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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Nov 05. 2021

우유만 마시면 방귀쟁이가 됩니다

유당불내증 환자도 우유를 마시고 싶어


내향적이지만 철딱서니 없는 위장을 가졌다는 것


나는 어릴 적에 꽤나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다. 사람을 만나는 족족 에너지가 닳는 나 같은 사람에게 사람이 많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정말 고된 일이었는데, 사실 단순히 나의 얌전하고 낯가림 많은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와 더불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나의 연약한 위장 때문이기도 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방귀를 뀌어버리는 민망한 사태는, 누구에게나 그렇긴 하겠지만 나처럼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에게는 도무지 견디지 못할 끔찍한 사건일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틀림 없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일 거야.


나는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었고, 시험 기간이 되면 유난히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거리거나 스트레스성 위장염이 도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문제는, 딱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을 때도 종종 방귀쟁이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었지만 그냥 그게 내 체질이겠거니 하고 살았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방귀쟁이였는가보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유당불내증'에 관한 기사 하나를 읽었고, 나는 그 기사로 말미암아 비로소, 내가 체내에 유당 분해 효소가 적거나 없는 유당불내증 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유당불내증 환자였던 것이다!




유당불내증이지만 우유를 마시고 싶어.


나는 유제품을 대단히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유당불내증이 있다는 것은 쉽사리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몇 차례의 실험-유제품을 먹었다는 소리다-을 통해 나는 내 몸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 경우에는 생우유, 특히 차가운 우유일수록 소화해내지 못하고, 요거트나 치즈 같이 발효된 음식은 반응이 상대적으로 덜하며, 유당을 응축시켜놓은 탈지분유나 연유가 가장 치명적이었다.


그 실험을 통해 내가 맛본 것은 유제품 특유의 고소함과 절망의 씁쓸함이었다. 유제품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유당불내증으로 산다는 것은 꽤나 불편하다. 인기있는 음식마다 치즈나 요거트 소스가 들어가고, 카페라도 가면 스무디니, 라떼니, 카푸치노니 하는 모든 음료에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유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리라. 그러니 우유를 못 먹는다는 것은, 대중적이고 사회적인 입맛을 어쩔 수 없이 거부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나는 절망했다!


아, 신이시여! 유제품을 좋아하게 하실 거면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몸도 주셨어야죠!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기 마련이다. 유당 불내증이라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려니 친구 중 하나가 백마를 탄 초인처럼 나타나 가로되,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먹어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런 우유가 있으면 진작 찾아 마셨지.ㅠㅠ"

"아니, 그게 아니고,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마셔보라니까?"

"아니 그런 제품이 있어?"

"그래, 매일 유업의 '소화가 잘 되는 우유'!"

"!!!!!!!!!"


그렇다. 세상에는 '락토프리', 즉 유당을 미리 분해해서 파는 우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이후 유당불내증도 마실 수 있는 유제품 혹은 유제품의 대체품을 찾는 것을 나의 여러 취미 중 하나로 삼았다. 내 취미에 대해 글로 풀어내는 것은 나의 소일거리 중 하나이므로, 여기에도 그 정보를 조금 공유해볼까 한다.


자, 유당불내증이면서 유제품을 즐기는 방법, 이제 한번 알아보자.




유당불내증이지만 유제품을 버릴 수 없는 당신에게



1. 락토프리 우유

락토프리, 즉 유당분해 우유는 미리 유당을 분해한 우유로, 우유의 고유한 맛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유당 분해 효소가 없는 사람들도 우유를 즐길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일반 우유에 비해서 다소 단맛이 나는 편인데, 이는 유당이 분해되면서 단 맛을 내는 성분이 생성(?)되어 그렇다고 한다.


이 제품은 유제품 덕후인 내게는 최상의 선택지였고 실제로 매주 락토프리 우유를 2팩씩 사다가 마시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매일 유업의 소화가 잘되는 우유가 유일했지만, 요즘은 파스퇴르 우유, 서울 우유 등 다양한 기업에서 락토프리 우유를 출시해서 선택의 폭이 좀 더 넓어졌다.


개인적으로는 매일 유업의 것이 가장 깔끔하고 맛있지만, 가격이 3200원 대여서 아주 싸지는 않다. 그럴 때는 서울 우유 등에서 내는 프로모션 상품(2개 세트가 4000원 초반대)을 노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 그대로 우유가 쓰이는 거의 모든 음식에도 활용할 수 있다. 900ml이상의 큰 팩은 좀 규모 있는 마트에서만 팔지만, 190ml 정도의 작은 멸균팩은 웬만한 편의점에는 다 들여놓는 편이니 그걸 노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유를 자주 먹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으로 정기 배송시켜 먹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내 경우는 멸균 팩 24개 들입을 사다가 편하게 먹다가,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드는 것 같아서 큰 팩 우유를 직접 사다먹는 것으로 바꿨다. 소소하게 환경을 생각하기...!)

