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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Aug 17. 2023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 쥐, 전지영

글을 읽는 중입니다

 23년 신춘문예 당선작에 두 편이나 이름을 올린 전지영 작가님. 김이설 작가님이 문단에서도 주목하는 올해 신진 작가로 추천해 주셔서 작품을 읽어 봤는데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탄탄한 구성부터 세련미 넘치는 표현, 생활감 느껴지는 대사에 단숨에 작품을 읽어 내려갔다. 무엇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주인공의 주변 환경과 심리를 너무 신파로 몰고 가거나 누군가의 명백한 잘못으로 몰고 가 죄를 묻기보다는 세상살이가 그렇다는 여운을 남기는 담백한 서사와 허구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배경 설정이 마음을 사로잡으며 차기작을 기대하게 했다.     


 혜경은 매일 새벽 총을 쏘러 다녔다.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은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 중 가장 파격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혜경이라는 여자는 왜 눈 뜨자마자 총을 쏘러 나가는 걸까? 라는 강력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첫 문장은 혜경이 가는 국제사격장이라는 장소가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보여주는 걸로 슬쩍 방향을 틀며 그녀 남편 윤석을 소개한다.

 혜경과 윤석은 먹다 남은 김치찌개로 하는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마주한다. 둘 사이에는 별 대화가 없지만, 서로에 대해 날이 서 있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둘 사이 불화의 원인은 둘째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둘째 아들이 폭우에 휩쓸려 정주못에 빠져 죽은 날 혜경은 윤석에게 전화했지만, 윤석은 일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했다. 살아 있는 첫째 아들을 위해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외면한 채 가정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했다. 윤석은 그때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를 자신을 업무에 치이게 만든  A시장 탓이라고 생각한다. 멀어서 닿지 않은 표적을 향해 마구 화살을 쏘듯 윤석은 A를 향한 적개심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혜경은 윤석에게 둘째에게 핸드폰을 사줬어야 한다거나, A 시장 실종 기사에 딸의 태도를 비난하는 윤석에게 아버지 노릇을 운운하며 도발한다. 결국 둘 사이 대화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 혜경은 자리를 피해 창고 방으로 가고, 윤석은 그런 혜경을 쫓아간다. 습관처럼 연습용 에어건을 만지고 있던 혜경은 실수로 윤석을 향해 쏘고, 윤석은 손가락을 다친다. 처음으로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두 사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다음 날 혜경은 사격장에 가지 않고, 윤석은 정주못으로 향한다. 폭우로 비가 온몸에 들이쳤지만, 그는 그렇게 온몸이 젖은 채 정주못을 노려보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혜경의 문자를 보고도 휴대 전화를 덮어버린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집에 돌아왔을 때 혜경은 윤석에게 커피를 건넬 뿐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지 않는다. 그리고 윤석은 전날 먹다 남긴 청국장 냄비를 끓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끝없는 슬픔, 회복할 수 없는 상실감에서 살아나가는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자식을 잃은 재난을 십년 넘게 감당하고 있는 성실한 부부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 작품이었다.

   

 또 다른 작품 ‘쥐’는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으로 해군 관사 단지가 등장한다. 이곳에서 바다에 나가 일 년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채 석 달도 되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관사 여자들이 있다. 그녀들은 자주 이동하는 남편의 직업 때문에 그녀들의 직업은 포기하고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관사에는 규칙이 있다. 관사 규칙은 남편의 기수가 여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 그리고 분수대 앞에 모여 여러 정보를 나눈다는 것이다.

 주인공 윤진은 갑작스럽게 남편이 귀환한다는 연락을 받는다. 뭔가 석연치 않은 복귀이지만 남편에게 물어봐도 시원찮은 답만 돌아온다. 윤진은 불안감 속에 관사 아이들에게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있는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는 늘 화단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머리에 항상 검은색 망이 달린 모자를 써서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그 여자는 관사 꼭대기 층, 대령들에게만 배정되는 집에 살고, 쥐를 찾는다는 소문이 있다. 여자는 윤진에게 다짜고짜 자기가 뭘 하는지 아냐고 묻고, 윤진은 들은 소문대로 쥐를 찾는 거 아니냐고 답한다. 여자는 한참 쥐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쥐를 직접 본 적 있냐는 윤진의 말에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민간 어선과 함정이 충돌해서 침몰한 사건에 대해 군에서 인명 피해는 없다고 발표한 것과 달리 피해가 있었다며 윤진이 알고 싶던 진실을 알려준다.

 분수대에 모여 있던 여자들도 그 저승사자라는 여자의 말이 사실임을 보여주듯 윤진을 보자 눈을 내리깔며 어색한 침묵만 흐른다. 윤진과 친하게 지내던 선은 돌아오는 길에 쥐 사냥꾼이라는 상호의 명함을 보여준다. 선은 쥐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며 저승사자 여자가 주었다고 한다.

 윤진은 남편에게 쥐에 관해 묻는다. 사실 그녀가 묻고 싶은 건 일찍 귀항한 이유였지만, 물을 수 없다. 남편은 짜증스럽게 그걸 어떻게 아냐며 대답하며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흐른다. 의미 없는 쥐에 관한 대화만 오가다가 남편은 파병을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윤진은 선의 남편인 김 대위도 같이 가냐고 묻지만, 남편은 불쾌해한다.

 그 주말이 지난 뒤부터 선은 보이지 않는다. 윤진이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선의 집은 야반도주하듯 이사 갔다. 그 소식을 들은 날 윤진은 싱크대에서 선이 들었다는 쥐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선이 갑자기 찾아온다. 선은 빠른 귀항의 이유를 윤진에게 알려준다. 남편은 선원 한 명을 구출하지 못했으나 인명 피해가 없다고 보고했다. 윤진은 남편의 처지를 이해하려 애썼다. 남편 덕분에 그녀 가족은 관사에 남았다. 선은 윤진의 집에서도 들리는 쥐 소리를 비웃으며 쥐 사냥꾼 명함을 주고 돌아간다.

 화단에 있는 구멍마다 불기둥이 솟구친다. 쥐를 찾던 선과 저승사자 여인은 자취를 감췄다. 관사 여자들은 불길 반대편에 모였다. 윤진은 구멍에서 쥐가 한 마리도 튀어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며 소설은 끝난다.

 쥐는 은폐된 진실일 수도 있고, 진실에 눈감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추상적인 주제를 쥐라는 구체적인 동물로 형상화하면서 초인종을 누르고 사라지는 누군가, 아이가 쏟아 엉망이 된 싱크대 물건들, 망사로 얼굴을 가린 여자와 같이 불안감을 부추기는 배경 장치들을 활용해 윤진의 불안과 그 불안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모든 걸 남편과 남편의 직업이 주는 혜택(폐쇄적인 관사 생활)에 의지하고 있는 윤진으로서는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진실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옳지 않은 선택을 하는 주인공을 공감가게 그리는 건 쉽지 않다. 그걸 미스테리한 배경 묘사로 불쾌하면서도 불안한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내 그녀가 진실을 외면하는 비호감에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게 감각적이다.


<소설 당선작>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 (hankookilbo.com)


[2023 신춘문예] 쥐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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