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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3. 2017

#42. 일터의 보이지 않은 손

보이지 않은 곳에서 부단히 움직이는 우리들의 손(님)들을 예찬하며  

 지금은 새벽 '기상'이 되었지만, 10년 전에는 새벽 '출근'을 했었다.

 인천에서 분당까지, 왕복 4시간여의 거리를 소위 지옥 버스와 지옥철에서 약 4년간 버텨내며 지냈다. 주변 지인들이나 사정을 모르는 회사 동료들은 분당에 집을 구하라고 조언을 했다. 출퇴근 거리만 짧아져도 편할 거라고. 그렇지만 사실 별로 와 닿지는 않았다. 허물어져갈듯한 아파트가 분당 금싸라기 땅인 탓에 돈도 부족했지만, 교통비소비가 기회비용 대비 가성비 값이라는 재테크녀로 살았고, 사실 롱롱 출퇴근 길 덕분에 얻은 게 꽤 많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종점에서 종점을 오고 가는 어마 무시한 거리였기에, 서서 가는 시간보다 앉아서 가는 시간이 많았다. 그 덕분에 긴 장거리 출퇴근 시간 동안 무섭게 읽어 내린 독서의 양도 꽤 상당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사람 구경(?)하기 딱 좋고, 나도 검은 스타킹에 구멍이 난 채 그들의 구경거리가 돼 보기도 했으며 사회의 여러 어두운 면(?)을 체험할 수 있었던 장소는 다름 아닌 평일의 이른 새벽의 출근길, 그리고 지옥 퇴근길의 대중교통 속에서 각자의 귀갓길로 향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속한 곳 덕분이었다.


  '미생'은 현실이다. 그건 우리가 꽤 흔히 접하는 삐까뻔쩍한 실리콘밸리 같은 블링블링 사무실에서가 아니다. 만원 버스와 지옥 지하철, 새벽의 춥디 추운 정류장에서 더 냉혹하게 체감해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더욱 보이지 않은 현실을 이겨내는 미생들이 참 많다.


누가 더 잘나고 더 못난 게 없었다. 출퇴근길에 '너'는 누구에겐 갑인들 내 눈엔 그저 한 명의 '미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기에.


 더군다나 25살에 입사했던 나는 당시에도 '등단'이라는 청운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출퇴근길을 오고 가며 일터와 어른 사회에서 몸소 체득한 일상의 빡침과 분노를 겪는 날이면, 그 날의 글도 꽤 술술 잘 써지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했다. 그러니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새벽 출퇴근을 힘겹게 병행해 냈었다.


 그 지옥의 출퇴근 때문일지 모르겠다.

 나는 사회 곳곳의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어둡고 차가운 우리들의 또 다른 일터의 참모습을 말이다.


 아침 출근길에 으례껏 보이던 버스기사들이 용역업체와 싸우며, 임금 체불에 맞서며 파업을 했을 때. 이기적이지만 나는 그들의 처절한 사투 대신 나의 출퇴근길을 걱정했었다. 50대 후반의 환경미화원 아주머니가 새벽 출근길에 술에 아직 덜 깬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양복을 말짱하게 입은 남성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길가에 고꾸라져 넘어졌어도 꿋꿋하게 일어나서 다시 청소를 해 내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나는 아주머니 편에 서서 편을 들어주기 이전에 저 술 취한 30대 양반이 내게 다가오면 어쩌나를 노심초사했었다. 사람으로 가득 찬 만원 지하철에서는 뒤에서 자꾸 그 보잘것없는 밉상의 몸을 내 앞뒤로 밀어붙이는 어떤 개자식들이 내 등 뒤에 달라붙어도, 막상 대들지 못하고 바들거리는 눈빛을 감추며 다만 째리기만 하는 게 고작인 나약한 나였다.


 회사에 출근했을 때 말끔히 치워져 있는 사무실 바닥과 화장실 곳곳.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쓰레기통을 누가 언제 치우는지 알려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새벽에 출근하시는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쉬는 공간 하나 마땅히 없이 그렇게 허리를 굽히고 새벽 댓바람부터 나와서 치운다는 것에 고마운 줄 모르고 그저 버텨냄이 바빠서 눈물 콧물 다 쏟아가며 다녔으니까. 20대의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사회의 곳곳의 손들을 모른 척하며 지냈다.


 그 보이지 않은 손들에게 위로를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나는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며 살았다.

 4년 전, 우울증을 꽤 겪고 있었고, 회사 화장실에서 틈만 나면 숨죽이며 울었을 때, 나를 위로해준 건 다름 아닌 당시의 9층 청소부 아주머니셨다. 쓰레기통을 비우러 왔다가 숨죽이며 훌쩍거리는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었다.


