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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Apr 06. 2021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우울증을 이겨내고 나 스스로와 화해하는 법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대학원 생활을 하던 무렵의 나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어느 한 구석에 가라앉아 있었다. 우울은 나도 모르는 채 나를 잠식해 들었고, 나의 세계로부터 나를 떨어트려 놓았고, 나를 철저하게 고독하게 했다. 특히 2018년이 제일 극심했다. 나는 한 사람이었지만 온전히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 당시의 내가 끊임없이 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내게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었고, 따라서 존재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때의 나는 온전히 한 사람 몫의 사람이었다기보다는, 사람의 껍데기 정도였다고 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건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정말로 죽고 싶었다기보다는 생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계산을 두드려봐도 그랬다. 나는 무엇 하나 잘 하는 것이 없는데 내 쓸모없는 육신을 보전하기 위해 너무 많은 자원과 관심과 노력이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내가 그때 마음을 다 잡았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죽기도 두려운 겁쟁이었다.


  

 우울이 가장 무서운 점은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논문 쓰는 것이 두려웠는데, 그 다음엔 사람이 두려웠고 그 다음은 내가 하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겁을 내게 되었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밥을 얻어먹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는데 문득 '아 저 고양이는 저렇게 열심히 밥을 얻어먹고 사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등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 가게에 걸린 예쁜 옷을 보면 '저렇게 예쁜 옷을 입기에는 난 너무 보잘 것 없지.'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나보다 못한 것이 없었다. 내게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것이었으므로.


   현실이 너무 싫어서 쉽게 눈을 뜨지 못했고, 내가 또 하루를 형편없이 보냈다는 생각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하루는 너무 길면서도 짧았다. 나의 4년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내가 나의 우울증에 대해 털어 놓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너는 우울하지 않아.'

'네가 무슨 우울증이라고 그래. 세상에 너보다 살기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우울하면 하고 있는 일 때려 치워. 왜 미련하게 붙잡고 있어.'

'엄살 피우지 마.'

'야, 원래 이 바닥에선 다 그래. 세상에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딨냐?'

'근성으로 이겨내면 돼. 좀 더 노력해 봐.'


모두 나를 생각해서 해 준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실 이런 말들은 그 당시의 내가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건 이미 내가 내 자신에게 수없이 반복해 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의 고민 끝에 찾아간 정신과 의사가 '당신은 많은 이 시대의 젊은이처럼 자꾸만 도망치려고 하는군요.'라고 했을 때, 나의 인생은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하며, 이제 여기서 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내게는 다른 말을 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나를 실패한 자식으로 생각할 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엄마였다. 힘겹게 수화기 너머로 나의 우울을 털어놓자 엄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당신께서도 그런 적이 있다고, 그건 너의 문제가 아니라 병이니 상담 받고 약을 먹으면 된다고, 내가 좀 실패를 경험한다고 해서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생각했던 차갑고 냉혹한 엄마는 나의 오랜 우울과 소통의 부재가 낳은 가짜였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상담을 받고 병원을 다닐 거라고 하자 가까운 친구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많이 힘들었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너를 지지해 줄 거야. 너무 힘들면 전화해.' 그런 말들이었다. 어떤 친구는 내가 우울하다고 할 때마다 내게 전화를 주거나 내가 사는 곳을 찾아와 주었다. 


추천을 받아 찾아간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많이 힘드셨겠군요. 우울은 호르몬의 문제이므로 너무 힘들 땐 약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이건 감기 같은 거예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나를 우울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해 나가야 하는 문제' 자체를 소거하라고 조언하는 대신, 내가 덜 힘겹도록 약을 처방해 주고, 내가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생각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들은 나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기다려 주었다. 그게 아주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또한 나를 사랑하는 훈련을 했다.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인지 치료에 관한 책을 읽고, 상담을 다니며 마음챙김 훈련도 했다. 매일 아주 아주 사소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조금씩 성취해 나갔다. 어떤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는 과정을 주목했다. 가령 그 당시에 나는 정오가 훌쩍 넘긴 시간에 잠을 깼는데, 그래서 '어제보다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기'라는 목표를 세웠다. 단 1분이라도 어제보다 일찍 일어나면 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설령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그래, 잘 노력했어. 실망할 거 없어. 내일 조금 더 일찍 일어나면 돼.'라고 말했다.  나의 좋은 면과 내가 잘 해낸 일에 집중하고 나 스스로를 매일매일 칭찬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과정은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했다. 나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서히 좋아졌다. 일주일에 매일 같이 찾아오던 우울은 점차 발길이 뜸해졌다. 나는 점차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건강해졌다. 우울이 이따금 찾아와도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생겼다. 마음이 슬프고 우울해질 때면 '너 많이 힘들었구나. 우울해도 괜찮아. 그건 우울할만 한 일이었어.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 잖아. 이 일을 계기로 너는 한층 더 성장할 거야.'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자신을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학대 받고 미움 받던 유기견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가족을 만나 행복한 개가 되는 이야기를 보았다. 사실 그건 사람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는 결코 나와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하지 못한 나 자신과의 동거는 우울하고, 우울한 삶은 생의 의지를 꺾는다.


그렇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삶의 목적을 상상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뭐라도 하고 죽어야 한다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그런 식으로 우리의 숙명을 규정하고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그 숙명을 향해서만 달려간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삶의 의미는 미래에만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삶의 목적, 목표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목적과 목표가 좌절되었을 삶의 의미를 잃는다. 그리고 불행해진다.


산다는 것은 어떤 목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태어났고, 태어났기에 산다. 태어났으므로 존재가치를 갖는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미래에도 있지만 현재에도 있다. 좋아하는 길을 걷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아름다운 봄꽃들을 감상하는 것, 지저분한 냄비를 깨끗하게 씻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 무엇이든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 사소한 것들이 모여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설령 우울해져도 괜찮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마음의 감기에 걸린 것일 뿐이니 치료를 받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면 된다. 조바심을 내지 말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 끝에 기어코 봄이 오는 것처럼, 차분히 스스로를 다독이다보면 설령 그 과정이 더디더라도 변화는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미숙한 아이를 잘 관찰하자. 그를 이해하고 기다려 주자. 그를 사랑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삶의 끝자락에 서 있다. 우리는 매순간 현재였다가 과거가 된다. 우리의 현재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미래의 시간이다. 우리가 어떤 멍청한 짓을 했든지 간에, 1초 후의 당신은 1초 전의 당신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배웠을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조금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 그렇게 매 생의 끝자락을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우리에게 소박하지만 강력한 힘을 주고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오늘의 질문>

1.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사소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오늘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 주었는가? 


+) 덧붙임 말

나와 같이 우울하거나 우울했던 사람들을 위해 몇 마디 더 적어 본다. 

1) 자신의 우울에 대한 논리적인 해결책을 찾고 싶다면 데이비드 번스의 <필링굿>을 추천한다. 아주 두꺼운 책이지만 스스로의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훈련에 대한 좋은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2)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졌다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기를 권한다. 처음 간 곳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른 병원을 찾아가 보라. 특히나 정신과는 환자와 잘맞는 의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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