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극적인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HSP가 살아남으려면..
소리, 빛,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하루의 기운이 쉽게 요동친다. 게다가 PMS로 인한 감정 기복도 크고, 우울감에 빠지기 쉬운 성향도 있다. 이런 내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길을 택했다는 건, 스스로에게 꽤나 큰 도전이었다.
HSP는 비유하자면, 성능이 매우 뛰어난 '슈퍼 안테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테나가 극도로 민감해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잡아낼 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뛰어난 기술이니 장점도 많겠지만, 듣기 싫은 소음까지 다 들려오니 치명적인 단점도 공존하겠죠.
-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사실 처음부터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원래 필라테스 센터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고용과 관련된 문제로 상호 합의 하에 퇴사하게 되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몸과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스스로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퇴사 이후 겉으로는 ‘쉬는 시간’처럼 보였지만, 내면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누구지?”
이 질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아왔고, 나는 무너진 정체성 위에 ‘나’를 다시 세우고 싶은 마음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 일상, 내 생각, 그리고 내 마음을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영감이 되기를 바라며 콘텐츠를 만든다. 하지만 쉽지 않다. 매일같이 도파민을 자극하는 숏폼 콘텐츠 속에서, 나처럼 예민한 사람은 쉽게 지치고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춤을 추며 릴스를 찍는 사람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 피드 구성을 위해 하루의 감정을 포장하는 사람들… 그들이 가벼워 보였다. ‘진짜 삶’보다 ‘보이는 삶’을 중요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진짜 삶’을 성실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남을 판단하면서도, 내 삶은 무기력했고, 방향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 시절의 나는, 콘텐츠의 세계를 몰랐고, 무엇보다 내 마음의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을 부러워했던 걸지도 모른다. 보여줄 것이 있고, 기록할 수 있는 하루가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는 것. 그렇게 ‘나도 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고, 결국 크리에이터의 길로 들어섰다.
콘텐츠란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발견해가는 여정이라는 것. 나의 감정, 나의 시선, 내가 느낀 감동과 혼란…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은 치유 그 자체였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팔로워 수에 연연하고, 좋아요 수에 휘둘렸다. 나보다 잘 되는 사람들을 보며 좌절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삶을 사는가, 내가 진심으로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 나는 단순히 '잘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나답게 만드는 콘텐츠'를 꿈꾼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줄 수도 있다는 걸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냥 나답게 굴었을 때'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캠핑하며 요가하기, 요가원에 가지않고 집에서 요가하기, 우울증이 다시 찾아왔을 때의 좌절감을 나눴을 때 각종 소소한 이벤트 뿐만 아니라 요가복 협찬, 숙소 지원, 온라인 요가원 앰버서더가 되었다. 나다운 콘텐츠를 만들고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콘텐츠의 힘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① 온라인에서 성공하려면 오프라인 삶이 단단해야 한다
모든 콘텐츠는 온라인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오프라인에서 살아간다.
나는 한때 온라인의 반응에 너무 민감해져서, 하루의 기분이 '좋아요 수'에 따라 좌지우지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의 나, 즉 실제의 나는 점점 힘을 잃었다. 또 온라인에 드러난 나의 모습과 실제의 삶에 괴리감을 느껴 괜한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다시 싫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관찰하고 경험하며 확신하게 됐다.
좋은 콘텐츠는 결국 ‘좋은 삶’에서 온다. 내 삶이 충만해야, 내 말에 진심이 담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오프라인의 시간에 더 집중한다. 요가와 캠핑, 산책과 독서. 내 감정을 다독이는 시간들이, 결국 콘텐츠를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② 꽤 많은 공부가 필요한 세계다
자극적인 리듬, 세련된 편집, 후킹 멘트, 감정선을 건드리는 구성…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크리에이터로 살아남기 위해선, 콘텐츠를 구성하고 편집하는 기술은 물론, 글쓰기와 브랜딩, 마케팅까지 배워야 한다.
나 역시 처음엔 무작정 시작했지만, 점차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유튜브 편집 프로그램 사용법부터, 썸네일 디자인, SNS 알고리즘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였다.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아야, 나다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③ 어린 세대에게 콘텐츠는 ‘놀이’다
나보다 훨씬 어린 23살 크리에이터를 만났을 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헤더님, 요즘 애들한테 콘텐츠는 그냥 놀이예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콘텐츠를 진지한 커리어로 여겼고, 수익과 성과를 위해 많은 걸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장난처럼 릴스를 찍고, 그냥 일상을 올린다. 성공과 실패를 계산하기보다,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보다 더 느릴 수 밖에 없다. 격차가 너무 큰 나머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따라잡아야 한다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쟁하는 곳이지만,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겠다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면 아무도 제재할 수 없는 곳이 온라인 세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일을 통해 내 삶을 다시 살아내고 있다는 것. 그 의미에 집중하면 콘텐츠는 나에게 삶의 연장이자, 회복의 과정이 되었다.
HSP, PMS, 우울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콘텐츠를 만들며 살아가는 루틴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완벽하게 극복하는 것들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극복'이라는 단어는 무자비하게 확실하고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그 루틴을 나누고 싶다.
그 루틴은 거창하지 않지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쫌쫌따리’한 기술들이다.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삶의 기술을, 다음 편에서 함께 나눠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