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하는 질문.
9월 초에 혼자 2주간의 국내 여행을 떠났다. 부산을 시작으로, 즉흥으로 계획을 짜서 그때마다 가고 싶은 곳을 정해 옮겨 다녔다. 재택근무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일은 새벽 4시에 시작해서 낮 12시나 오후 2시쯤 끝났고, 오후 시간을 활용해서 돌아다녔다.
여행 중 들린 남해. 전설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자태의 보리암에 반해서, 남해의 바닷빛에 홀려서 내린 결정이었다. 차도 없고 짐도 (정말) 많은 나 홀로 뚜벅이 여행자가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한 남해에 덜컥 갔다. 코로나 때문에 통영에서 남해로 가는 직통 시외버스가 다 없어진 상황이라 진교에서 갈아타야만 했다. 내 몸보다 큰 캐리어와 회사 노트북용 110 볼트 짜리 변압기를 들고 낑낑거리며 남해로 향했다. 남해로 가는 밤, 어둑해진 밤 버스 안에서 내가 괜한 고생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의심도 머지않아 낭만으로 바뀌었다. 어둑해진 밤하늘, 한적한 시골 풍경, 조용해진 버스 안, 김동률의 섹시한 목소리를 들으며 남해에 도착하기도 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해에서는 총 나흘간 지냈는데, 셋째 날에 금산 보리암을 방문했다. 이천 원짜리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려는데, 매표소 할아버지께서 "친구 없어?~ 왜 혼자야~ 담엔 남자 한 명 델꼬와~" 라며 나를 놀렸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보리암까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있는 전망대에서 보이는 남해 바다가 눈이 부셨다. 보리암에 도착해서 절을 둘러보고 산 너머의 남해 바다 풍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했다. 이 풍경, 지금 이 느낌, 이 감정을 내 몸에 어떻게든 많이 담아가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그냥 지금이 좋으면 됐지, 하고 카메라를 내렸다.
해수관음상 앞에 섰다. 보리암에 가면 꼭 다섯 번 절을 하고 오라고 했던, 통영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절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절을 할까? 우리 가족은 항상 소원을 빌며 절을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절에 가면 항상 "부처님께 ~하게 해 주세요" 하며 절하라는 말을 매번 들었다. 어렸을 때 빈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예뻐지게 해 주세요, 남자 친구 생기게 해 주세요,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이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보리암에서 내가 절을 하며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생각한 나의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였다. 성공도 아니고, 부도 아니고, 그저 사랑과 행복. 이 두 가지가 내가 원하는 전부라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여행을 마친 후, 일상으로 돌아온 나의 생활은 아직도 불만족의 순간이 많다. 내 삶, 내 일상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소모적이고 피로한 일이다. 회사 일이 아닌 '나의 일'을 하고 싶은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식생활과 몸이 불만족스럽다. 혼자 재택근무하고 혼자 그 외의 시간을 보낸 지 일 년째, 지금 내 삶에는 내가 무엇인가를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 만날 시간이 기다려지는, 만날 생각만 해도 신나는 사람들이 대학생 때 이후로는 없다.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앞에서 다섯 번 절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 생활이 불만족스럽다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가감 없이 말해보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갑자기 456억이 주어진다고 해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러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주 조금이지만, 더 선명해진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목표도 없고 의욕도 없다고 우울해하는 대신, 내 시간과 노력을 조금씩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써 보려 한다.
'내 일', '사랑', '자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