マチネの終わりに
어렵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만나버렸잖아요
그 사실은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어요.
- 마티네의 끝에서 (マチネの終わりに) -
누군가에게 마음을 통째로 휩쓸리고 말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어 버릴 때. 지금껏 살아왔던 일정한 궤도에서 확실히 이탈하여 상대의 세계로 끌려가버리고 말 때. 한껏 서로에게 속해지고 싶을 때. 그것이 만약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면. 단념할 도리 없이 연결된 두 사람의 시간은, 그들의 사랑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물며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음에도 그 혹은 그녀를 종종 때때로 어쩔 도리 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상은 과연 어떤 인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4년 전 한 소설을 만났고 그 속에서 만난 그들이 그랬다. 고작 몇 시간의 첫 만남에서 인연이 되었고 단 두 번의 만남밖에 없었음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확실한 연인이 되기를 꿈꾼다. 38세의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마키노. 그리고 그의 그녀가 되고 싶었던 두 살 연상의 저널리스트 요코. '열여덟 살 때 들은 그의 연주를 20년 동안 기억해준 사람' (p.39). 지구의 중력처럼 서로 끌려 버린 두 사람. 그들을 '꼭 다시 읽고 봐야지'라고 생각했었다. 두 사람의 나이에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깝게 되었을 '지금'의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관계의 '어긋남'에 대해서 좀 더 어른스러운 이해를 바랐으니까. 단순히 안타깝다가 아닌, 인생의 어긋남조차 그 시간 속에는 어떤 힘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연결의 힘 혹은 인연의 기적과도 같은... 게다가 문학이나 영화에만 갇힌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무언의 바람, 어떤 믿음이 그들을 다시 만나고자 했던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사실은 어쩌면 그 때나 지금이나 그런 '연결'을 막연하게 품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지.
요코는 생각했다. '그날 밤 혼자 택시에 타는 대신 아침까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p.90) 일과 생활, 그리고 현실에 직진할 뿐 한 번도 그런 대담한 상상을 하며 살아오지 않았던 그녀의 가슴은 약혼자가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심장을 속이지 못하고 만다. 원래 심장이 그렇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만 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달음박질 치지 않던가. 마키노와 요코도 그런 심장을 지닌 채 나중에야 각자 같은 생각을 하고 만다. '전혀 현실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대로 아침까지 함께 보내는 선택도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왜냐하면 훗날 그들의 관계에서 이 기나긴 밤의 만남은 특별한 기억으로 수없이 회상되기 때문' 이라고. (p. 39)
그를 만나고 다시 외국으로 돌아가 설상가상으로 바그다드를 취재하던 도중 요코는 테러사건을 겪고 만다. 동료가 죽고 여러 상황적 충격으로 PTSD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그녀는 순탄치 않은 현업을 지속하던 중 안부메일을 자주 주고 자신을 걱정하는 마키노를 떠올리며, 약혼자가 있는 자신의 마음과 투쟁한다. '귀국해서 자신은 그와 결혼하는 걸까. 아이를 낳는다. 그와의 사이에. 그것이 새로운 삶의 첫걸음이 되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의 나이를 생각했다. 이제 반년이면 마흔한 살이 된다.' 고. (p.90). 마키노 또한 몇 통의 메일을 보내도 쉬이 답장을 보내지 않던 그녀에게 돌연 한 통의 화답 메일을 받고 두 번째 만남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본다. 그의 인생에서 그녀와 같은 인연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음을 알지 못한 채.
요코는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언동에서 그런 조짐을 발견할 때마다 마키노는 고통스러웠고 그게 아닌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돌릴 때도 역시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이 애초에 그녀의 사랑에 값할 만한 인간이기는 한 것인지, 최대한 냉정해지려고 생각에 잠겼다가 오히려 역효과만 겪곤 했다.
인간은 단지 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아름다워지고 싶다. 쾌활해지고 싶다고 간절히 꿈꾸는 것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값할 만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없다면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마키노는 분명 첫 만남 때부터 요코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을 이제는 그렇게밖에 되돌아볼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품었던 그녀에 대한 동경은 이제 뛰어넘어야 할 그녀와의 거리가 되었다. p. 98
두 사람이 두 번째 만나던 날. 그들은 서로를 바랐고 강렬하게 원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애절했을지 모른다. '그저 언어로만 서로를 알아왔던 두 사람은 이제 몸이 더해져 서로를 바라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p.123) 마키노는 그녀의 왼손에 끼워진 약혼반지를 보고 마치 출입금지 표지판을 본 것 마냥 낙담한다. 그러나 솔직한 그의 마음을 전하는 편을 택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돌파하는 쪽을 택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정면으로 직시한 채. 속일 줄 모르는 사람들의 유일한 무기는 그 솔직함이 결국 상처로 되돌아올지언정,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세계에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상대에게 진실할 뿐이다. 그 진실이 어긋남으로 답신을 받고 오해와 아쉬움과 서운함으로 다가올 지언정.
