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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ul 19. 2023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조세희, 이성과 힘

글을 읽는 중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 100쇄가 넘게 오랜 시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책. 항상 ‘ㅇㅇ선정도서’라는 수식어가 붙는 책.

 나는 지금까지 애써 이 책을 외면했다. 귀동냥으로 책이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독재와 고문, 착취, 억압의 이야기는 지난 과거의 한 조각, 어두운 군부 독재 시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 시대 이야기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나도 그 끄트머리 시절 정도는 어린 목격자로 있었다.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21세기가 코앞인데 노동착취라니 시대착오적인 주제가 아닐까 싶었다.

 아니다, 아니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직도 노동은 착취 당하고 있고, 나는 난장이라는 것을.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책에서 법의 심판을 받는 건 늘 난장이와 꼽추, 앉은뱅이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었다. 헐값으로 삶의 터전인 집을 빼앗겨도 빼앗은 자들은 처벌받지 않는다. 집을  되찾기 위해 꼽추와 앉은뱅이는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을 야만적이라 할 수 있을까?


 부정, 부패, 서정쇄신이 언론에 떠들썩하게 이슈가 되면 그때만 뒷집의 텔레비전 소리가 작아진다. 드러나지 않으면 죄가 아니니까. 앞집은 진한 남편에게 뇌물을 바치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고, 그 아내는 그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이제부터 가난은 없을 테니까. 부를 쌓으면 좋은 것이고, 가난하면 나쁜 것이니까. 이쪽도 저쪽도 아닌 성실한 사람은 이용 당하거나 무시의 대상일 뿐이다.

 

  막상 부와 권력을 손에 움켜 쥔 욕심쟁이는 그 욕심을 지키려다 죽는다. 언론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큰 업적을 남겼다고 떠들어대나 마음 터 놓을 가족도, 의지할 친구도 갖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그의 자식들은 대를 이어 욕심을 지킨다.


 39도에 육박하는 실내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를 쉴 새 없이 감시하며 바늘로 몸을 찔리는 노동자들. 그곳에서는 인간보다 기계가, 그리고 기계가 뽑아내는 물건이 더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제 AI와 로봇이 인간보다 더 가치가 있어질 것이다. AI는 쉴 새 없이 인간에게  결정을 강요할 것이다. 로봇은 인간에게 쉴 새 없이 육체의 결정을 강요할 것이다. 인간을 편하게 하려고 만든 것들에 지배 당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때때로 본인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준의 사고가 터지면 은강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짧은 시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큰 벽에 부딪혀 맥없이 물러서며 그건 개인의 문제였다고 치부할 것이다.

 

 난장이는 법으로 사랑이 강요되는 세상을 꿈꿨다.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 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하는 그런 세상. 난장이 아들은 법 대신 교육을 선택했다. 법은 강제성이 있고, 강제성은 권력이 강한 쪽에서 약한 쪽으로 향한다. 그러니 앎을 통해 누구나 고귀한 사랑을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난장이 아들과 생각을 같이 한다. 하지만 교육도 비즈니스인 이곳에서 그것 역시 한낱 헛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왜 공장 일만 하지 못하냐는 난장이 아내의 타박에 아들은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그런다고 답한다. 난장이 아내는 그냥 내버려두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이 다치고, 가족이 힘들어 진다고. 글을 쓰겠다고 하니 내 부모도 난장이 아내와 똑같이 말했다. 나는 매일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도 우리 가족을 함부로 부술 수 없고, 나는 굶어 죽지도, 잡혀가지도 않을 거라고.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고 싶을 뿐이라고.


 회장님 아들은 자기 집안이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요즘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편의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 진다. 최고 기온 35도인 불볕더위에 나는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시장에 걸어가는 대신 온라인 당일 배송으로 장을 본다. 내 편의를 위해 선풍기도 제대로 없는 물류 창고에서 택배들을 분류하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외면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돈을 받고 일하고, 내가 그 돈을 지불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많은 투자를 받으며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작가님은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해서 자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혁명이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고,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라고.

  꿈을 꾼다면 혁명을 꿈꾸고 싶다. 하지만 혁명은 꿈의 세계 밖으로 탈출 해 현실 세계에 도달하기까지 1억 광년의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작은 후퇴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한 저지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패는 반부패의 열망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고, 인간의 이기심은 인간의 사랑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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