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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Jan 03. 2023

올해, 심리 상담을 시작하기로 했다.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을 읽고.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경험해 본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식이 강박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난 내면의 우울감과 고립감을 가지고 심리 상담을 시작했을 때, 수차례의 상담에 걸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점차 더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섰고, 심리 상담가가 묻는 질문들이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떤 한 세션에서 나눈 이야기들에 언짢고 화가 나는 감정을 경험하면서,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금 돌아보면 섣불리) 판단해 상담을 중단했다.


4년 후 지금, 나는 "Quarter-life crisis"를 경험하고 있다. 학부 졸업 후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20년부터 시작된,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Quarter-life crisis는 인생의 청년기, 사회 초년생 시절에서 삶의 질과 방향성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시기를 말한다. 임상 심리학자 Alex Fowke는 이를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의 사람들이 겪는 커리어와 인간관계, 재정 상태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 실망감이라고 정의했다. 대학 졸업 후 홀로 서기를 시도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겪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때로는 외롭다고 느껴지는 이 위기감에 붙여진 학술적인 용어가 있다는 것에서 큰 위로를 얻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정의하는 용어가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누군가가 생각해 놓지 않았을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무슨 일을 할 것인가"이다. 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지금 하는 회사 일이 싫지는 않지만, 좋은 것도 아니다. 주어지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인생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건지, 나중에 이 시기를 돌아보며 후회를 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지금 하는 나의 이런 고민들은 주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나는 "미래의 나"에 대해서 추측을 하고 그것이 옳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미래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지금 나의 결정이 미래를 크게 좌우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의 내가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는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후회를 가지고 있을까? 학부 때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후회, 좀 더 많은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쌓지 않았다는 후회, 대학 시절 내 에너지를 다이어트에 너무 집중했다는 후회. 이런 후회들이 결국 나에게 가르쳐준 것도 많지만, 이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를 더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삶을 살며 후회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며 살 수는 없지만, 그 후회들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지금의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 또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상황이 어떻던, 그 상황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에 대해 만족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 자체로 quarter-life crisis를 극복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이런 나의 진로 고민에 심리 상담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난 2년간 미처 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2022년 마지막 달, 친구들의 추천에 의해 Lori Gottlieb의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이라는 책을 읽고 심리 상담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하 모먼트였다. 혼자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비로소 해결이 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외로운 싸움을 하며 답을 구하지 못해 헤매기보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나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성공 확률이 높은 해결 방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23년에는 심리 상담을 시작해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직접 심리 상담을 경험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리 상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1) "마음이나 성질이 연약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하는 것" (2) "돈 낭비"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2) 번 선입견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미국은 특히 심리 상담 가격이 만만찮기 때문인데, 사실 고용주가 보장해주는 보험을 통해 심리 상담을 받으면 한 세션당 20-50불 밖에 되지 않는다. (1) 번 선입견은 심리 상담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내가 무의식적으로 폄하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위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겪는 다양한 고통을 비교하며 우위를 메길 수 없다고 말한다. 연인과의 이별을 맞아 고통을 겪는 사람을 암 진단을 받아 시한부 생활을 하는 사람과 비교해서 후자가 더 힘들고 중요한 위기를 겪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There's no hierarchy of pain. Suffering shouldn't be ranked, because pain is not a contest. (p.336)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은 결국 단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움직인다고 한다. "두려움"과 "사랑"이다. 지금까지 나는 주로 두려움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부모님이나 친구들에 대한 두려움, 고립에 대한 두려움 - 이런 것들에 의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이나 직장을 가지려고 하고,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N)o matter where people fall on those continuums, every decision they make is based on two things: fear and love. Therapy strives to teach you how to tell the two apart. (p. 234)

우리가 하는 고민은 결국 이 네 가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음, 고립, 자유, 무의미함. 나는 죽음으로 인해 유한한 우리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하나의 실수로 인해 망가뜨리거나 그저 그런 "보통의 삶"으로 남게 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다. 삶이나 커리어에 뒤떨어져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서 고립되고 싶지 않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자유, 재정적인 것이나 나의 능력 그리고 인간관계가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나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회사 생활을 매일같이 참아내며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무의미함에 사로잡힐 때다. 나는 왜 사는지, 왜 일을 하는지.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나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란다.

The four ultimate concerns are death, isolation, freedom, and meaninglessness. (p. 266)


지금까지 나는 이런 두려움을 "후회"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반응했다. 2023년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이 던지는 불확실성에 후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

Between stimulus and response there is a space. In that space is our power to choose our response. In our response lies our growth and our freedom. (p. 289)


연휴 때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심리 상담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몇 명 추려서 이메일을 보내봤다. 얼굴 사진만 보고 내 인생 이야기를 할 사람을 찾자니, 이거 데이팅앱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은 것 같았다. 글을 쓰다가 메일을 보낸 사람들 중 한 명에게 전화가 와서 간단한 통화를 했는데, 일정이 정리되면 연락을 다시 주겠다고 했다. 느낌이 좋다! 올해는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에 한 걸음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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