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휴가 첫날. 시댁으로의 출발은 순탄했다. 사실 순조로웠을 뿐 아니라 즐겁기까지 했다. 차 안에서 나눈 그이와의 농밀한 대화로 인해 잃어버린 발랄함(?) 이 묘하게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으니까. 그리하여 나로서는 이번 휴가가 서로에게 여러모로 좋은 시간과 휴식이 될 수 있겠다는 일종의 기대마저도 했었던 게 사실이었다. 대화. 그것은 생활이 메인인 부부의 삶에서 약간의 낭만과 현존의 긍정과 서로 간의 신의마저도 낳게 할 수 있는 것. 유쾌하지만 진지하게. 재밌으면서도 신랄할 수 있는, 서로 볼 장 다 본(?)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현실감마저 살아 있는 생생하게 농도 강한 대화...
부부의 섹스와 육아, 리스부부로 돌진하는 가속도의 여러 사회적 역할적 상황적 상관관계라든지 그리고 결혼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외도 시장에 돌입하는 참가자들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리스크가 상당해서 누가 들으면 놀랄 지경에 이르는 소재일 수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심지어는 그 시간을 신나게 나누고 있었던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의 성향으로서는 그만 하라고 했을 테니까. '여자'가, '애엄마'가, 부끄럽지도 않냐고 못하는 소리가 없다고 핀잔하며 방어하기에 바빴을 테니까. 그러나 현재의 그는 그때의 그가 아님을 느끼고 말았다. 여러 이야기를 서로 진지하게 주고받으며 자신의 소신이나 의견을 열심히 나누는 시간. 다시 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
종알종알 떠드는 내가 조금은 사랑스럽게 느껴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신선하지만 파괴적이고 반박할 여지없는 문장을 쉼 없이 발화하고 말아서 그이는 웃으면서도 진땀을 뺐을까. 그가 돼보지 않고서야 알 턱은 없지만. 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운전을 하는 그의 옆모습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의견을 주고 받기까지 한 그가 꽤나 보기 좋게 섹시하게도 보였으니까. 당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으니까. 전희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이 정도의 알찬 분위기라면 기네스 한 캔만 마셔도 당신과의 섹스에서 오르가슴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으니까. 계속 이대로 차 안에서 영영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우리가 변해간다는 걸 감지하면서. 이런 대화를 편히 나눌 정도로 우리가 아직 서로에게 열려 있든가 아니면 서로 익숙해져 가지만 익숙함이 지루함까지는 다가가지 않았다든가, 서로 잃어버린 매력이 다시 보인다든가. 여러모로. 시간의 힘에 의지한 채로....
시간이 지나가기를...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내내 쳐다보면서 바라기도 했다.
비가 오고 날은 무덥고 어디 나가지도 못했지만 부모님을 뵈었다는, 가족끼리 식사를 했다는, 서로 곁에 있을 때 아낌없이 소소하게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했다는 그런 평범한 가족의 시간들에서 휴가 같지 않은 휴가의 위로를 느끼면서 시종일관 거실을 뛰어다니고 놀다가 싸우고 부딪히고 우는 아이들을 정신없이 보기 바빴다. 그때까지도 괜찮았다. 그다음 날이 되기 전 까지는...
첫째 아이의 왼쪽 중지 손가락이 삐었다. 거침없는 둘째와 세찬 장난에 실컷 울었었는데 다음날이 되고 보니 여지없이 부풀어서 아픔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바로 병원에 가야 했기에 일찍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해서 가려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아.... 82년생 김지영의 어떤 장면이 내 인생에서는 없기를 바랐었는데. 그런 웃픈 상황은 연출되지 않기를,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했었는데. 나라고 별반 다를 바 없는 '며느리' 였던 것일까. 그이라고, 잠시간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었을까...
