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리 Jan 31. 2021

아이패드 케이스의 자석 부품을 잃어버릴 뻔한 이야기

너무 사소해서 미처 알지 못한 소중함에 대하여

    내게는 병이 하나 있다. 장비 병이라고, 어떤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만성적으로 앓는 병(정확히는 경향 내지는 습관)이다.

    가령, 대학원 시절엔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논문을 들여다보던 나는 어느 날 내 자세가 심히 나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을 잘 때면 비로소 긴장이 풀린 목과 허리가 비명을 질렀고, 화상 통화하는 내 모습은 언제나 고개를 쭉 내빼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십 대에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나는 생각했고 곧바로 장비 검색에 들어갔다.


    내가 가장 먼저 사들인 장비는 노트북 쿨러였다. n단계 높이 조절이 되어서 화면 높이가 시선과 맞아서 고개가 구부정해질 일이 없었고, 냉각 모터가 있어 작업을 하면서 손에 땀이 덜 찰 것이었다. 노트북의 높이가 높아지면 타자를 치기 불편하니 블루투스 키보드를 샀고, 마찬가지로 노트북과 거리가 생겨 번거로우니 무선 마우스도 구매했다. 자, 여기서 다가 아니다. 의자 생활을 하면서 허리가 아픈 원인 중 하나는 의자의 문제가 컸다. 뚜벅이 대학원생 주제에 고급 사무실 의자를 연구실에 갖다 놓을 수는 없고, 모 사의 겔(?) 소재 방석을 샀다. 그것이 나의 엉덩이와 척추를 수호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의 소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는 높아진 노트북 높이 때문에 이어폰 줄이 번거로워져서 무선 이어폰을 샀고, 오랜 컴퓨터 사용으로 자꾸만 눈이 건조해지자 루테인을 사 먹고,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구매해 꼈다. 아, 그렇지. 자꾸만 구부정해지는 허리를 피기 위한 자세 교정 밴드와, 오랜 마우스 사용으로 아파오는 손목을 위해 손목 보호대도 샀다! (물론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사모은 장비들은 아주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이 글만 하더라도 그때 산 블루투스 키보드로 작성하고 있으니까.)


    요컨대, 나는 내가 생활하는 공간의 장비들을 완벽하게 세팅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롱 완벽주의자다. 그리고 이런 장비병 증세는 완벽한 업무 환경뿐만 아니라, 그 밖의 많은 환경에서도 도지곤 했는데, 나의 아이패드와 그 부속 제품들은 그러한 증상으로 말미암은 전리품들이었다.




    어느 날 대학원생이던 나는 생각했다.


‘논문에 낭비되는 종이가 너무 많아. 게다가 정리도 잘 되지 않고, 그 방대한 논문들을 모두 종이로 인쇄한다면 내 돈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든 논문을 볼 수 있는 아이패드를 사자. 기왕이면 아이패드 프로가 좋겠어. 그건 애플 펜슬로 그림도 그릴 수 있으니까, 취미 생활도 쏠쏠하게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적금을 털어 아이패드 프로를 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꽤나 충동적인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아빠가 주신 아이패드 미니가 있었고 그것으로 각종 영상과 전자책 따위를 신명 나게 보고 있었다. 흠이 있다면, a5정도의 사이즈고, 그 당시 최신(나온 지 1년 안팎이던) 제품인 애플 펜슬이 구동되지 않았다는 점일까? 그러나 이해해달라. 그때는 2월인가 그랬고, 새로운 해가 밝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며, 나는 조교 생활을 탈출한 지 얼마 안 된 자유로운 도비(*해리포터의 조력자 집요정)였다. 내게는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이 글도 그 아이패드를 가지고 쓰고 있다. 5년째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그는 나의 독서, 게임, 그림, 영화 시청 그리고 논문 읽기를 도와주는 유용한 벗이 되었다.)


    자, 여기서 질문 하나. 필자는 과연 아이패드 프로만 샀을까?


    하나

    둘

    셋!


    다들 예상했겠지만 대답은 ‘아니오’다. 나는 휴대폰을 사면 휴대폰 케이스부터 사는 사람이다. 당연히 아이패드 케이스도 샀는데, 일반 케이스는 안되고, 키보드 기능이 포함된 케이스여야 했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글감을 메모하거나 정리해야 했으니까. 그것이 가능하려면 무게가 가벼워야 했다. 그리고 대개 성능 좋고 가벼운 물건들이 그러하듯 그것 역시 꽤나 고가품이었다. 적어도 파트 일을 하는 대학원생에겐 그랬다.

