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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Dec 11. 2020

흑인 동네에 4년간 살았다.

시카고 하이드 파크에 4년간 살았던 나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여행지는 아마도 시카고가 아닐까 싶다. 내가 시카고에 머물렀던 4년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 도시에서 내가 가진 나의 정체성은 이방인으로서의 의미가 컸기 때문에 그 시간을 여행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시카고는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그만큼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데, 시카고는 인종에 따른 지역 구분이 눈에 띄게 확실하다. 북쪽으로 갈수록 백인이 많고 남쪽으로 올수록 흑인이 많으며,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히스패닉이 모여있는 동네가 따로 있다. 나는 시카고 남쪽의 하이드 파크라는 동네에서 살았는데, 그 동네에서도 나는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았다. 대부분이 흑인인 동네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했는지, 수 없이 들어온 안전에 대한 주의 때문이었는지, 나는 나를 그들과 철저하게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했다. 심지어 내가 그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을, 특히 흑인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겼다. 동네를 걸을 때면 핸드폰을 절대 손에 쥐거나 밖에 내놓고 다니지 않았고, 평소에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으며, 밤에는 절대로 외진 곳을 가거나 이어폰을 끼고 걷지 않았다. 훤한 대낮에도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고 구걸하거나 "Excuse me, ma'am" 하며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하며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그런데 올해 10월에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의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에게 부당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그를 추모함과 동시에 국가 건립 이래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이어져오는 제도적 인종차별에 대한 시위가 있었다. 상당수의 시위는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시위자들이 모든 가게의 유리창을 깨 부수고 물건을 훔치는 등 그 폭력의 수위가 위험할 정도로 높았다. 총기 규제가 잘 되지 않는 나라여서 사람들의 불안은 더 컸다. 우리 동네는 그래도 흑인 위주의 동네여서 폭동이 비교적 심하지 않았지만, 백인들이 모여있는 북쪽 동네는 정말 심각했다. 시위가 벌어질 때 나는 외출을 자제했으며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을 때였지만), 내 친구들도 몇몇 참여한 동네 시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죽어가는 장면은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나는 이 영상이 재생되는 순간 눈물을 흘렸고 한동안 얼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감히 그 8분 46초라는 긴 시간 동안 무릎으로 한 사람의 목을 짓누르고 있는 백인 경찰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오갔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완벽히 낯설지 않다는 것에 대해 더 충격을 받았다. 역사책에서 본 린칭(lynching)의 사진과 영상 속 장면이 겹쳐지면서 눈물이 났다. "숨을 쉬지 못하겠다 (I can't breathe)" 고 다급하게 말하며 살려달라고 간청하다가 한 순간 축 늘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흑인들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인식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나는 왜 그들과 있으면 나의 안전에 대한 불안을 느낄까. 어떤 흑인 남성이 쓴 글을 읽고 나는 이러한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리만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니라, 그들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흑인들 조심해라"라고 교육을 받은 것처럼, 그들도 그들의 부모로부터 "모자 깊게 눌러쓰거나 마스크 쓰고 다니지 말아라, " "수상쩍게 행동하지 말아라, "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걷지 말아라, " "경찰이 불러 세우면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여 주고 힘으로 저항하지 말아라" 등의 교육을 받는다. 자신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사회에 맞추어 그들도 그들만의 안전 교육을 하는 것이다.


내가 과연 수많은 흑인 사람들이 부당한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해 완전히 결백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백인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에게 가한 물리적인 폭력만큼이나 내가 지닌 편견이 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인 사회를 조성하는 더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았을까?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오프라 윈프리 등 몇몇 흑인 인물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해서 내가 보편적으로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아직 이런 인식을 현실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바꿀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내가 앞으로 진정으로 흑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들에 대한 나의 방어막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두 가지 확실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1) 나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배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2) 나의 자녀가 나와 같은 인식을 가지도록 교육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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