참고로 매일 우유의 경우 초콜릿 맛, 바나나 맛, 미숫가루 맛, 저지방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니 그것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자꾸 매일 유업 이야기를 해서 광고 같은데 그런게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라서 그렇다^^;)


+) 그것 아는가? 무가당 제품에 한해서, 락토프리 우유는 강아지나 고양이와도 함께 마실 수 있다. 동물들은 유당 분해 효소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과잉 섭취하면 안 좋은데 이 제품은 이미 유당이 분해 되어 있으니 함께 마셔도 좋은 것이다.



2. 우유 대체품: 두유, 아몬드 브리즈, 코코넛 밀크 등

우유 대체품으로는 두유나 아몬드 브리즈 같이 우유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고소한 맛이 나는 제품을 쉽게 추천할 수 있다. 콩 비린 맛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한번 도전해 보자. 두유는 정말로 다양한 제품이 있다. 베지밀 등 우리가 흔히 아는 가당 제품이 가장 많지만, 매일유업을 비롯해서 이름 있는 회사라면 대부분 무가당 두유를 제조하고 있고, 실제로 맛도 깔끔한 편이다. 연세두유, 건국두유, 황성주 두유, 스누(서울대) 두유 등에서 만든 수많은 무가당 두유를 먹어봤는데 모두 식감과 질감, 맛이 다르다는 점도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매일 두유가 적당히 깔끔하면서도 닝닝함이 덜해서 자주 애용한다.


혹은 아몬드밀크나 코코넛밀크도 나쁘지 않다. 매일 유업에서는 아몬드브리즈라는 아몬드밀크를 판매하고 있는데, 두유와 달리 고소함이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물 맛(?)이 나서 유당분해 우유나 두유가 없을 때만 사 마시고 있다. 그렇지만 적절한 무가당 두유가 없다면 이것도 훌륭한 대체품이 될 수 있다. 코코넛밀크는 먹으면 든든하고 맛도 좋지만 무가당 제품은 잘 찾기 어렵고, 많이 먹으면 느끼하다는 단점이 있다.

참고로 씨리얼에 말아 먹을 때는 락토프리 우유>두유>아몬드 브리즈 순으로 낫다. (코코넛 밀크는 씨리얼에 안 말아 먹어봤다. 그렇게 먹어본 사람이 있다면 제보해 달라.)


+) 요즘은 귀리 우유라는 것도 나왔다고 하는데, 아직 먹어보지 않았다. 이것도 먹어본 사람이 있다면 말해 주길 바란다! 내 미각적 호기심이 잔뜩 부풀어 있는 상태이니!


3. 유당 분해를 도와주는 효소제

그러니까, 유당분해효소 영양제다. 섭취 방법은 간단하다. 유제품을 먹고 나서 한 캡슐 먹어주면 끝! 평상시에 소지하고 다니다가 불가피하게 유당 분해되지 않은 우유가 들어간 제품을 섭취해야 할 때 유용하다. 나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사 먹기 시작했는데, 컨디션이 특별히 안 좋을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 나는 아이허브에서 구매했는데 다른 곳에도 괜찮은 제품을 저렴하게 팔지 모르겠다.



4. 유당불내증들을 위한 카페 메뉴


자, 그렇다면 카페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유제품들 속 유당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락타아제는 생각보다 비싸므로 매번 먹기는 좀 곤란하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개인 카페에서는 유당불내증을 위한 메뉴를 찾아보기 힘들지만(하다못해 두유 메뉴라도 넣어주면 좋겠다.)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의 경우 유제품이 들어가는 음료를 유당분해 우유나 두유로 대체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두 군데는 스타벅스폴바셋으로, 스타벅스는 일부 제품의 우유를 두유로 대체해 주며, 폴 바셋의 경우 일부 제품에 한정하여 일반 우유를 매일 유업의 '소화가 잘 되는 우유'로 바꿔준다. 물론 일반 우유를 기본으로 한 음료가 있기 때문에 모든 음료가 대체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유당불내증 환자에게는 이 정도도 엎드려 절하고 싶을 정도로 고마운 일이다!


그 밖에 커피빈, 투썸플레이스, 빽다방, 엔제리너스 등이 두유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찾은 몇몇 매장들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응한 것으로 보아 모든 지점에서 시행하는 서비스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한국인의 70%는 (자기가 그 사실을 알고 있든 아니든 간에) 유당불내증 환자라고 한다. 이 수많은 유당불내증들을 위해 많은 유제품 제조업체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는(적어도 나는!) 우유를 아주 좋아하고, 우유가 들어간 음식도 좋아하며 그를 위해서는 얼마쯤의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방귀 뀌지 않고 화장실 가지 않고 우유를 마시고 싶다. 이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점점 더 많은 업체들에서 유당불내증들을 위한 제품을 내어주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다들 방귀 뀌지 않는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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