인사 잘 하던 아가씨가 울면 어쩌. 인나 어서.


 그리고 워킹맘으로 지낸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도, 여전히 청소를 하는 내가 근무하는 6층의 청소부 여사님은 나를 위로해 주시곤 한다.


애 낳고도 일하느라 고생이지. 내 젊은 시절 보는 것 같아 안 쓰러. 밥 먹고 다녀라 아가.


 밥벌이를 하기 위해 출퇴근을 거듭해 나가면서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보이지 않은 손의 소중함을.

 언젠가부터 나 또한 그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터 인생'이라는 걸 깨달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있던 가오(일본어로 얼굴-카오-이란 뜻의,  속된 표현)와 어깨의 힘을 모두 빼내기 시작했다. 아마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해봤고, 우울증에 시달려서 너무나도 힘든 시절들을 겪어 내렸고, 돈이 정말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강의와 상담을 해본 그 시간들 덕분에.


 개자식을 개자식이라고 대놓고 그땐 말하지 못했어도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이젠 말할 줄 아는 깡과 꼴이 생긴 덕분에.


 보잘것없이 보이는 나약한 사람인 것 같아도, 그렇게 나의 밥벌이를 올곧게 하면서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경중을 함부로 따져선 안된다는, 모두 다 하나같이 각자 소중한 삶이라는 생각을 그렇게 자연스레 체득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때론 일터가 고맙기도 하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직간접적으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타인을 헤치는 일이 아니고서야 직업이라는 것엔 높고 낮음의 귀천이 없다는 것. 세상엔 나 혼자되는 일은 정말 하나도 없다는 것.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정말 아닌 걸 여전히 모르는 쓰레기들이 여전히 사회에서 버젓이 활개 치고 다니는 걸 알게 된 이상. 30세가 지나니 이제 겨우 좀 더 어른의 세상을 깨닫는 듯하다. 사실 이 정도면 빠른 걸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인 나이가 들었음에도, 높은 위치에 올랐다고 한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다니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들을, 일터와 삶의 사건사고 곳곳에서 마주하면 말이다.


일개미로 현장에서 굴러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지니. 남의 돈 버는 게 정말 쉬운 게 아니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알면 개구리 올챙이시절 생각좀 하면서 살면 어디 덧나나 싶다.



 누군가들이 회장이라고 사장이라고 팀장이라고 리더라고 떠받들여 주니, 정말 사람 대함에 자존심과 자존감을 깡그리 없애뜨리는 발언과 갑질의 행동들을 해 대며, 꽤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하여 정치를 해대는, 사람이 사람을 희롱하는 걸 죄악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을 우리는 이미 제법 많이 직간접적으로 사회에서 접해가며 살고 있을 테니까. 단언컨대 내가 속한 당신이 속한 그 일터만 하더라도 1명 이상은 발견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군살이 베긴 건지 아니면 머리에 먹물이 더 차오른 건지, 아니면 이젠 아줌마 일꾼의 오지랖인 건지 모르겠다.

 그럴싸한 명분의 일터 속 정치판, 투명하지 않은 맥락 없는 인사구조, 인재의 탈퇴, 낙하산 인사, 성차별, 성희롱, 사회의 부조리, 보이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일을 하며 움직임에도 나아지지 않은 형편들. 이렇게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보고 배우고 체득하며 침묵하기도 또 발언을 작고 크게 해보기도 하면서 좀 더 깨닫곤 한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불특정 다수들 속에는, 나와 함께 일터라는 공간에서 움직이는 보이지 않은 손을 가진 소중한 일꾼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 덕에 일이 결국엔 돌아가며, 추악해 보이는 사회일지언정, 삭막하고 팍팍하고 퇴사만을 바라는 일터라고 할지언정, 보이지 않은 손을 가진 사람들이 버젓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의 곳이기도 하고, 때로는 버팀목의 일터 속에서 괜찮은 사람들이 뭉쳐서 훈훈하고 또 멋진 일들도 작고 크게 터질 수 있는 우리들의 일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보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수고스러움과 정성을. 땀과 노력을 말이다. 매일 출근하면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고, 화장실도 단연코 깨끗하고 복도도 말끔히 청소되어 있는 것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보다 더 일찍 회사에 와서 치워 놓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산다면, 좀 더 괜찮은 오늘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일터 속 보잘것없어서 정말 보이지 않는 손들 덕에, 일이 돌아간다.
사실 보잘것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반증이다.


 

 오늘 청소부 여사님께 초코라떼를 건넸다.

