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님의 '단어 채집'이라는 폴더 속에는 어떤 단어들이 들어 있을지. 사실 지난 편지를 읽고 난 이후부터 무척 궁금해하며 지내면서도 이렇듯 시간은 잘도 흘러 어느새 12월이 일주일이나 지나가 있네요. 시간이란 여전히 거인 같기만 합니다. 영겁의 시간 앞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내 존재가 얼마나 작은 미물에 불과하던가! 뭐 그런 무쓸모 해 '보이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의미부여를 하기 딱 좋은 숫자인 '12'가 달력 앞에 펼쳐져 있으니... 새삼스럽지만 한 해를 자주 돌이켜보며 지내는 요즘이었어요. 조금 부끄럽고 남루한 고백이지만 그래서 12월은 한 해를 정리하는 나름의 '시상식'을 자체적으로 해보곤 하는데요. 예컨대 한 해 가장 잘했던 것과 그렇지 못했던 것, 나름의 베스트 사건이라든지. 특히 2021년의 헤븐의 책 베스트 TOP 3 라든지 (이거 정말 손꼽기 어렵습니다...) 생각해보니 한 해를 여러 각도에서 총 결산하는 저만의 시간은 마치 버리다시피 흘러간 시간마저도 다시 주워 담는 작업 같기도 해요. 그러니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단연코 시간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의 저로서는.
겨울을 맞이하여 물건 정리를 통해 나름의 버리기 의식을 한다 하셨죠. 저도 겨울이면 - 특히 12월은 더더욱 - 청소나 물건 정리를 더 자주 하게 되는 것도 같아요. 사실 제가 먹지는 못해도 치워야 사는 청소 강박증 인간이라 참 피곤하게 사는데요. 이런 피곤한 인간들의 특성이라 함은 어쩌면 버리는 것에 나름의 도가 텄을 뿐 아니라 물건이 많아도 그것을 차곡차곡 각 맞춰서 각 소유물들을 장르(?) 별로 제 공간에 맞춰 정리해 두지 않으면, 즉 정리되지 않은 '꼴'을 보기가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것인 셈이죠. 그것은 제게 있어서 마치 렌즈를 끼고 화장을 한 채로 세안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잠든 아주 찝찝한 기분에 봉착하고 만다는 것... 아, 무언가 생각하니 괜히 피곤해지고 마니, 역시 피곤을 자처해서 일을 만들어하는 성향인 것도 같습니다 (으으..)
빈 공간이어야 빛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어요. 비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겠죠.
공백이나 침묵이 주는 위안,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삶의 핵심을 발견하게 만들죠. 채우고 소유하는 것보다 어쩌면 비우고 버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지혜를 샘솟게 만든다는 것을. 사실 젊었을(?) 때는 무소유의 매력을 몰랐었어요. 욕망이든 욕심이든 세계의 모든 면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치기 어린 저였을지도요. 뭐든 가지고 싶었고 그래서 소유하려 애썼으니까요. 돈이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마음이든... 그렇지만 결혼을 하고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고 절절히 이해가 되더라고요. 비워야 채워진다는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 잘 버리고 잘 비워야 그만큼 좋은 것들로 다시 잘 채워진다는 것도...
사실 저는 시를 읽다 보면 그런 새삼스런 생각들을 곧잘 하게 돼요. 그리하여 시인들이야말로 가장 최전선에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들이야말로 삶과 분투하듯 살지만 역설적으로 그 삶을 사랑해야, 특히 한없이 무쓸모 하고 효율성 제로로 '보이는' 그 시간조차도 스스로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그야말로 대단한 용기 없이는 감히 살 수 없는 생이 아닌가 싶은 것이죠. 그러면서도 엉뚱하지만 쓸모의 유무를 결정하는 기준이 과연 확실히 나에게 있는가 아니면 내가 아닌 타자나 사회에 달린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 디킨슨의 '조용한 열정'도 생각해보면 그녀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그리고 가장 자주 접했을 공간인 정원과 과수원에서 시인 특유의 은유와 상징 그리고 그런 삶을 지내며 느꼈을 고통을 시를 쓰는 삶을 고집하면서 다른 부차적인 것들은 과감히 삶에서 잘라내 버리면서 확실하게 배운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맙니다. 마침 서재에서 시집을 찾아서 접혀 있는 부분을 다시 펼쳐 보았는데요. 제가 아마도 멈칫했던 부분이어서 접어 두었던 것일 텐데 역시 지금 다시 읽어봐도 멈추게 되고 마네요.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 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That Love is all there is.
