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서평] 안젤라가 있던 자리

by 토리


이 작품은 두 명의 ‘안젤라’를 조명한다. 한국의 안젤라인 ‘나’필리핀의 안젤라.


이 두 사람은 언뜻 보이게 이름 이외에는 그다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어떤 사회에 속한 지위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들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작품은 주인공 혜진이 목격하고 회상하는 것을 추적하면서, 소위 '한국적인 가족'의 해체를 보여준다.


한국인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한국인의 정’은 이들에게는 이제 요원한 것이 된 것처럼 보인다. 오빠라는 사람은 오랜 타지 생활을 하다 돌아온 여동생에게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쪽지만을 남길뿐이며, 새언니의 반응도 아주 의례적인 수준에 그친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받은 마지막 선물이라는 모피코트를 또 다른 ‘안젤라’에게 줘 버릴 정도로 가족에 대해 별 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시큰둥한 것은 조카인 유미도 마찬가지다. ‘나’는 유미에게 낯선 이방인이며, 없는 존재나 다름없다. 어린아이의 냉정한 태도는 ‘나’가 실상 그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자리가, 사실은 그의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임시카드’를 가지고 있는, 그것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통해 신분 증명이 필요할 정도의 이방인이다.


혜진은 이러한 자신의 자리를 ‘안젤라’에게 빼앗긴 것처럼 느낀다. 안젤라는 유미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일 곳곳에 관여하는 시어머니 같은, 집안의 안주인 같다는 인상을 준다. 혜진의 어머니가 줬다던 모피코트를 입은 그녀는 어찌 보면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다.


그러나 안젤라가 정말로 혜진의 자리를 대체했느냐 하면 그렇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안젤라와 다른 가족들의 관계는 다분히 비즈니스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유미와 안젤라는 몹시 친밀해 보이지만 두 사람은 사실 일적인 관계로 얽혀 있다. 돈을 벌기 위함이라는 소리다. 유미를 돌보는 일은 분명 어떤 종류의 애착 관계를 형성했음은 틀림없지만, 어쨌든 안젤라에게 그곳은 일터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족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유미와 함께 지냈지만 그녀 역시 여전히 그곳의 이방인이다.


상전이 또 하나 있다고 투덜거리며 그녀의 흉을 보는 도우미 아주머니나, 시어머니 모시는 생각으로 같이 살고 있다는 새언니의 태도와 시선은 그녀를 가족의 일부, 혹은 그들이 속한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혜진을 포함하여) 안젤라에게 소위 ‘한국적인 정’을 요구한다. 안젤라는 그녀의 일을 할 뿐이지만,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안젤라의 태도가 냉랭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내세우는 심리적 장벽에 대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보았을 때, 혜진이 느끼는 어떤 소외감은 사실 안젤라 역시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다른 문화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실질적으로 서로 아주 닮아 있다.


혜진은 오빠의 가족들, 그리고 안젤라와 함께 지내면서 그녀가 지난 3년간 지냈던 필리핀 마닐라의 상황을 회상한다. 그곳에는 먼 곳으로 일하러 간 엄마를 둔 필리핀 아이들이 있다.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안젤라 역시 비슷한 사연을 가진 한 사람의 엄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서는 그녀의 삶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혜진의 심리상태에 집중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작품 내적으로 생각한다면 작품 내의 인물들 중 누구도 그녀의 삶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 ‘안젤라’가 있던 자리가 한국의, 가족의 품이라면, 필리핀인 ‘안젤라’가 있던 자리는 어디인가? 그녀의 자리는 어떤 곳이었는가? 그녀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가? 작중 인물들은 이러한 그녀의 사적인 삶에 대한 관심 대신, 그녀의 차가운 외적인 태도로만 그녀를 평가할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안젤라(이모)가 있는 곳은 과연 ‘안젤라가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다. 한국인인 또 다른 ‘안젤라’가 그렇듯, 그녀 역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혜진은 그러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을 깨닫고 좌절 혹은 상실감을 맛본다. 어쩌면 안젤라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호 문화적으로 보았을 때 작품 내의 인물들은 서로를 그다지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에서 등장하는 두 안젤라는 긴 타지 생활을 했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현대의 유목민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쩌면 비슷한 종류의 고독감, 혹은 소외감을 맛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같은 종류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