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면 보이는 것

by 김성민


헤븐님, 비 내린 오늘 잘 보내셨나요? 이제 더 가을비라고 부를 수 없는 완전한 겨울비였어요. 절기가 이미 겨울이라고 하지만 체감으로 느끼는 계절은 시각적 감각에서 오는 것 같아요. 남아있던 단풍도 비에 젖어 떨어지고 곳곳에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손길로 분주합니다. 추위로 몸이 움츠러들지만, 새로운 계절이 주는 기운에 마음을 다잡고 싶어요. 어느새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에서 편지를 씁니다.







지난번 보내주신 편지에서 쓰는 마음을 읽었어요. 절실하고 절박하게 와닿았습니다. ‘글 쓰는 마음’이라는 상자가 있다면 거기에는 글 쓰지 않는 마음도 포함될 거에요.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괴로운 마음이요. 정확히 말하면, 쓰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글이 써지지 않는 마음이겠네요. 그럼에도 ‘쓸 수 밖에 없다’고 하셨죠.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 기억마저 희미해지면 남는 것은 글. 모든 글은 언제나 누군가의 과거이기에, 결국 글은 과거를 남기는 일이겠어요. 과거는 잊혀도 글이 대신 기억하니까, 글에 정성을 다하고 싶은가 봐요.



종종 헷갈립니다. 글이 써지지 않는 초조함과 조급함이 시간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글쓰기를 향한 것인지 말이에요. 흐르는 시간을 차곡차곡 병에 담아 간직하고 싶어요. 시간을 움켜쥐고 싶습니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요. 터무니없는 생각이지요?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을 글로 남기려고 머릿속은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생각나는 단어들을 적어둔다고 하셨죠. 제각각의 이야기들을 품은 단어들을요. 저도 잠깐 떠오른 생각이나 책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 단어들을 적어두곤 해요. ‘단어채집’이라는 폴더가 있어요. 거기에는 책을 읽다가 만난 모르는 단어, 다음에 쓰고 싶은 단어들을 모아두어요. 읽은 시간을 나름대로 기억하는 방법이지요. 궁리해서 썼지만 결국 삭제된 문장도 따로 모아두기도 해요. 그러니까 문장을 버리지 않는 것이죠. 적어두기만 하고 좀처럼 잘 열어보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요. 하하...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열어보지 않을 단어를 모아두고 문장을 버리지 않듯,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해요. 마음먹고 물건을 버리려 해도 갑자기 느닷없이 그 물건의 쓸모가 생각나면서(또는 물건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합리화하면서) 언젠가는 쓸 것 같아 결국엔 버리지 않아요. 쓰지 않는 물건들이 계속 쌓이는 것이죠. 제가 얼마나 물건을 잘 모아두는지, 외국 여행에서 본 그 나라의 신문을 가져온다든가, 각종 안내서나 지도를 나중에 필요할지 몰라서 가져오거든요. (이런 제가 징글징글합니다) 한정된 공간에 쌓아두니, 어떻겠어요. 버리기 연습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리란 물건의 자리를 찾아주는 일이라고 하던데, 집에는 제 자리를 못 찾고 계속 방황하는 물건들이 있어요.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방황중인 돌.



