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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힛시커 Jan 31. 2022

아 넌 회사 쭉 다닐 거야? 아 넌 관두고 싶다고~

우린 20살에 만나 30살이 되었다.

"너 진짜 열심히 산다고 내가 막 리스펙 한다고 했었는데ㅋㅋㅋ"

"에이 야, 내가 널 리스펙 했지. 그리고 OO 이는 나 따라서 XXX수업 수강 신청했다가 나만 점수 잘 받고 자긴 망했었어ㅋㅋㅋㅋㅋ"





긴 설 연휴 맞이 대학교 동기의 집에 놀러 갔습니다. 곧 결혼을 앞둔 친구가 남자 친구 (예비 신랑)와 미리 입주해 살고 있는, 우리가 다녔던 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근사한 신축 아파트!


역까지 픽업 나와준 친구의 차를 타고 몇 분쯤 달리다 도착한 아파트 입구에서 나눈 우리의 가볍고도 즐거운 대화.

"야, OOO 완전 성공했네~"

"아 웃겨ㅋㅋㅋㅋㅋ전세인데 너무 비싸 ㅠㅠ"


드디어 집 안에 입성했습니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틀에 찍어낸 듯한.., 저 조차도 살고 있는 그런 여느 평범한 새 아파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 친구가 곧 이곳에서 진짜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생각에 어딘가 조금 더 정이 가고 특별해 보였습니다. 집에 대한 저의 칭찬일색에 신이 난 친구는 여기 입주하느라고 여태까지 했던 고생을 귀여운 영웅담처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잔금 날짜 맞추느라 어떻게 했고, 필요한 가구나 전자제품 보러 다니고 채워 넣으라 퇴근 후 쉬지도 못했고,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감하고자 더 멀리 어디를 갔다 왔고.. 살도 수 kg이 빠졌다는 그런 이야기.


그 수다를 듣고 있자니 정말 우리가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는 실감이 확 나면서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한 듯 찌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낸 오랜 친구이기에 세월이 실감이 나서 그렇겠지요?



한바탕 집 구경을 마치고 친구가 준비해준 로제 떡볶이, 주먹밥, 어묵탕, 그리고 제가 사 온 닭강정에 쏘맥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때 얘기부터 직장 생활 얘기, 그리고 결혼에 대한 얘기. 10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간 느낌이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간 매 순간 크게 인지하지는 못 했지만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정말 벌써 10년이나 되었고, 그만큼 공유할 수 있는 삶의 부분이 꽤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대학교 동기 한 명이 더 합류하여 3배로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고, 가장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는 동기들의 결혼이었어요. 올해, 그리고 내년에 저 포함 대충 꼽아본 동기들만 총 7명이 결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우리 언제 이만큼 컸지!!!!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기억하는 서로의 대학교 때 모습에 대해 말하게 되었는데, 이 두 친구는 그때의 제 모습과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일치하고 어느 면은 더욱 증폭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본 저의 모습은, 대학교 때도 공부뿐 아니라 참 부지런히 움직이고 무언가 추진하고, 실행하고, 바삐 살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안정된 회사에 안주하지 못하고 끝없이 무언갈 하며 열정으로 똘똘 뭉쳐 오매불망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애.


반면 제가 보는 이 두 친구의 모습은 되려 그때 알았던 모습에 비해 의외다 싶은 부분들이 있어 이 또한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친구 A (집주인)

[내 기억]

두뇌도 명석한데 성실하기까지, 상위권을 놓치지 않음

열정 똘똘, 바쁘게 지내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영감과 위안을 얻고 서로를 응원하던 관계

좋은 회사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되나, 들어가고 몇 년 안에 지루해하며 회사를 나와 큰 일 칠 것 같은 야망과 잠재력이 있는 친구


[현재의 친구]

똑똑하고 능력 있어, 역시나 이름난 좋은 회사에 입사

회사가 맘에 안 들고 이게 맞나 싶은 부분도 있지만, 일단 나쁘지 않으니 별일 없으면 이대로 쭉 안정적으로 다니고자 함

그런 한 편, 아직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저를 대단하고 자극받게 하는 친구라며, 반성이 된다며 높게 평가해주는 친구


친구 B (뒤늦게 합류)

[내 기억]

엄마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자라,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

취준 당시에도 모두가 타깃 하는 대기업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

회사에 입사하면 정년퇴직할 것 같은 친구

일탈이라고는 해 본 적도, 관심도 없는 세상 바른 친구


[현재의 친구]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 입사

몇 년간 근무한 지금, 부품이 된 듯한 일상에 회의감

휴직 또는 퇴사를 하고 자기의 일을 찾고 싶어 함




회사 그 이상의 야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는 굳이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지금 다니는 곳을 무탈하게 쭉 다닐 거라고 했고, 힘들어도 참으면서 바르고 얌전하게 직장 생활할 것 같았던 친구는 그만두고 나만의 일을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저는, 그때도 지금도 뭔가 모를 세상의 흐름(?)에 저항하며 내 진짜 업을 찾는 여정에 있고요.


똑같은 듯 달라진 듯, 그렇게 자란 우리 각자의 모습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게 했지만 분위기만큼은 무겁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곧 청첩장 줄 때 또 만나! 하고 같이 막잔을 마시고 헤어졌어요.


언제 봐도 참 좋은 이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뭔가 모를 힘을 얻었습니다.


내가 그때도 지금도 내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좇고 있는 것을 철이 덜 들었다거나, 아직도 정착을 못 하냐는 류의 말로 치부해 버리지 않고 인정해주는 그 든든함.


저에 비해 본인들은 안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반성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걷고 있는 길에 의심을 품거나 저의 모습에 빗대어 쉽게 흔들려하지 않는 것에서 느껴지는 각자의 자신감과 안정감.


그리고 이 모든 게 합쳐져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던 긍정적인 분위기.




저는 왜인지 중,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는 술을 잘 안 먹게 되는데 대학교 친구들은 만나면 꼭 술이 빠지질 않습니다. 당당히 술 먹을 수 있는 나이에 만나서 그런 것도 있겠고, 어느 부분은 친구 한 지 더 오래된 아주 어릴 때 친구들보다 더 이야기가 잘 통하는 부분도 있고요. 아무래도 20대 때 만난 친구들은 거의 똑같은 고민을 다 함께 짊어졌기 때문에 일정 부분 공감대 형성이 더 쉬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혼자 책 읽고 공부하고 글도 쓰고 궁리하는 데 몰두했던 요즘의 제게 오랜만에 생긴 약속이었는데요, 다음에 만날 때는 또 어떤 이야깃거리가 생길지 참 기대가 되고, 뭘 하든 항상 서로를 응원할 거라는 무언의 격려가 오갔던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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