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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3. 2023

3. 우리는 때로 평지의 인생보다 더 크게 웃는다

그저 말해줘서 고마워

KT 증후군은 전형적인 모습이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환자마다 병변의 모양, 범위, 통증의 정도나 유무, 신체의 타 장기에 미치는 영향 등이 천차만별이다. 우리 아이는 왼쪽 다리에 병변이 퍼져있고, 특히 허벅지와 오금, 그리고 발바닥이 눈에 띈다. KT 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인 과다성장 대신 다리가 짧은 과소성장으로 나타나고, 굵기 차이는 거의 나지 않는다. 붉은 화염상 모반 대신, 푸른 정맥류가 두드러진다. 통증에서 자유롭지 못해 오래 걷거나 밖에서 뛰어논 날에는 꼭 노심초사하게 된다.

 

반면에 어떤 환자는 병변이 상체에 나타나거나 신체 전반에 나타난다. 상체에 병변이 있는 경우에는 기타 장기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일부의 경우이지만 인지발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아이의 MRI 촬영 결과, 아이는 상체에는 병변이 없고 장기도 괜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인지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하필 아이는 또래보다 말이 약간 느린 편이었어서 늘 마음을 놓지 못했다.

 

아이가 그렇게 태어나고 나서, 나는 아이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아프지 않기를.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범하게 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절실히 느꼈다.


아이는 조금 느렸지만,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두 돌쯤 되니 또래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정도로 말문이 조금씩 트였다. 눈치도 제법 빨랐고, 심지어는 어디 가서 '똘똘하다'는 소리도 가끔 들었다! (여기까지 바란 건 정말 아니었다.) 아이의 인지발달에 문제가 없는 것이 점점 확신으로 다가오자 내 안에서 이전과 다른 깊은 감사가 떠올랐다.  


우리는 때로 평지의 인생보다 더 크게 웃는다


아이가 때가 되면 평범하게 걷고, 말하고, 웃어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전에는 몰랐다. 아이가 아프게 태어나니, 그저 당연했던 일상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종종 넘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 다리로 걷는 것, 조잘조잘 말할 수 있는 것,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이 모든 것들에 다 환호하게 되었다.


늘 햇빛을 보는 사람은 햇빛의 눈부심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에게는 햇빛이 찬란하게 눈부시다. 신께서 우리의 평범한 삶에 나름의 골짜기를 허락하셨지만, 우리는 때로 평지의 인생보다 더 크게 웃는다.  




P.S. 세 돌이 지난 지금, 아이는 말로 엄마를 이겨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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