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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Mar 08. 2021

정재승 <열두 발자국>을 읽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 우리 사회와 나의 미래.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과학 기술과 우리 사회의 미래뿐만 아니라, 독자 개인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스물다섯 살인 내가, 그다지 가슴이 뛰지 않는 회사원으로서의 일상을 보내며 읽은 이 책은 나에게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저자가 대학 교수인 만큼 책에서도 다양한 논문들이 많이 다뤄진다. 흥미로운 논문들을 소개받으면서, 학부 졸업 이후 잠들었던 호기심과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깨어난 것 같았다.


책의 초반에는 뇌과학과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 관련된 주장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뇌과학과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고전 경제학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이성적인 인간(rational human being)'의 전제가 실제 사회에서는 오히려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이성적이다'라는 것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유리한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선택의 순간에 사람들은 많은 요소로 인해 종종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고,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결정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학부 때 경제학을 전공한 나에게 이런 내용이 새롭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섰을 때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뇌과학의 힘을 빌려 저자가 책에 담은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이 불문하고 누구나 하게 되는 '진로 고민'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좋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과학적인 근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자기 개발서가 아닌 인문학 책에 담긴 조언이어서 더 특별했다.


제4차 산업혁명에 관한 강의도 인상 깊게 읽었다. 주변에서 많이 들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컴퓨터', '블록체인', '암호화폐', '제4차 산업혁명'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의 융합에 대한 내용은 미래의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면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 줬다. 비트 세계가 제조업과 유통업에 혁신을 일으키면 경제 체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그러한 변화로 인해 나타난 하나의 결과물이다. 이런 변화에 앞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정재승 교수가 말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본문에서 가져온, 오래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다.



(p. 45)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 싫어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만두는 순간,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전략이 다시 바뀌게 됩니다. 무직 상태이거나 학교도 안 다녀서 빨리 뭔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앞에서 본 마시멜로 챌린지의 인센티브 실험처럼 시야가 좁아지고 취직 자체가 중요해져 버려 꿈꾸던 무언가에 도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터널 비전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지금의 자리가 싫다면, 뭘 꿈꿔야 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p. 59) 세상에 나온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기술을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실패하더라도 수많은 시도를 해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직접 가서 여행하고,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면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전체적인 지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해요. 사람들이 그 지도 위에서 어디에 모여 있는지 파악하고, '나는 사람들이 없는 어딘가에 가야겠다' 혹은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곳에 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는 거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라고 내 인생을 올인할 만한 선택을 하려면, 여러분의 머릿속에 그 지도가 있어야만 해요. 그래야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겠죠.


(p. 80)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신중함이나 경솔함과는 사실 큰 관계가 없어요. 잘하는 것만 해왔던 아이들은 칭찬에 민감하고 인정 욕구가 강합니다. 그래서 칭찬받지 못할 것 같은 일은 아예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주느냐보다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혹은 내 맘에 드느냐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인 사람들은 실패할 것 같더라도 그것을 선택합니다. ... 세상은 점점 예측 불가능하고 인생은 늘 불확실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잘하는 것에만 매달리는 사람보다는, 그리고 실패의 두려움이 큰 사람보다는 실패 후에 빨리 회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p. 107) 우리가 가진 집중력의 크기는 한정돼 있는데 그 대부분을 결핍된 것에 쏟게 되면, 다른 것에는 제대로 집중을 못해서 성취도가 낮다는 거지요. ... 만약에 그에게 부족한 결핍이 성적인 문제 혹은 먹는 것과 관련된 문제라면 그것 외에 다른 것들은 거의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는 겁니다.


(p. 224) 우리는 컴퓨터가 수행할 일이 가져야 할 '수학적으로 완결된 논리 구조'를 '알고리즘'이라 부르고, 그것을 숫자와 문자로 표현한 것을 '프로그램'이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컴퓨터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논리 구조를 가진 프로그램 형태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계장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p. 248) 우리가 현실 세계에 살면서도 단절 없이 비트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미디어를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느낄 겁니다. 이런 기술을 '일상 몰입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테크놀로지는 일상 몰입의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p. 253) 아톰과 비트의 세계가 일치해, 교통 시스템을 넘어 제조업과 유통업 전반에 걸쳐 산업 혁신을 구현하겠다는 것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입니다.


(p. 302) 세상의 진정한 변화는 제조업과 유통업까지, 즉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아톰(원자)으로 이루어진 실제 세계'에서도 온라인과 같은 일들이 벌어져야 가능한데 말입니다.


(p. 303) 디지털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개인에게 데스크톱 컴퓨터가 필요했듯이, 제조업과 유통업에서도 혁명을 완수하려면 개인이 '공장(factory)'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조업과 유통업에서도 개인이 대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죠. '마이크로 팩토리(microfactory)' 혹은 '데스크톱 팩토리(desktop factory)'가 바로 그것입니다. 과연 이런 세상은 가능할까요?


(p. 306) 왜 이런 세상을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냐고요? 이런 세상을 설명할 패러다임이 현재 없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의 아톰 경제를 생각해보세요. 아톰은 공간을 점유하고, 원본과 복제본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존재하며, 그래서 원본이 만들어내는 희소성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합니다. 여기 있는 물건을 다른 위치로 옮기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에 인력을 제공해 인건비를 받으며 삽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중앙화 된 자본과 권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비트 경제는 다른 원칙이 통합니다. 비트는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원본과 복제본 사이에 차이가 없어서 무한히 확대 재생산이 가능합니다. 처리하는 데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고 시간은 거의 필요하지 않으며 비용도 별로 들지 않아요. 그러니까 자본이 없는 사람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온라인상에서 구현이 가능하죠. 오프라인 아톰 세계가 고전주의 경제학을 따른다면, 온라인 비트 세계는 롱테일 경제학을 따릅니다. 그런데 두 세계를 일치시키면 과연 어떤 경제학이 통용될까요? 인간의 노동 가치가 한없이 추락한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정보가 처리된 후 오프라인으로 제공한다면, 실물 경제에서도 인간 노동의 가치는 한없이 작아질 텐데 말이죠.


(p. 308) 블록체인은 분산 컴퓨팅 기술 기반의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입니다. 관리 대상 데이터를 '블록(block)'으로 설정하고, 체인 형태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분산 데이터 저장 환경에 저장하는 기술입니다. 말하자면, 수많은 기록을 그냥 한 묶음으로 만들어 체인 형식으로 연결해 개인들이 서버에 나누어 저장해 보관하는 기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블록에는 해당 블록이 발견되기 이전에 사용자들에게 전파되었던 모든 거래 내역이 기록돼 있고, 이것은 모든 사용자에게 똑같이 전송되므로 거래 내역을 임의로 수정하거나 누락시킬 수 없지요. 개인정보는 들어있지 않아서 익명성이 보장되나, 누구도 임의로 데이터를 수정할 수 없고 누구나 변경의 결과를 열람할 수 있어서 매우 투명한 데이터 관리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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