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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Dec 16. 2020

식욕은 자연스러운 거야.

배고프다고 죄책감 느끼지 않을래. 나를 잘 먹여줄래!

땡! 하고 스무 살이 되어버린 순간 당연한 듯 저의 다이어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헬스장을 가는 한 시간 빼고 계속 누워서 지내며 아주 최소한의 음식만 먹었습니다. 하루에 계란 두 개 정도, 고구마 두 개 정도 먹었던 것 같아요. 물론 가끔 가족과 식사도 하며 지냈지만, 그때 저는 그냥 무작정 적게 먹는 다이어트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식욕의 화가 드디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운 없이 누워있지만 말고 헬스장이라도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못 이겨 겨우겨우 한밤중에 밖에 나와, 헬스장은 가지 않고 그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초콜릿 과자를 한 박스 산 후 주차장을 걸으며 허겁지겁 한 통을 다 비워냈던 일이 생각납니다. 과자는 너무 맛있었지만, 기분은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음식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시작으로 저는 4년 넘게 이어질 제 식욕과의 적대관계에 돌입했습니다.


식욕과의 전쟁은 제 삶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식욕을 통제하면 할수록 오히려 저는 식욕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의 어둠 속에서 저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머릿속에는 온통 이 과자를 다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과자를 집는 손과 입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날 후로 하루 종일 음식 생각밖에 나지 않았고, 먹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저를 무척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식욕과의 전쟁을 시작해버린 순간에도, 저는 몰랐습니다. 이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미워하면 안 되는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처럼,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을 괜히 건드려본 것처럼, 제 몸은 이미 식욕에게 항복하라고 저에게 신호를 주고 있었습니다. 이건 아무리 오래 싸워도 내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이 싸움은 인내하고 버틸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싸움이라는 것도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습니다.


돌보아주지 않을수록, 식욕은 나에게 화를 냅니다. 무시하고 미워할수록, 식욕은 나에게 더 큰 대가를 지불하게 합니다. 내 몸이나 마음과 마찬가지로, 나의 식욕 또한 자주 살피고 진심을 다해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식욕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나 자신과의 관계 또한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배고픔을 인정하고,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식욕과 내가 나의 건강과 내가 원하는 몸을 위해 협업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식욕을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욕구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입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자주 배고프지? 살이 이렇게 쪘으면서, 아직도 배고파?"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책망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쌓여, 저는 제게 가장 잔인한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하루 24시간 매 순간을 같이하면서 스스로를 혼내고, 거의 악플 수준으로 자신을 비방하기만 했으니까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식욕을 "잘못된 것"이 아닌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결심한 후, 저는 조금씩 저를 보살피는 진짜 방법을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난 4년간의 일기장은 온통 부정적이고 나를 비판하는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식욕과 친구가 된 지금의 저는 많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식욕을 마치 죄를 부추기는 악마로 취급했다면, 이제 저에게 식욕은 삶을 더 행복하고 활기차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식욕과 친구가 된다고 해서 원하는 몸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잘 먹고 행복하면서도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브런치에서도 그런 저의 일상을 가끔 나누어보려 합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것을 먹어요. 식욕은 진짜, 정말, 자연스러운 거예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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