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결혼 이주 여성의 삶이란

[서평] 열대아에서 온 무지개

by 토리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비교적, 단일한 문화적 배경 아래에서 살아왔고, 이에 따라 그들이 이루고 있는 한국 사회 역시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다소 배타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소위 세계화라는 국제적인 경향과 그에 발맞추어 늘어나는 외국인들과 그들의 문화의 유입은 각종 다문화 정책 등 이러한 경직된 사회를 완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노력들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이는 다문화 국가인 미국 혹은 유럽의 선진국들의 사례를 미루어 보았을 때 아주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열대야에서 온 무지개’는 한국 사회의 이러한 단면, 즉, 한국 사회에 점차 섞여 들어가는, 그러나 한국인 자체는 되지 못하는,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해나간다. 화자인 사이란은 산후도우미 일을 하면서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를 포함하여 작품 속에서 소개되는 여인들의 삶을 살펴보면 어떤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인들과 한국 사회의 태도. 그리고 이 태도라 함은 그다지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위라완은 한국인 공장 간부과 연애하다가 아이와 함께 버림받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는 퇘트란은 매를 맞고 산다. 이러한 두 여인의 사정을 보면 언뜻 사이란은 이들과는 다르게 남편인 재석에게 존중받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재석은 그녀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녀와 함께 살지도 않으면서 일주일에 한번 찾아가 생활비를 주고, ‘본능이라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화대처럼 지불’한다. 설령 그가 사이란을 성매매 여성처럼 바라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러한 태도는 결혼이주여성이 아이를 낳기 위해, 혹은 남편의 성욕을 처리하기 위해 한국으로 ‘팔려온다’는, 한국 사회에서 만연한 어떤 편견을 그가 염두에 두고 있음을 반증해준다. 정상적인 부부 사이라면 두 사람이 잠자리를 한다고 해서 그것에 미안함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재석은 사이란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그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회계장부도 쓸 필요가 없다고 하고, 돈을 벌어오라고도 하지 않는다. 일을 돕겠다는 것도 마다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이란에게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에게 그녀는 이별한 전 여자친구의 대체품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그보다 좀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이란은 회계사였지만 그녀는 그녀의 전공을 살릴 기회를 얻지 못한다. 재석은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명목 하에 그녀에게 그러한 기회를 빼앗았다. 또 사이란은 한국어학당과 불교학당을 동시에 다니고 있고, 꽤 인기있는 산후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작품의 표면에서는 재석이 그녀의 이러한 능력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는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그가 실제로 의도했든 아니든, 그가 그녀에게 기대하는 것은 ‘잘 보이려고 기를 쓰며 진땀흘리는’ 사랑스러운 시선 정도일 것이다. 그녀는 ‘국내산’일지언정 ‘한우’는 아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증까지 받았건만 결혼이주여성들은 여전히 한국인이되 한국인이 아니다. 사이란과 재석이 마트에서 한 중년 사내에게 들었던 모욕(‘머지 않아 한국은 잡종 천지가 될 것’이라는 비아냥)이나, 재석의 전 여자친구가 그에게 ‘이 결혼은 좀 그렇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은 이방인이며, 이들과의 결합은 비일상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인 셈이다.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영화처럼 재석과 사이란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재석은 그녀에게 ‘여우굴’에서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이는 3년동안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려져 있던 두 사람의 관계가 비로소 한 발짝 진전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희망적인 메시지는 장차 한국사회가 한국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호문화 사회로 거듭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과 그들의 문화와 삶과 태도를 인정하고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결혼이주여성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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