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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릭이지만, 주일엔 스님과 차담합니다.

나는 무슨 복이 이리도 많나


백양사 큰스님께서 요즘 왜 차담하러 오지 않냐 하셔서 이번 주말엔 백양사로 향했다. 근처에 이렇게 아름다운 고찰이 있다는 건 내가 카톨릭 신자인걸 떠나 정말 행운이다. 


큰스님과 차담을 하는 곳은 앞 뒤 문을 열면 여름에는 시원한 맞바람으로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온돌바닥과 향기로운 차향이 묻어있어 여러 이유로 차가워진 몸과 마음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평온한 곳이다. 그냥 그런 곳이다. 

이유 없이 무장해제 되는 그런 곳.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스님께서 세뱃돈을 주셨다.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 게다가 한지에 멋지게 붓글씨로 쓰인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내밀며 작가에게 의뢰해 받은 몇 개 없는 것이라고 새해 선물이라고 챙겨주셨다. 빈손으로 그냥 쫄래쫄래 온 나는 불자도 아니고 카톨릭 신자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런 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늘 이렇게 자비롭게 대해주신다.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에 일어났다가 목감기가 올 것 같이 코가 시큰거리는 걸 알아차리고는 감기약을 드시고 다시 잠드셨단다. 그 약 기운에 알람을 하나도 못 듣고 깊은 잠이 들어버려 예불에 늦을 뻔 한 오늘 아침 에피소드를 대보름 땅콩과 호두를 하나하나 까주시며 해 주셨다. 예불은 늦을 뻔했지만 그 잠 덕분에 오려던 감기가 도망가 버렸다고 껄껄 웃으시는 스님을 따라 나도 미소 지었다. 알맹이 땅콩과 호두를 조용히 골라 먹으며.


예전에 분당 살 때, 5년 정도 6시에 시작하는 새벽미사 해설봉사(미사를 전체적으로 진행하는 사회자 같은 역할)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보좌신부님 한 분이 아침잠이 너무 많으셔서 늘 미사 시작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오곤 하셨는데, 한 번은 15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으셔서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해설자 자리를 비우고 신부님 사택에 달려갈 수도 없고, 수녀님이 신부님께 계속 전화해도 일어나지 않으셔서 사택에 달려가 문을 두드려 깨워 오셨더랬다. 오래전 그날의 기억에 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에 시간은 훌쩍 두 시간이나 지나 버렸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내 두 손에는 스님께서 챙겨주신 대보름 땅콩과 호두 한 봉지에 과일 떡이 한가득이다. 물론 세뱃돈과 복을 기원해 주시는 붓글씨 선물도 함께.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도시에만 살다, 아무런 연고도 지인도 없는(회사 사람 제외) 이 시골에 온 나는 무슨 복이 이리도 많아 1년여 짧은 시간만에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맺고 또 이렇게 아낌없는 돌봄을 받는가 하는.. 


때로 누군가는 밥은 먹었냐며 반찬을 해다 주기도, 때로 누군가는 텃밭에서 직접 기른 온갖 채소와 과일을, 또 다른 누군가는 직접 담근 매실청도 내어준다. 집 앞 카페 사장님은 탄산음료가 갑자기 먹고 싶어 졌단 내 한마디에 카페 재료인 음료들을 아낌없이 내어주기도 하고, 매일 가던 수영을 드문드문 가면 얼굴 정도만 아는 이들도 자주 좀 보자며 수줍은 안부를 먼저 건네어 준다. 여자축구부 주장인 분식집 사장님은 항상 튀김 한 두개는 더 챙겨 주신다.


극 내향인에 사회성 제로 집순이인 내가
무슨 복이 이리도 많냐 말이다  


집에 돌아와 저녁에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면서 문득, 낮에 있었던 그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스님께서 선문답처럼 몇 가지 메시지를 나에게 던져 주셨다는 걸 알아차렸다. 땅콩 골라먹느라 흘려 들어 그땐 몰랐는데, 침묵과 명상을 통해 그 시간을 성찰하고 돌이켜보니 노스님의 깊은 뜻이 무엇이었는지 밀물처럼 밀려든다. 휘영청 밝은 오늘밤 대보름 달처럼 말이다. 


스님께서 주신 선문답 메시지는 다른 글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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