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더리 Dec 18. 2020

미제(美製) 코로나 경험기

미국에서는 진짜, 이러다가 언젠가 나도 코로나에 걸릴 것 같았다.

"차이나 바이러스 (China Virus)".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부르는 명칭이다. 와, 진짜 대단하다 싶었다. 트럼프의 심술 난 표정과 말투, 손가락질과 함께 내뱉어진 "차이니즈 바이러스"라는 말을 들으니 한국인인 나에게도 진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도 이건 좀 불공평한 공격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에 대한 미운 마음이 들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긴 하지만, 미국 내 상황을 "차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말을 통해 중국 탓으로만 돌리려는 트럼프가 얄밉고 답답했다.


코로나는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중국의 미흡한 대처와 불투명한 소통 방식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지 못한 것에 한몫한 것은 맞다. 하지만 각국의 코로나 재해,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그 정부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과 너무 다른 미국의 대처 방식을 직접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트럼프의 언행이 책임 회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더 화가 났던 건, 트럼프의 부주의한 언행이 안 그래도 심해지고 있었던 미국 내 동양인 인종 차별에 불을 붙이는 꼴이었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미국으로 들어온 이상, 이것은 더 이상 "차이나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미국 사람들이 이제 겪을 바이러스는 바로 American-made, 미제(美製) 코로나였다. 나는 이 글과 다음 글에서 내가 미국에서 겪었던 코로나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온 동네에서 나 혼자만 마스크를 쓰고 다녔을 때 받았던 취급,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져 집에서 룸메이트 네 명과 함께 생활하며 겪었던 일, 음식과 화장지를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 한국에 들어온 지금은 조심하면 그래도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겠지라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그때 미국에서 나는, 아무리 조심해도 이러다 정말 언젠가는 코로나에 걸리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1. 미국인에게 '마스크'란


1월 말,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다. 서서히 다른 감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3월이 되어서야 모두 심각해졌다. 그중 기억나는 것은 워싱턴주 초기 감염자 중에 학교를 다니는 10대 초반의 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 소년을 두고 드디어 "community spreading," 집단 내 확산이 시작되었다고 했던 뉴스이다. 나는 시카고에 사는데, 워싱턴주에서 일리노이까지 바이러스가 확산되는데 얼마나 걸리려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때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마스크를 몇 개 보내주셨는데 (이 마저도 한국에서 수량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마스크를 받은 첫 2주간 나는 도저히 마스크를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마스크를 싫어했고 (2) 마스크가 없었다. 4월이 되어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주변에 중국인 친구 몇 명 빼고는 마스크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서도 제대로 된 N95 마스크는 물론이고 덴탈 마스크도 다 품절이었다. 하루는 도서관에 잠깐 갈 일이 있어 혼자 마스크를 쓰고 나갔는데 나간 지 오분도 되지 않아 마스크 속 내 얼굴이 시뻘게지고 말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그렇게 절대적으로 배척당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주 걸어오던 한 사람은 마스크 쓴 나를 보더니 길을 건너 맞은편 도로로 피신했다. 어떤 사람은 옆에 있던 건물 안으로 들어가 유리문 사이로 나를 노려보며 빨리 지나가라는 눈치를 줬다. 한 커플은 나를 지나친 후 뒤돌아보며 서로 수군댔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손으로 자기 코와 입을 가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마스크를 쓴 신원이 불분명한 차이니즈 한 명"이었고, 위험한 존재였다.


미국 사람들은 마스크가 생소하다. 한국에서는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가 생활화된 지 오래됐지만, 코로나 이전 미국에서 마스크는 자신의 신원을 감추는 수상쩍은 도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하다 못해 배트맨도 얼굴의 윗부분에만 마스크를 쓰지, 입은 다 내놓은 것을 보면 미국 사람들은 얼굴에 난 구멍을 가리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도 미국인들의 마스크에 대한 적대심에 한몫하는 것 같다. 얼굴을 감추는 사람들을 보면 범죄자 혹은 테러리스트를 떠올리게 되는 미국 사람들에게 아직 9.11 테러가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마스크가 있어도 쓰지 말라고?


