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이는 힐링 말들이 건너뛴 것들
나는 3년째 경력단절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직장을 떠난 뒤,
크리에이터로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요가와 캠핑, 셀프케어를 기반으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내 삶을 작은 조각들로 기록해 왔다.
나는 HSP(감각 민감성 성향)를 가지고 있고,
PMS(생리 전 증후군)으로 인한 정서 기복도 크고,
오랜 우울증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일상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며,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고,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지는
어쩌면 비슷한 마음을 가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쓴다.
좋아 보이는 말들, 그 말들이 가끔은 왜 상처처럼 느껴지는지에 대해.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존재만으로 충분해요.”
“당신은 지금도 빛나는 사람이에요.”
“있는 그대로 괜찮아요.”
이상화된 말들.
영적인 말들.
긍정심리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들.
그런데 어떤 날,
그 말들이 위로가 아니라 억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말하는 사람은 좋은 뜻으로 했겠지만,
정작 듣는 나는 위로받기는커녕
어떤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 말에는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내 감정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기 안의 신념을
‘좋아 보이는 말’로 들이미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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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은,
좋은 말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
그저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은 나의 괴로움을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어.”
“그 말, 너무 아팠겠다.”
“정말 그 상황이면 나도 똑같이 느꼈을 것 같아.”
이런 말 한마디가 더 진짜 위로다.
좋은 말보다,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과 그의 감정을
궁금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래서,
이제는 함부로 ‘괜찮다’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누군가의 고백 앞에 있을 땐,
내 안의 신념이나 조언보다
그 사람의 감정을 먼저 느끼고 싶다.
그게
진짜 위로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를 실험하듯 살아간다.
기분이 오락가락할 때도,
다시 나를 부정하게 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감정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덮어버리는 말들에
더 크게 상처받곤 했다.
그래서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누군가에게도
“그럴 수 있어.”
“나도 그런 적 있어.”
“진짜 힘들었겠다.”
이런 말을 먼저 건네려고 한다.
아니,
사실은 좀 더 적나라하다
“환장한다..”
“(머리를 짚으며) 어휴…
진짜 너무 힘들 것 같은데..? “
좋아 보이는 말보다,
좋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세계에 진심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 자세’부터 갖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내 감정을 존중받는 첫걸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