 법조인으로 일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철도원, 보험사 직원, 외판원, 제철소 막일꾼으로 일하다가 크게 다쳐 폐지 수거 일을 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극장에서 무대 장치를 담당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1963년 50세가 다 된 나이가 되어서야 작가로 데뷔하였습니다.
그가 작가로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이 체코를 침공하고, 그의 책은 금서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그는 조국 체코를 떠나지 않고 체코어로 글쓰기를 지속합니다.
그의 작품은 자전적 인생 경험담 위에 예술적 상상력과 환상을 더해 괴기스럽고 과장되게 변형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았던 작가라기보다는 살아 있기에 글을 썼던 사람이며, 그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매혹적인 실존의 기록입니다.
프라하의 봄과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는 나치 독일의 잔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치적으로 소련과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주 정치 체계였던 공산당 활동에 반하는 민주주의와 반파시즘의 정치적 성향을 가진 지식인들이 있었고 밀란 쿤데라도 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학업을 중단 당하기도 하고, 공산당에서 추방당한 후 재입당 하기도 합니다.
그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만, 그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고 소련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공산당에서 추방당하고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쿤데라는 1981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고, 2019년이 되어서야 다시 체코 국적을 회복합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가 이력을 보면 단 세 줄로 적혀 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2023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태어난 장소와 세상을 떠나는 장소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정착한 장소는 선택의 여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그는 프랑스 망명을 인생의 큰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고, 작품 활동도 프랑스어로 지속합니다.
<참고 자료 및 도서>
- 네이버 지식백과
- 유유, 카렐 차페크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옮긴이의 말
- 열린책들,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작가 이력
- 문학동네, 보후밀 흐라발 '시끄러운 고독'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