어머님이 잠시 이리 와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을 거셨다. '구두를 신냐' 고. 이제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구두 신을 일이 거의 없다고 하면서도 나는 어머니의 손을 물끄러미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주섬주섬 검은 상자에서 구두를 꺼내 보여 주시면서 그래도 이거 한번 신어 보겠느냐고 내미셨던 240짜리 검은색 펌프스를. 시누가 오래전 선물 받은 건데 자신은 신지 않는다고 어머니를 주셨다 했다. 그런데 어머니도 신지 않았지만 버리기엔 아까워서 그대로 오랜 시간 놔두었던, 사용감은 없지만 확실한 세월감이 서려진 구두. 거기까지도 괜찮았다. 시댁의 문화와 어머니의 악의 없는 마음을 이제는 아니까. 충분히 이해할 것도 같았으니까... 문제는 그의 한 마디였다. 그의 태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 대한 나의 상상과 온갖 망상 때문이었으리라. 돌이킬 수 없이 맞닥뜨리고 만 감정. 내가 만든 감정... 내가 만들지 않은 상황. 그러나 마주하고 만 장면. 피하고 싶었던 것들.
'잘 어울리네. 신고 다녀'
새 구두이지만 오랜 세월감으로 인해 새 것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던, 잠시 신어봤을 때 묘하게 꼭 끼지만 또 안 맞는다고 할 수 없던, 밑창이 푹 들어가 맨발로 신고 다시 발을 꺼내 들었을 때 발바닥에 묻어나던 찐득이는 밑창의 가죽 껍질... 당신 아내의 발 사이즈가 245라는 사실을 모르는, 궁금해하지도 않는, 새 신발을 사주기는커녕 세월감 있는 값싼 펌프스가 내게 잘 어울린다는, 나의 배우자가 호기롭게 건네던 그 한 마디. 그 목소리.... 나는 더 이상 깊게 혼자 생각하지 말아야 했었다. 망각하는 연습을 열심히 했어야 했다. 혼자 오해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던 길. 묘하게 눈물이 났다. 눈물이 차고 흘러 급기야 멈춤 없이 훌쩍였다. 언제나 울고 있을 땐 둘째가 먼저 알아채고 만다. 엄마 우냐고. 얼굴을 보여달라고. 왜 우느냐고. 아빠 엄마가 운다고.
시간은 신이었을까.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中, p. 252 -
넘겨버리려 해도 감정이 잘 넘겨지지 못하고 말 때. 속절없이 실망하고 혼자서 슬플때. 그럴 땐 어떡할까...정말 모르겠다.
그는 물었다. 왜 우냐고. 나는 말했다. 그냥 눈물이 난다고. 그러면서 애꿎은 ABC 초콜릿을 가방에서 꺼내어 그 자리에서 30개 정도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단 것을 먹으면 눈물이 좀 그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집에 와서도 내내. 오해인지 사실인지 증명할 길 없는 생각만 상상만 망상만 커져갔을 뿐. 손이 삔 아이의 병원을 다녀오고 더 속상해진 마음을 겨우 추스리며 점심을 차리고 밀린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멍하게 애꿎은 핸드폰만 계속 바라보다가.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 알림 하나 없는 조용한 핸드폰을 쏘아보면서. 나의 망상은 걷잡을 수 없이 지속되었다.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버리기 아까운 신발을 신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던 걸까. 그만큼 편해서, 별 생각이 없는 세심하지 못한 무덤덤한 지나가는 말이라고 생각하려다가도... 살면서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프라다와 페라가모와 구찌와 티파니와 각종 화장품과 마사지샵과 미용실과 외식과 카페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대신에 QQQ와 나스닥과 IPR의 수익률과 가계부와 재테크와 돈과 아르바이트와 책과 글과 공모전과 집밥과 셀프 염색약과 기네스와 투게더에 익숙하게 살아왔다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의 방향이 머저리같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 부질 없이 살았다고. 헛 똑똑이였다고. 빌어먹을. 몹쓸. 망할. 썩을.
단팥빵에 흰 우유, 기네스에 투게더, 제이에스티나 진주 목걸이 세트와 한스케이크나 아티제의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면, 아니 그 보다 편지 한 장이면 언제나 충분했던 바보 머저리 같은 나는 그에게 이제 더 이상 그 이상의 가치로 여겨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니 누굴 탓할까.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묘하게 일그러진 채 당신의 그 말 한마디에 괜히 속상해진 나는 스스로 추락하는 것만 같아서. 이런 대접받을 줄 알았다면 진작에 명품에 열띤 호응과 관심을 가지고 피부와 몸에 돈을 쳐 바르듯 살아야 했던 걸까 라는 몹쓸 망상까지도...
