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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Jun 14. 2021

다시 미국으로 가야한다.

내 삶에 "Resume" 버튼을 다시 눌러야 한다.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집에서 논다.


미국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코로나가 심해진 작년 여름에 한국으로 들어와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첫 회사, 첫 신입사원 생활을 재택으로 시작했다. 월급을 받아온지는 거의 8개월이 넘어가지만, 회사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며 일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한국에 있는 내 방에서, 새벽 네시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만 보고 일을 한다. 회사 동료와의 유대감이나 단체에 대한 소속감은 제로. 아르바이트하는 기분이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배워야 하며, 내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한국 나이로 스물다섯인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회사 생활을 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 좋게 말하면 더 겸손해진다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내 능력이나 실력의 밑바닥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업계 특성상 위에 계신 모든 분들은 박사 과정은 물론이고 교수직을 겸하거나 자신의 전문 분야가 뚜렷하다. 그 밑에 있는 분들도 모두 똑똑하고 자신의 분야에 숙련되어 있다. 통계학은 둘째치고 전공과목인 경제학 지식도 가물가물한 내가 지금, 프로그래밍이나 엑셀 기능도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분들을 "보조하는" 위치에서 일을 하려고 하니 벅차다. 무슨 일을 하던 시간이 꽤 오래 걸리고, 일을 할수록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막막하다. 최근 3주, 아니 거의 한 달이 넘게 나는 아무 프로젝트에 투입되지 않았다. 꾸준히 맡은 프로젝트가 없다. 이렇게 단체에서 도태되는 건가?


가끔, 아니 자주, 내가 잘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대학처럼 학구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이어서 불합리적인 대우를 하지 않는다. 사수들도 다 친절하고, 같이 일하기에 좋은 분들이다. 신입으로서는 아주 운이 좋았다. 이런 회사에서, 한국에서 일하는 것을 허락받은 것도 행운이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내 실력이 부족해서 아무도 나와 일하는 것을 원치 않으면, 나는 자연스레 회사에서 나가게 되지 않을까. 일이 없어서 공짜 돈을 받으며 지내면서도, 남는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감과 의구심만이 생긴다. 과연 커리어를 쌓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시간에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목표의식을 가지며 살 것인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쓸데없는 비판만을 남긴 채 나의 고민은 끝난다. 아무런 답을 내지 못한 채로.


왜 오늘, 이렇게 유난을 떠는 것일까. 이런 날이 처음도 아니고, 분명 지난 9개월 동안 이런 날들이 연속적으로 많았는데. 일이 없는 여유 시간 동안 얻은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다. 책도 많이 읽었고, 브런치도 시작했고,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어 새로운 취미도 가지게 되었다. 다이어트나 식이 강박에서 아주 벗어났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내 생활에 대한 의구심이 들고, 타인들과의 소통이 절실해지는 날에는 또다시 음식에 의지하게 된다. 식욕이 끊임없이 생긴다. 먹을 때는, 적어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위안이 된다. 이 빈 시간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다시 음식을 찾는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정말 제대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귀찮고, 내 감각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먹는 행위"를 한다. 이럴 때 먹는 것은 밥이 아니다. 빵이나 과자를 먹는다. 세 개 중 하나를 먹고, 두 개의 빵이 남았기 때문에 하나를 더 먹는다. 이제 빵이 한 개 밖에 남지 않았으니, 남은 하나도 먹어버린다. 어차피 남긴 빵 하나를 먹고 싶어 할 것이고, 머릿속에 계속 생각 날 것이니까, 지금 먹어버린다.


하지만 먹을수록 나 자신이 싫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커다란 소파 왼쪽 구석에서 하루 몇 시간을 앉아서 보내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스물 중반, 다른 청년들은 한창 바쁘게 살아가는 시기인데 나는 왜 집구석에 박혀 있는가. 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미국 시간으로 월요일이 되면, 오늘은 회사 일이 있을까 없을까, 내일은 회사 일이 있을까 없을까 라는 불확실성에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불확실성 속에서 내키는 대로, 내 감정에 맞추어서 사는 생활을 하다 보니 매일 꾸준히 하는 일 (예를 들면 매일 가는 학원이라던지, 부업이라던지)을 시작하기도 내키지 않는다. 지루하고 게으른 생활을 어쩌면 놓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냉철하게 고민하고 선택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나에게 묻는다, 진정 나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사람과의 소통, human interaction 이 절실하다.


(1) 집에서 나와야 한다.

(2) 루틴이 필요하다.


미국 시차로 사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물론 일이 없어서 거의 한국 시차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자다가 4시 반 알람에 깨서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고, 아무한테도 연락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안도감에 핸드폰을 던지고 다시 두 눈을 질끈 감는 아침도 그만하고 싶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가 온 것 같다.


미국은 백신 접종이 많이 진행된 상태여서, 9월에 오피스가 다시 연다고 한다. 8월 말 미국행 비행기를 끊어놓았다. 하지만 더 일찍 가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피스에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일찍 가서 사수들과도 직접 인사하고, 일도 더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회사 생활이 바빠질 9월 전에 조금이라도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회사원 1년 차의 모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되는대로 노력을 하고 싶다. 한국에 있으면 렌트와 생활비를 정말 많이 아낄 수 있지만, 오피스가 오픈하는 날까지 두 달가량 남은 지금, 하루빨리 내 삶에 다시 resume 버튼을 누르고 싶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돈도 중요하니까,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 있고 싶기도 하고. 진전이 없는 이 생활이 지겨워서 미국에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했을 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멈춰진 내 삶을 다시 진행시키는 것이다. 내 일터가 있는, 내 친구들이 있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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