겨울을 맞이하는 작은 의식으로 물건을 매일 조금씩 정리하고 있어요. 오늘 가방 두 개를 정리했어요. 쓰지도 않으면서 아낀다는 이유로 움켜쥐고 있었어요. 충분히 쓸 만큼 써서 이제는 그 기능을 다 해버렸는데도 말이에요. 화장품 브랜드에서 받은 에코백과 좋아하는 브랜드의 은색 가방을 버렸는데 자리가 비워지니, 한결 시원해 보여요. 버리면 큰일이 날 것처럼 굴었는데 버려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버리고 나서야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요.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요. 필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는 것을요. 꼭 마음에 드는 몇 개의 물건만 두고 싶어요.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지만, 진짜를 찾기 위한 비용이겠지요. 잘 쓰기 위해서 잘 버리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헤븐님이 글이 써지지 않아서 흘려보낸 시간은 어쩌면 그저 무의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꼭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비용이요. 진짜 마음에 드는 문장은 쉽게 써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대가를 필요로 하나 봐요. 버리지 않고 오래 가는 것을 만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보내야 하는 시간이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아서 비효율로 보이고 가능한 시간을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흑.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마음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하루하루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역할들을 수행하면서요. 다만 글로 남지 않았을 뿐이지요. 글의 생산성이 효율성을 결정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초조해지는 마음.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비효성을 힘껏 껴안고 싶어요. 비효율이 미우면서도 그것을 사랑한다고 말한 헤븐님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용한 열정의 소유자, 에밀리 디킨슨이야말로 비효율성을 열렬히 껴안은 시인이 아니었을까요? 아니, 애초에 시인에게는 효율, 비효율의 구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조용한 도시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하죠. 18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요. 1800여 편의 상당히 많은 시를 썼는데 공식적으로 발표된 시는 7편. 사후에야 시집이 나왔어요. 스물네 살이 될 무렵 가족들에게 ‘무슨 큰일이 생기지 않는 한 절대로 집을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하며 집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를 감금시킨 시인. 엄마의 장례식조차도 시인을 밖으로 나오게 하지 못 했을 만큼요. 시를 지으며 정신적 여행을 하느라 바깥 생활과 철저히 거리를 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자발적 고독과 은둔이 여러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요.



그럼에도 친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시를 보내고 꾸준히 편지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해요. 요즘처럼 소셜미디어(sns)가 있었다면 시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듣고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싱거운 생각도 해봅니다. 비혼 여성으로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시를 열정적으로 쓰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져요. 세상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열정으로요. 시 쓰는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가족을 돌보고 밥 먹고 옷을 입고 일상을 살아가듯 시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시라는 일상을 살았던 것이죠. 사적인 삶을 전부 아는데 공백이 있지만, 공백을 상상으로 채우면서 에밀리 디킨스의 시를 읽었어요.




황홀한 순간마다-

그 황홀함에

비례하여 치열하게 부들부들 떨며

우리는 고뇌를 지불해야 한다

사랑하는 시간 시간

세월의 푼돈을 칼같이 내고-

동전 몇 닢에 통렬히 다투고-

금고에는 눈물이 쌓여!




시에 제목이 따로 없어서 첫 연이 곧 제목이에요. 에밀리에게 시는 ‘멜로디의 섬광이었고 온몸이 오싹해지고 정수리부터 한 꺼플 벗기듯 몸으로 느끼는 것’이었어요. 시의 황홀함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아서 치열하게 부들부들 떨며 고뇌를 지불해야 한다고 노래해요. 정직하게 세월의 푼돈을 지불 해야 한다고요.



시인은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를 버렸어요. 시를 제외한 삶을 최소화했던 것이지요. 어쩌면 원치 않는 상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버려지기 보다 버리기를 선택한 것일지도요. 중요한 것의 기준을 당시 관습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택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 영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선택한 그녀가 용감해 보여요. 설령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이를테면, 여성으로서의 삶)에 따른 선택 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요. 진정한 용기는 선택하지 않을 용기인지도 몰라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용기요. 그것은 신앙에 대한 저항, 타협에 대한 저항이었어요. 시가 지닌 힘은 그 용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시인이 노래한 소멸할 권리란 시를 써야 얻어지는 것. 에밀리 디킨슨의 서랍 속에 있던 시 뭉치들은 2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여기 이곳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시인은 소멸 했지만 시를 통해 살아있음을요.




영혼이란 제 있을 곳을 선택하는 법

그리곤-문을 닫아 버리지-

숱한 천상의 넋들에게-

더 이상 현전하지 않아-

움직임도 없이-꽃마차를 노래할뿐-머뭇머뭇

낮은 제 문 앞에서

움직임도 없이-제왕도 무릎 꿇리지 영혼, 저의 매트 위에

난 영혼을 알고 있지-그 광대한 나라에서

하나를 선택하라

그리곤-관심의 밸브를 잠가 버려라-

바위처럼-




버리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을 생각하며,

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