새벽이면 도시락을 만들고 포스티잇에 안부를 적고, 먼저 안부를 묻고, 궁금해하고, 시시콜콜한 하루의 일상을 종알종알 떠들고. 재테크 현황을 살피고, 가계 살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건강을 걱정하고, 필요한 옷이 없냐고 물어보고. 기타 등등. 그이는, 나의 배우자는, 남편이라는 사람들은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고 살까. 대접해주는 만큼 대접받는 건 운이 좋아야 가능한 걸까. 그런데 나는 왜 여전히 살면서 어떤 노력 대비 이런 장면과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걸까. 그 구두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 세월감이 넘쳐서 헌 신이나 다름없어 보였던. 누군가의 선물이 패스되고 패스되어 사이즈조차 어긋나던 엉뚱한 주인으로 흘러 들어온 건 결국 내 잘못인가. 내가 헛똑똑이로 살아와서. 빌어먹게 착해서? 그러나 당신은 모른다. 집에서 늙어가는 배우자가 그렇게 착하지도 순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인내하고 애쓰고 뭐든 페어플레이 하려고, 노력할 뿐이라는 것을. 거침없이 제멋대로 공격적이고 날카롭게 예민하고 차갑게 무섭기도 한, 그러나 결국 울어버리고 마는 유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래도 인간이란 한낱 우주와 자연 앞에선, 미물인 것. 하찮은 것... 그냥 그렇게 시간 지내는 것. 그런 것..
대게 마음에 파국이 일어나는 건 상대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 속에서 막연한 분노와 실망을 통해 자신을 투사하는 것이기 때문이겠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건 내 잘못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당신을 안다고 자신했던 무지한 나의 잘못. 기대했던 잘못.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받은 내 잘못. 망각하지 못하고 잊어버리지도 못하고 마음에 켜켜이 쌓아 놓게 되는 기억들. 허심탄회하게 직선적으로 물어보기를 주저하다가 이내 혼자 삭히고 마는 습관. 그럼에도 계속 떠오르는 슬픔과 실망스러움을 앞으로의 시간을 위해 없애려, 새벽에 애써 편지 두 장을 그에게 적고 아침에 읽어 보라고 식탁 위에 놓았음에도. 멋쩍어하며 아이들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차돌 짬뽕을 먹으러 가자는 둥 하면서 레고놀이를 하고 있는 그가.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도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할 일을 하면서도. 핸드폰을 몇 번을 쳐다보면서도. 토하고 싶은 문장들만 두서없이 밀려오는 걸 막지 못하고 기어코 마르지도 않은 손가락으로 노트북을 열고 말았던 지금 이 순간.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최소한 당신이 외도를 해도, 이해할 것이라는 말을 하는 빌어먹을 나에게 이런 알싸한 실망감을 앉기는 대사를 구사하지 말았어야 했다. 입을 다물고 오히려 화를 내야 했었다. 아내보다 부모님이 언제나 먼저였던 당신에게 바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당신 아내의 발 사이즈가 245라는 걸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아메바보다 더 무뇌아적일 수 있는 멋대가리 없는 어제의 당신은. 그리하여 최소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었다. 당신의 아내는 그 신발이 어울릴 정도로 볼품없지는않다고. 비록 당신에게는 이제 더 이상 사랑스러움도 예쁨도, 섹시함도 설렘도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같이 사는 가족' 이자 '엄마'라는 기능적 인간이 되어 버렸다 하더라도.
구두를 당분간 신지 못할 것만 같다. 당분간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것도 같다. 여러모로 닫혀 있을 것 같아서 그것이 속상하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 앞에서. 나는 이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아이의 중지 손가락을 내내 쳐다보면서,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에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거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말았던 나는.....바다를 떠올렸다.내내. 지금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엉뚱하게도. 나의 최선은 그것이었기에. 씻을 수 있는, 씻겨내릴 수 있는, 감정을 망각할 수 있는 최선은 다름 아닌 바다를 떠올리는 것. 그리고 누적 수익률이 49.82% 라는 알림에 대해서 그에게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