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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Mar 06. 2021

동생이랑 친해?

막내가 대들어서 감사한 오늘.

막내 동생과 나는 다섯 살 차이가 난다. 나는 첫째이고, 둘째와는 연년생이다. 우리 삼남매 중에 막내 혼자 남자다.


주변 사람들과 서로 알아가는 단계에서 가족 관계 이야기를 할 때, 동생이 두 명 있다고 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동생들이랑 친해?" 심지어 미국에서도 들어본 것 같다. "Are you close to your siblings?”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가족에 관한 그 어떤 질문도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동생들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은 왠지 내 약점이 건드려진 기분이다. 동생과 친하냐는 질문은 대게 그 질문자와 아직 친하지 않은 단계에서 받는데, 그래서 더 당황스럽다. 그 질문을 들은 나는 순간적으로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한다.


'왜 이런 질문을 하지? 내가 동생이랑 친하지 않을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건가? 왜 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거지? 내 성격이 너무 딱딱해 보였나? 내가 나만 아는 사람처럼 보이나? 동생들과 그다지 친한 건 아닌데.. 어떻게 답해야 하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해야 하나? 아쉬워하듯이 말해야 하나?'


이 질문은 듣는 이에 따라 정말 어려운 질문이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아직 잘 모르는 사람에게, 그래서 미래의 친분을 위해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동생들과 친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괜히 내 치부를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내 성격에 모난 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몇 번은 꽤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냥 있는 대로 말한다. "아니, 그렇게 친하지는 않아"라고.


누나로서 막내 동생에게 미안한 것이 없지 않아 있다. 사춘기의 10대 때는 동생을 귀찮아해서 그를 동등한 존재로서 상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ㅎㅎ미안..).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대학교 때는 외국에 살았기 때문에 동생과 같이 살지 않은 햇수가 7년이나 된다. 매일 누나에게 비교만 당하는 동생, 내가 제대로 챙겨준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미국에서 다니는 회사가 전면 재택근무로 전환되어서 작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게 되었다. 막내는 수능과 입시를 앞둔 고3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독서실도 못 가고 집에서 수험 생활을 하는 동생과 함께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나는 미국 시간에 맞추어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잠자리가 예민했고, 동생은 동생대로 반복되는 수험생의 일상과 부담감에 예민했다. 그래도 지내다 보니 밥도 같이 먹고 대화도 나누며 서로의 존재가 다시 익숙해져 갔다.


그러던 오늘,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는 동생이 옷을 갈아입는다고 30분째 꾸물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마는 전화가 와서 동생 빨리 운동 좀 시키라고 하셨다. 나는 자동으로 누나 잔소리 DNA를 발동시켰다. "준비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빨리 나가서 운동 해."


돌아오는 동생의 답. 자신의 방에 들어가며, "나갈 거야. 뭔 상관이야." (방문 철퍽).


어이가 없었다. 뭔 상관이냐니. 기분이 안 좋았지만, 나도 운동하며 생각해보니 동생이 대들어줘서 왠지 고마웠다. 서로에게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낼 수 있을 만큼 우리 사이가 조금은 가까워진 건가. 동생에게 내가 좀 편해진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직 친하려면 한참 멀었고, 아마 영원히 진짜 친한 사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동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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