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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Oct 02. 2021

직장인이 되고 나서의 계획

취업했는데, 이제 어떻게 살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행동하느냐, 그런 장기적 계획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느냐는 나중에 정말 엄청난 차이로 다가온다. ... 직장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정말 자신만의 인생이 펼쳐진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그냥 하루하루 지내는 명문대 졸업생이 지금 당장은 더 좋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4년 후면 다르다. 회사에 들어온 이후 계속 준비하고 계획한 비명문대 졸업생이 훨씬 더 우수한 인재가 될 수 있다.


학생일 때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밖에서 정해주었지만, 사회에 나왔다면 자기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만들고 준비해야 하는 시작점에 선 셈이다. 직장인이 되는 순간부터 정말 자기 인생이 시작된다.


- 최성락, 윤수경 저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49가지 결정: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이라는 책으로 만난 최성락 교수님의 다른 저서를 알아보다가, 중고 서점에서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자기 계발서를 발견했다. 우리나라 20세기 현대사를 다루는 인문서인 <49가지 결정> 과는 성격이 굉장히 다른 자기 계발서 분류의 책이었지만, 이제 직장인 만 1년 차가 다 되어가는 내가 읽으면 얻을 것이 많을 것 같았다. 최성락 교수님의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도 내가 그의 저서를 다시 찾게 된 또 다른 이유였다.


학생 때는 '좋은 대학에 갈 것'이라는 목표만 바라보며 생활했다. 물론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는 소망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그때는 내 코앞에 닥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자기소개서, 대학 입시를 해결하느라 나중에 결국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깊이 하지 않았다. 그 답을 학생일 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공부와 학교 생활밖에 하는 것이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생활을 살아온 내가 어떻게 특정 분야에 대한 꿈이나 열정을 키웠어야 했는지 답답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는 입학 사정관이 원망스러웠다. 수시 원서에 적은 나의 미래 계획은 나의 과목 성적과 교외 활동, 수상 경력 등에 맞춰져서 결정되었고, 나는 내 진로에 관한 것이 대학에 가면 다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자기소개서에 내 꿈에 대해 지어낼 수밖에 없는 시기는 여기까지라고 믿었다.


불과 몇 개월 후, 대학에서 나는 또 자기소개서를 지어내고 있었다. 경제학과 학생들이 다 가입하고 싶어 하는, 들어가기만 하면 100% 취업이 보장된다는 동아리의 지원서를 쓰며 나는 또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커리어 프로그램에 선발되기 위해 쓴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나는 또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왜 ~가 되고 싶나요"를 검색하면 그 직업군에 지원한 사람들이 쓴 지원 동기가 수없이 나왔다. 아, 이런 사연이 필요하구나. 오, 저런 스토리도 좋구나. 하며 나의 얕은 경력과 경험들을 짜깁기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는 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들릴까 고민했다. 어떤 목소리로, 어떤 눈빛으로 말을 해야 면접에서 조금이라도 더 진정성 있게 보일까 고민했는데, 이 때는 이런 것을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 당시 나에게 다른 길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급했고, 하루빨리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 싶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안정적인 직장은 스스로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넓은 시야를 가질 틈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인 태도로 대학생활에 임했다. 빨리 취업하는 것이 나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길이라 믿었고, 빨리 취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 따위 할 시간이 없었다. 한 눈 팔지 말고 내가 그럭저럭 조금만 노력하면 잘할 수 있는 것, 이미 내가 익숙한 방식으로 공부하면 확실히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것들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졸업하기 6개월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국가 기관이나 대기업, 중소기업들을 주 고객으로 한다. 고객에게 소송이 생기면 경제학적인 자문을 해주는 일을 한다. 대학 때 나의 전공을 살려서 간 셈이다. 이 회사에서 나는 주로 데이터 분석하는 일을 한다. 코로나로 인해 1년이 넘게 재택근무 중이고, 동료들과 상사들도 매우 합리적이고 친절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나 자신에게 만족을 잘하는 성향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잘 다녔을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나 동생한테 "요즘 하는 일이 재미가 없다"라고 하면 배부른 소리 그만하라며 다그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실제로 배부른 소리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자기소개서에 내 열정에 대해 지어내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있는 회사에서 승진을 하거나, 같은 분야의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 때 끊임없이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할 텐데, 더 막중한 책임과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그 위치에서까지 그들을 속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눈빛과 당찬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아직 입사 1년 차이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업무 태도나 표정이 동료들에게 많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이미 나와 자주 업무 연락을 하는 상사나 동료들은 나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목소리 톤, 말투에서 어느 정도의 무기력함과 거리두기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계속하다 보면 좋아질 때가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정말 관심 있는 분야의 회사를 다니거나 그쪽 일을 하는 상상을 한다. 사실, 그러면 안될 것도 없다. 단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월급이나 재택근무로 인한 여유, 좋은 동료와 상사들이 있는 이만한 회사를 만난 행운을 져버리기가 조금 아까워서,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이 상황이 결코 나에게 유일한 옵션도 아니고 '최선책'도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소개서와 지원서에서 나를 속여가며 온 이곳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리 없다. 지금 이 생활이 나에게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스스로를 내가 만든 감옥에 가두는 셈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에서 최성락 교수님은 직장인이 되면 비로소 자신의 삶이 시작된다고 한다. 학생 때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라는 목표가 사회로부터 주어졌다면, 이제는 자신이 직접 장기적인 목표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회사에서, 또는 이 분야에서 내가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장기적인 계획이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나 똑똑하고 훌륭한 상사분들이지만, 지금 그들이 사는 삶을 목표로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자기소개서에 온 마음을 다해 써 내려갈 수 있는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 이야기를 토대로 목표를 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다. 겁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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