 

    어쨌든 나는 아이패드를 위한 수많은 장비들(화면 보호 필름, 애플 펜슬,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아이패드 (키보드) 케이스)을 마련했고, 우리(아이패드와 친구들,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약 5년간은 아무 문제없었다. 우린 괜찮았다. 내가 아이패드 키보드 케이스의 아주 작은 자석 부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내가 산 것은 위 사진과 같은 키보드 케이스였다.


    이 자석 부품이라 함은 아이패드를 보호하는 플라스틱 케이스 부분이 키보드 부분에 직립되어 연결되게 하고, 블루투스를 통해 기기와 키보드가 곧바로 연동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녀석이었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붙어있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중 오른쪽 것이 상습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자석이 나오지 않게 하고 키보드 부분에 흠집이 나지 않게 하는 고무 패드가 오랜 세월 끝에 접착력을 잃고 떨어진 탓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자석 부품이 자꾸만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좀 귀찮긴 하지만 도로 끼워 넣으면 그만이고, 아이패드나 키보드 사용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본드로 붙이지 뭐’ 

    나는 그렇게 반년인가를 버텼다. 내게는 그 새끼손톱보다 작은 부품보다 신경 쓸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키보드 키 중 하나를 잃어버렸지만 어차피 잘 쓰지 않는 키여서 몇 년 동안이나 아무런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었으므로 이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사건은 언제나 예기치 못하게 터지는 법이다. 몇 주 전 나는 늘 그렇듯 아이패드를 꺼내 들고 무언가를 입력하려고 케이스를 바로 세웠다. 어라, 그런데 화면이 어쩐지 비뚤 했다. 다시 보니 예의 자석 부품이 사라져 있었다. 


    아뿔싸!


    요즘은 거의 쓰지도 않는 감탄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너무나 당연하게 있던 그것을 잃고서야 이 부품 없이는 내 아이패드 생활이 반쪽짜리가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소리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케이스가 매번 자석 없이 비뚤거리면 앞으로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내내 거슬릴 것이다. 자석은 아이패드와 키보드의 연결에도 관여하는데 그것이 훨씬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만큼 작은 자석을 구해 갖다 붙이면 되기야 하겠지만, 나는 그걸 위해 발품을 팔고 케이스 구멍에 맞추어 크기를 재단한 후 본드로 붙이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할 터였다. 브랜드 제품을 샀으니 a/s를 맡길 수는 있겠지만 이미 5년이나 지나버려서 무상수리는 못할 것이다. 몇만 원 지출하느니 새로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 나는 결국 새 아이패드를 사게 되고 말 거야. (나는 이미 첫 번째 아이패드 케이스에 주스를 쏟아서 망가트린 일이 있었다.) 자석 하나를 잃어버린 탓에 십몇 만 원을 다시 써야 한다니, 정말 끔찍하다! 안 그래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기인데! 그걸 발견했을 때 진작 고쳐야 했는데! 바보 같으니라고!’


    케이스의 빈 구멍을 매만지며 온갖 우울한 상념에 잠겨 있으려니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해서, 좀 울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 작고 사소한 자석 부품을 잃은 것이 이토록 황망한 기분을 안겨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벌써부터 필자를 연민하기에는 이르다. 나는 반나절이 지난 후, 케이스의 반대편에 그 자석 부품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케이스 바로 뒤에 붙어 있어서 못 찾았던 것이다! 이번엔 주저하지 않고 그 부품에 본드칠을 했다. 반년 전에 진작해야 할 일이었다.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쓸 데 없이 새로운 아이패드 케이스를 사고서 우울해했을지도 모른다. 휴! 그 부품을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요약하자면 이 글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뻔... 했다가 소 찾고 외양간 고친 이야기쯤이 되겠다.


    우리는 종종 아주 사소한 문제들을 나중 일로 미뤄두고는 한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귀찮으니까, 어차피 당장 방치해도 큰 문제는 없으니까. 그러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우리 주변의 아주 작고 사소한 무언가의 상실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당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당신이 다소 방치했던 사소함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것의 상실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 사소한 것이 있을 때의 고마움도 한번 떠올려보자. 소도 잃고 우울하기까지 한 외양간 수리공이 되기 전에!


매거진의 이전글 눈 오는 날엔 설피를 만들어 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