 지난주 내가 머무는 6층 사무실의 왁스청소가 있었는지 사무실의 의자와 비품들이 모두 책상 위로 올려져 있었다. 분명 우리들이 옮기지 않은 짐을 다 옮기면서까지 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겪었을 생각에 그냥 고마워서 인사도 할 겸 건네 드렸다. 여전히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일하고 계셨다.


지난번에 주신 귤 잘 먹었어요. 주말에 수고하셨죠. 의자 다 옮기시고.
내 일인데 뭐. 애 키우니 잠도 없어. 일찍도 나온다 아가
이거 드세요
아가 이거 왜 주냐 됐다.
약속했잖아요 저번에... 제가 차 사드리기로.
젊어서 일하느라 고생 많아. 내 시절 보는 거 같아 안 쓰러. 잘 마실게요... 미안하네  
안 그래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 이예요.


 용역업체의 파견직의 나의 어머니뻘 되시는 그녀가 본인 월급 받고 일하는 거니 당연한 일을 한 걸 모르지 않는다. 손사래를 몇 번이나 치면서도 미안하면서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마음 또한 알고 있다.


 다만, 쉬는 공간 하나 제대로 없이 청소 비품 놓여 있는 구석자리에서 잠시 쉬고, 또다시 허리를 굽히며 복도 이곳저곳을 깨끗하게 치워내어 오늘의 사무실을 매일 같이 빛나게 만들어 주시는 그분께, 그분과 같은 보이지 않는 사회의 여러 사람들에게 요즘따라 더 경건하게 고마워지고 눈길 한번 더 주게 되는 요즘이다.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 '퇴사'를 말하기 시작한 요즘인 듯 보인다. 한편으론 추울때 따뜻하고 더울때 시원한 사무실이 고마운 누군가가 있음에도 말이다. 좀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사실 나의 아버지가 부두에서 허리를 낮추며 또 올리며 그렇게 부단히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도 제법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아니면 이기적이었던 젊은 시절을 지나서, 이제는 아이를 낳고 또 기르다 보니, 나의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이 좀 더 가치 있기를, 좀 더 사람답게 좋아졌으면 하는 오지랖 어린 바람인 걸까.


 선한 의도의 작은 실천들이 나비효과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일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최대한의 사람을 향한 진심 어린 선순환 말이다.



 내가 사는 사회가, 그리고 나의 쌍둥이들이 지금 태어나서 겪기 시작한 이 사회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들이 얼마나 고용불안, 빈곤, 폭력, 불평등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게 점점 더 보인다. 그런 현실이 바로 내가 속한 일터, 당신이 있는 그곳, 우리가 사는 이 사회다.

 최소한 아이를 가진 엄마의 입장에서 사회를 보니 더더욱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저 무시하고 내 일이 아니니깐, 나랑 1도의 상관이 직접적으로 없으니 무시하고 그렇게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을 이젠 볼 수도, 아니 보고 싶지도 않아졌다. 개인의 성장을 발전시키고 주장하는 자기계발서와 각종 특화된 전문 서적들도 좋지만 때론 사회의 알게 모를 불평등한 상황들에 좀 더 눈여겨보게 되는 요즘이다.


 난데없이 주제가 엇나간 글이지만, 최소한 같은 업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특정 연령에서 성별에서 더 심한 편중을 보이는 불평등한 상황이 곧 차별이라는 점을 넌지시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좀 더 일터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여러 손들을 가급적 살필 기회가 있다면 그래 보고 싶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 직접 움직여보면서 말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공간이 있으니 때론 글을 통해 앞으로 좀 더 내가 본 세상을, 사람을, 그 안의 차가움과 뜨거움을 같이 전파할 수 있는 힘이 좀 더 길러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수도 있고. 그래서 힘을 좀 더 길러 보고자 한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펜은 칼보다 큰 힘이 있음을 믿고 있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사무실에서 밥벌이 하고 있는 현재를 살고 있다. 따라서 좀 더 정성껏(?) 임해보고자 한다. 메일을 쓰는 밥벌이, 삶의 글쓰기를 통한 밥벌이도 조금씩 꾸준히


 오늘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MBC 의 김장겸 사장의 해임이 결정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슈퍼 울트라 그레잇 한 결과에는 분명 보이는 큰손들 보다 보이지 않은 그 안 곳곳의 보이지 않은 손(님)들의 움직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 그들을 예찬하며, 그리고 좀 더 나아진 그들의 행보, 보이지 않는 모든 손들,  당신과 나의 손에 움켜쥔 땀의 힘들을  응원해 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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