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스프링스> 시사회 관람 리뷰
'오늘만 사는 것 같다'는 술어가 있다. 이 말은 내일 일은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제가 할 일에 돌진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붙는 수식어이다. 이러한 수식어는 특히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빈번하게 쓰인다. 전세계적으로 불황이 휩쓸고, 당장 내일의 일을 기약할 수 없는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오늘'을 사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새롭게 생겨나는 '욜로(You Only Live Once)'라든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들은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한 젊은이들의 사정이 반영된 결과이리라.
<팜 스프링스>의 두 주인공, 나일스와 세라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크게 유리되어 있지 않다. 자,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자.
나일스는 오늘만 사는 남자이다. 말 그대로,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오늘에 갇혀 버리고 만 그는 그렇게 수천 번의 오늘을 살면서 정말이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무한히 반복되는 오늘을 벗어나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돌아오는 '오늘'의 아침에 나일스는 굴복하고 만다.
반면 세라는 오늘이 얼른 지나가버리고 내일이 오기를 바라는 여인이다. 남 모를 비밀을 품고 있는 그녀에게 현실은 지나치게 고통스럽고, 그녀는 그것을 죄 잊어버리려는 것처럼 술을 들이킨다.
이러한 둘은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나란히 '오늘'에 갇혀버리고 만다. 이 반복되는 시간의 섬에서, 단 둘이!
"소용 없어요, 세라. 다 해봤다고요."
'오늘'을 벗어나려는 세라에게 타임 루프 선배인 나일스는 말한다. 운명에 저항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나는 당신과 있는 것이 좋으니 함께 즐거운 '오늘'을 보내자고. 세라 역시 수 많은 '오늘'을 그와 보내며 그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오늘'을 벗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오늘'에는 그녀가 저지른 과오가 남아있고, 그 과오를 바로잡으려면 내일이 와야했으므로.
이 영화는 흔한 타임 루프 클리셰의 유쾌한 점을 따라가면서도 재치있게 비튼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타임 루프를 깨고 나가기 위한 열쇠는 두 남녀의 회개 혹은 개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혹은 선량함도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실험적이고 과학적이며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 성취된다. 여주는 그 수많은 오늘을 활용해 양자 역학 따위를 통달해버리고, 마침내 '오늘'을 벗어나는 방법을 깨닫는다.
내일로 나아가기 위한 열쇠는, 내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인 셈이다.
그리하여 '내일이 오기를 두려워하던' 남자와 '오늘이 제발 지나가기를 바라던' 여자는 '오늘'을 벗어난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서로가 있어 행복할 거라는 동화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겠다. 이 영화는 그러기엔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예상할 수 있다.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들은 성공적으로 오늘을 살고, 어제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내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제 실수를 바로잡고 원하는 것을 위해 나설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가벼운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인상이 든다. 성행위나 폭력에 대한 묘사가 가볍게 다루어진다는 점에 미성년자들에게 그렇게 권장할 만한 영화는 아닐 거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싫지 않은 이유는 그 특유의 유쾌함에 있다. 클리셰를 적절히 비트는 재치와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심도 있는 고찰은 관객들을 어렵지 않게 그들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영화를 보며 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의 어제의 실수를 부끄러워하고, 오늘의 과오를 외면하거나, 내일 있을 일로부터 회피하곤 한다. 우리는 그럴 만한 사회를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실수와 과오는 바로 잡으면 되고, 내일은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나아가면 된다. 작은 것부터, 우리 눈 앞에서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해내면서.
자, 우리도 내일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한 발짝씩 나아가다보면 내일은 어느새 오늘이 되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