코로나 이전 나는 뉴욕 타임스를 거의 맹신할 정도로 좋아했다. 물론 어느 언론사나 다 오류를 범하기 마련이지만, 뉴욕 타임스의 기사들은 특히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뉴욕 타임스 팟캐스트 "더 데일리"의 팬이어서 그런 것도 있다. 더 데일리의 호스트, 마이클 바바로 기자가 너무 좋다.) 하지만 코로나에 있어서는, 뉴욕 타임스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언론사들과 마찬가지로 마스크에 대해 말도 안되는 기사들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우리 모두 이 코로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모두 다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언론사에서도 대중을 돕기 위해 의사나 과학자, 전문가들을 인터뷰해서 많은 기사를 내보냈다. 3월 말쯤, 하버드 대학교가 봄방학 전후로 전면 온라인 수업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모든 기숙사에서 학생들을 내보내면서부터, 언론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연구 결과와 대처법을 더 많이 다뤘다. 가장 큰 주제는 물론, 마스크에 관한 것이었다. 아래는 미국 코로나 초기에 나왔던 마스크에 관한 기사들의 제목이다.


외과의 장교가 마스크 사지 말라고 권고: '마스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Surgeon general wants you to stop buying masks to protect yourself from coronavirus: 'They are NOT effective'" URL: https://www.marketwatch.com/story/surgeon-general-wants-you-to-stop-buying-masks-to-protect-yours elf-from-coronavirus-they-are-not-effective-2020-03-01?mod=article_inline)

야외 운동할 때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가? ("Do Runners Need to Wear Masks?" URL: https://www.nytimes.com/2020/05/30/health/running-exercising-masks-coronavirus.html?searchResultPosition=18)

미국 의료진들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다고 한다 — 마스크를 쓰지 말아야 하는 3가지 이유 ("U.S. health officials say Americans shouldn’t wear face masks to prevent coronavirus — here are 3 other reasons not to wear them" URL: https://www.marketwatch.com/story/the-cdc-says-americans-dont-have-to-wear-facemasks-because-of-c oronavirus-2020-01-30)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데, 과연 마스크가 정말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까? —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손을 잘 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Many in China Wear Them, but Do Masks Block Coronavirus? — They may help, but experts say it's more important to wash your hands." URL: https://www.nytimes.com/2020/01/23/health/coronavirus-surgical-masks.html?searchResultPosition=258)

대중들에게 마스크가 없어도 된다고 한 것의 역효과 ("Why Telling People They Don't Need Masks Backfired" URL: https://www.nytimes.com/2020/03/17/opinion/coronavirus-face-masks.html)


이런 기사가 거의 두 달 동안 매일 나오는데,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은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며, 잔말 말고 한국에서 보낸 마스크 열심히 쓰고 다니라고 하셨다. 심지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서도 코로나 초기에는 대중에게 "제발 마스크 좀 사지 말라"라고 권고했다. 마스크는 "아픈 사람이 쓸 때만 도움이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며, 아프지 않은 사람이 쓰는 것은 부족한 마스크 재고를 축내기만 한다고 했다. (감염 무증상자들의 전염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마스크는 "마스크를 쓴 사람에게만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마스크가 부족하니, 마스크를 의료진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해 주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의료진의 마스크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마스크는 코로나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이것이 아마 미국이 초기 단계 대응에 실패한 수많은 원인 중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지 않을까.


이렇게 3, 4월은 마스크를 둘러싼 혼란 속에서 지나갔다. 마스크가 없는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받은 몇 안 되는 마스크를 하나씩 나눠주며 한편으로는 "줘도 되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까웠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나를 보고, 돈을 줄 테니 하나만 팔아달라는 친구도 있었다. 왜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 마스크 재고가 그토록 부족했는지, 마스크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중국산 마스크를 수입해야 한다고 자존심 상해하는 미국을 보면서, 대중들에게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하는 미국 고위 관계자들을 보면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날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식욕은 자연스러운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