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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ul 01. 2023

행복만을 보았다/그레구아르들라쿠르, 이선민, 문학테라피

글을 읽는 중입니다


돈은 아무것도 치유해주지 못했고 그늘만 드리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아무도 내게 미리 해주지 않았어.


자살하거나 타인을 죽이고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려는 욕망은 언제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무한한 욕망, 상대방과 서로 마음을 합해 결국 상대방을 구원하려는 무한한 욕망과 만나 배가된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결국 힘겹더라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만약 내가 이 책 주인공을 소재로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섬네일 제목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찌질한 남자가 하는 행동 100가지」


 「여성분들, 이런 남자는 무조건 피하세요」


 「여자가 싫어하는 남자가 궁금하다면」


 주인공은 이 책에서 단 한번도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모순적이다. 


 무능한 아버지에게 분노하는 아들과 병든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아들,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아들과 병든 어머니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매정한 아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며 쌍둥이 여동생들을 질투하는 철없는 오빠와 쌍둥이 자매를 잃고 언어 장애가 온 여동생을 챙기는 다정한 오빠, 회사에서 인정 받는 성실한 손해사정사와 비리를 저지른 타락한 손해사정사, 아내의 바람에도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남편과 아내가 바람을 피울만큼 소통이 안 되는 남편, 책임감에 허덕이면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망설임없이 자식을 권총으로 쏜 매정한 아버지, 타국인들에게 미친놈으로 보였던 그와 마술사로 변화한 그.


 주인공은 이 책에서 외모가 한 번도 묘사되지 않는다. 그는 책 속에 등장하는 다른 남자들을 통해서 외모를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다.


 그의 절친 스프프는 학생시절에는 알루미늄 테에 빙글빙글 렌즈가 달린 바보 안경을 낀 작은 새우를 닮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80유로(약 10만원)를 창녀에게 지불하고 오럴 섹스를 받는 남자이다. 창녀가 있는 4층 방까지 가면서 누가 볼까 봐 심장이 터질듯이 두근거리고, 창녀와 관계를 할때는 혹시 몰래 카메라가 없나 두리번 거리며, 그것이 아내에게 오럴 섹스같은 추잡한 짓을 시키지 않기 위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의 아내가 바람피우는 남자는 아내와 같이 일하는 아트디렉터이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파티를 하고, 고급 와인을 마시는 능력있고 정열적인 사람이다. 그는 가슴과 어깨, 팔뚝에 일본어 문신을 새기는 취미가 있다. 주인공은 그와 맞서기 위해 살림을 돕는 가정적인 남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어느 날 집 라디에디터가 터졌을 때 온 배관공들은 스모 선수같은 덩치로 그를 위협하며 바가지 요금을 청구했다. 주인공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에게 순순히 돈을 내어주었다.


 주인공은 중년의 나이와 수 많은 서류 처리로 노안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안경은 바보같은 것이니 쓰지 않고,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다닐 것이다. 운동이라고는 해 본 적 없고, 사무실에만 틀어박혀 있어 비쩍 마른 팔 다리와 달리 아랫배만  볼록렌즈처럼 튀어나오고 피부는 햇빛을 보지 못해 창백해 보일 정도로 하얄 것이다. 주름진 손에는 핏줄이 퍼렇게 도드라지고, 머리숱은 매우 적어 듬성듬성 빈 곳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를 스쳐 지나간 무수히 많은 사람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동그란 윤곽만 희미하게 남을 뿐 그 안에 눈, 코, 입은 지워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오늘 길거리 어디에선가 스쳐지나갔을 수 많은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이다.



 이 책의 1부와 2부는 주인공 시점으로, 3부는 주인공 딸의 시점으로 쓰여 있다. 


 1부는 소제목을 돈으로 사용했다. 그건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돈이었음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약국 보조로 일하며 아버지가 불법으로 만들어 팔던 단돈 5프랑(약 7천원)짜리 민간요법 약은 태어난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자판기 커피 두 잔이면 호감있는 여자 아이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었다.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비겁하게 주먹을 날리고 미천한 사과를 위해 산 초코바는 50상팀(은화 한 닢)이지만, 그 사과를 받아들여 준 친구의 우정은 평생이었다. 어머니를 잃고, 쌍둥이 자매를 잃은 남매를 위한 정신과 상담 비용은 두 번에 300프랑(약 43만원)으로 비쌌다. 하지만 그들을 치유한 건 상담이 아니라 함께 병원을 다니며 나눈 남매의 우애였다.


 주인공은 실직과 이혼을 당하고 1,000달러(약 130만원)로 자신의 죽음을 사려했다. 그에게 죽음이란 그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으로 그의 유전자를 가진 자식들을 포함했다. 그는 잠든 딸 아이를 먼저 권총으로 쏘았다. 하지만 요행으로 딸은 턱만 날아갔고, 그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된다.


 그래서 2부에서는 주인공이 먼 타국으로 떠나 새 삶을 시작하며 더 이상 돈을 소제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삶을 스쳐지나가는 소소한 것들이 소제목으로 등장할 뿐이다.


 3부는 년도는 적혀 있지 않고, 월과 일로만 구성된 날짜가 소제목이다. 그건 딸이 치료과정 중에 쓴 일기로 7년의 시간이 띄엄 띄엄 담겨 있다. 그리고 딸은 7년만에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간다.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 작가노트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우리들은 모두, 인간이란 이름의 일란성 쌍생아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자각,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 번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는 우리.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주인공은 책의 제목처럼 행복만을 보기 위해 애썼지만, 그곳에는 불행만 있었다. 그리고 불행의 끝에서 그는 비로소 행복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카피라이터 출신인 작가는 깔끔하고 쉽게 읽히는 글 솜씨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다. 날이 서린 예리한 문장들이 내 비겁함도 같이 낱낱이 해체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처음에는 이 찌질한 남자를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으로 계속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계속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 찌질한 남자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걸.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포도를 알맞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숙성한 고급 와인처럼 천천히 음미하며, 몇 번이나 도돌이표를 만난듯 처음으로 돌아가 읽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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