Is all we know of love!
It is enough, the freight should be
Proportioned to the groove
- 에밀리 디킨슨,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中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민음사, 2016 -
@영화 조용한 열정 中 쓰는 사람의 옆모습은 얼마나 매력적이던가요... 이렇게 늙고 싶다는 마음은 버리지 못하네요.
민님이 들려주신 시에서도 '관심의 밸브를 잠가버려라'라는 대목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결국 디킨슨은 제한된 삶의 영역 속에서 고통을 직시하며 확실한 자신의 언어를 구사하며 살려던 대단히 용기 있는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죠. 게다가 쓰기의 영역은 또 어떠한가요. 숱한 단어와 문장을 버리고 또 흘려보낼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남겨지는 문장들... 쓰는 인간으로서의 그녀 자신만큼은 알았을지도 몰라요. 시를 쓰는, 쓰면서 살아내는 그 삶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 해방감이었을지. 어쩌면 유일한, 자유와 쾌감. 확실한 자신만의 세계. 그 누구도 침범할 수도 모방할 수도 없는, 남이 아닌 자신으로 존재하는 선명한 삶. 디킨슨이 은둔하려 했던 건 그렇게 고결한 자신을 세상과 타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를 테죠.
그런데 민님. 사실 고백건대 저는 물건은 잘도 버리면서 끝내 버리지 못하는 단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기억'인데요. 좀 더 풀어보자면 한 물건을 구매하게 된 시간, 그 시간이 탄생된 마음, 결국 마음과 기억은 뗄 수 없는 인연처럼 물건은 버려도 그 물건에 대한 기억은 버릴 수가 없게 되네요. 사실 어디 물건뿐일까요. 사람에 대한 기억도 버리거나 쉽게 잊힐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한 시절은 그러지 못해서 여간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물론 지금이야 그 시절에 비하면 정말이지 양반이 되었다 할 정도지만. 반대로 좋았던 기억은, 영원히 시간이 멈춰버리길 바랐던 그 시간의 기억은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요. 그 기억을 벗 삼아 내일로 나아가는 인간인 저는 아마 그래서 기억은 버리지 못하고 마는 단 하나의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여요..
할 수 있는 건 그래서 기다림 뿐입니다. 버리고 싶으나 버릴 수 없는 기억은 그렇게 마음에 담긴 채 다만 조용히 그 크기가 줄어들기를, 잠잠해지기를, 잊히기를 기다리는 것이죠. 물론 그런 기억들 덕분에 얻은 게 있다면 '글' 이겠고요. 그러니 어쩌면 제게 있어서 버리지 못하는 단 하나, 바로 어떤 생생한 장면과 기억들은 오히려 제가 버리지 못하고 언젠가의 글들로 확실히 언어화시켜버렸기 때문에... 그러고서야 비로소 버려지기도 하네요. 아 쓰다 보니 생각의 스텝이 꼬인 것 같은 기분입니다만. 여하튼 기억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말지만 기억을 쓰면서 도리어 버리고 비우는 것 같은 어떤 해방감을 느끼고 만다는. 민님은 이해해 주시겠죠... 그 기분. 그 마음. 기억에 기대어 쓰는 그 시간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쓰는 시간은 사실 많은 기다림과 채움 끝에 다가오는 것, 그렇게 버리며 써 내려가는걸까..자주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글이 안 써지는 요즘이 되어 버렸지만... 느리고 늘어져도 계속 쓰면서 살려고 나름의 분투를 하며 일상을 지내는 이 순간이 '나'라는 인간을 지켜내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 마음 또한 어찌 보면 버리지 못하는 단 하나의 것이 되고 마네요. 기억으로 탄생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려는 의지. 소멸되지 않도록. 흐려지다가 끝내 사라지고 마는 것들 속에서 끝까지 붙잡고 싶은, 절대 버리지 못하고 마는 단 하나.
버리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앞에서, 그럼에도 우리가 버릴 수 없는 단 하나의 그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삶을 살게 만드는, 나아가게 하는, 좀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원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님의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긴 문장들을 과감히 버린 채, 다음 편지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