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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4. 2023

4. 타인의 시선을 마주하는 연습

나는 아이에게 반바지를 사주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세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그 여름들을 보내는 동안, 나는 여러 핑계로 아이에게 반바지를 입히지 않았다. 자주 넘어지니 무릎을 보호하기 위한다는 핑계, 에어컨 밑이 춥다는 핑계, 그리고 긴바지가 더 시원하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들. 하지만 내 진짜 속마음은, 파란 핏줄이 불거진 아이의 왼쪽 다리를 누군가가 볼까 봐서, 그리고 엄마인 나에게 물어볼까 봐서였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나는 아이의 특별한 다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화센터에서 아이가 양말을 벗고 활동할 때면 내 눈은 온통 아이의 발바닥에만 가 있었다. 누군가 아이의 발을 보지 않을까, 그래서 또 물어올까 싶어 자꾸만 발을 가렸다.  


나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고 싶었다. 우리 아이를 이상하게, 또는 안쓰럽게 여기는 시선에서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아가, 엄마인 나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놀이터에 나갈 때나 어린이집 등원 시킬 때, 남편은 종종 반바지를 입혔다. 나는 아파트에서 친해진 누구네 엄마가 아이 다리의 특별함을 보게 되지 않을까도 신경 쓰였다. 다른 아이들이 아이에게 다리에 대해 악의 없는 질문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하루는 남편에게 그동안 한없이 주저했던 한마디를 던졌다.


반바지 대신 긴바지 입히는 건 어때?
다른 사람들이 아이 다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싫어..

그러자 남편은 마음이 한껏 쪼그라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해.
앞으로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받게 될 텐데,
지금부터 연습해야지.
우리가 당당해져야 아이도 당당해질 수 있어


그랬다. 앞으로 아이는 수백 수천번도 넘게 다리에 대해 질문을 받을 텐데, 나는 당장 내 앞에 맞닥뜨리는 불편한 시선을 피하고자 아이에게 그 시선을 마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이가 더 단단해지고 당당해질 수 있는 기회를 내가 자꾸만 뺏어버리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마주하는 연습


나는 아직도 연습 중이다. 타인의 시선을 마주하는 연습, 그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 그 시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 오랜 연습 끝에 마음에 굳은살이 충분히 박이면, 나도 아이도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지.


내년 여름에는 아이에게 꼭 멋진 반바지를 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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