어렵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만나버렸잖아요? 그 사실은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어요. 고미네 요코라는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인생이라는 건 나한테는 이미 비현실적이에요. 내가 살아 있는 이 현실에는 요코 씨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내 곁에 계속 존재해줬으면 좋겠어요. 날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하고 이야기하고.. 요코 씨를 사랑해 버린 것도 내 인생의 현실이죠. 요코 씨를 사랑하지 않는 나는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이에요. p. 145
요코는 결심한다. 그와 자신이 한 세계에 머무르고 싶다고. 상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은 충동에 내몰릴 지경의 감정과 처음 만나는 자신에게 당황스러움에도.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선택을 하며 그녀는 새로운 자신과 처음으로 만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제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은 충동에 내몰렸다. 마키노에게 사랑하는 것은 그녀에게 그런 몇 가지 발견을 하게 했다.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자신은 그저 여행지에서 간간히 만날 뿐인 여자여도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한 차례 진지하게 해 보기도' 했을 정도로. (p. 190)
오해와 어긋남은 인연을 어떻게 갈라놓을까. 그리고 그 벌어진 틈은 어떻게 메꿔질 수 있을까. 어쩌면 진심과 노력. 기다림과 그리움이라는 시간의 힘이 '서로' 있지 않고서야, 인연의 기적이란 그리 쉽게 다가오지 못할지 모른다. 마키노의 옆엔 언제나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모든 업무 일정을 함께 하는 미타니가 있었다. 그가 인간적으로 완전히 신뢰하고 자신의 핸드폰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면서 사적인 부탁을 하던 그녀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마키노가 사랑하는 요코의 메시지는, 그를 보기 위해 일본으로 달려와 연락을 하던 요코의 메시지는 미타니에게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힌 상상' (p.255) 이 되어 일생일대의 고의적 실수를 범한다. 마키노인 척 이별의 메시지를 보내버리고 마는 미타니는 모를 것이다. '나를 위장하며 당신을 속이고 말 것이다'라는 말이 무엇보다 요코를 깊이 상처 입혔다.' (p. 266)는 것을. 그렇게 두 사람의 어긋남과 오해의 장본인이 자신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문장과 활자로 오해가 쌓이다 결국 헤어지고 마는 마키노와 요코는 그렇게 마음에 서로를 묻은 채로 다른 가정을 만든다. 마키노는 그럼에도 내내 생활 곳곳에서 힘들 때마다 그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에서의 요코를 지우지 못한 채 생각하고 만다. '요코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미타니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 (p. 311)을 애써 생각하면서도. 한편 요코도 뉴욕에서의 잘 나가는 경제인으로서의 배우자와 아들이 있으나 결국 정서적 이해관계를 가지지 못한 부부로서의 연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그를 자주 떠올리다 결국 알게 되어 버리고 만다. 미타니의 만행에 대해서. 마키노는 사실 자신을 사랑했음을. 자신과 하나가 되고 싶었음을.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멀리서 그를 바라보면서 요코는 생각한다. '이 한 때가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사랑을 위해서는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짓도 사양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뻔뻔함에는 혐오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키노를 위해 나는 저토록 낮은 곳까지 떨어질 수 있을까 하고 요코는 불안해졌다. 어쩌면 그런 방법을 동원할 것도 없이 마키노에게서 사랑을 받아버린 자신에 대한 통렬한 복수인 것 같기도 했다.
p. 407
그를 만나서는 안 된다고 요코는 생각했다. 이미 때늦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어린 시절 집에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지금 켄이 견디고 있을 외로움을 생각했다. 마키노의 아이를 생각했다.
최소한 이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그를 향한 사랑 안에 머물고 싶었다. 지금까지 단 세 번을 만났을 뿐이지만 그러면서도 인생에서 가장 깊이 사랑했던 사람... 음악이 앞으로 내달려갔다. 이 한 때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그녀는 기도했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기를. p.480
문학은 삶을 뛰어넘지 못하지만, 반대로 그런 문학은 삶의 단면을 확실히 끌어 앉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티네의 끝에서'는 단순히 허구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오해가 쌓이고 때로는 원치 않은 시간의 훼방에 휩쓸려 끊기고 마는 관계이더라도. 사람의 '연'이라는 건 그리 쉽게 끊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것은 어떻게 연결되는 지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임을. 다만 기다릴 뿐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키노가 혼자 있었을 때 가장 절실하게 생각하고 만 그 마음이 바로 자신의 확연한 본심이었을테니까. '그때 그가 생각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요코를 다시 만나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을. (p. 468)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마음껏, 시간을 섞고 싶은 사람
마음껏, 자신을 내 보이고 싶은 사람
마음껏, 새벽을 넘어 아침 까지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비록 각자 다른 삶을 평행선처럼 살아가더라도, 그런 두 사람은 연인으로서의 인연일 지 모른다.
세상의 또 다른 마키노와 요코들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