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지나가니까

Beatrice Cenci , Vincent van gogh

by 헤븐

최근 큰고모님의 별세를 접했다. 8년의 혈액암 투병 생활이었고 마지막은 요양병원에서 큰 고통 없이 가셨다 했다. 오랜 가족 돌봄과 삶의 여러 부침으로 인한 무언의 체념이었을까, 아니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생활적 고단함과 고충이 오히려 상실의 아픔보다 현실적으로 더 컸던 걸까. 장례식장에서 본 친척오빠의 옅은 미소는 어머니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내심 다행이었다. 남겨진 자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현실적 의지가 느껴졌기에.



인생이라는 게 때때로 시끌벅적하다지만 요즘은 더욱 그러함을 느낀다. 세상 안팎으로부터 들려오는 이러저러한 소식들은 대체로 기쁨보다 슬픔에 가까운 것 같은 것이다. 갑작스러운 타국의 전쟁 소식은 무고한 사람들 특히 먼 나라 아이들이 생의 위협을 받으며 공포를 견디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어린이 재활병원이라는 국내에 길이 남을 훌륭한 사회공헌적 행보 덕에 평소 존경하고 응원하던 한 창업주의 난데없는 부고 소식도 접했다. 비록 일면식도 없는 타자의 죽음이었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참 착잡해지고 무거워지더라. 어디 그뿐이던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알만한 대기업의 한 디자이너는 열심히 일을 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단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였고 신차 발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극단적 결심을 하고 말았다 한다. 그리고 여전히도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들은 좀처럼 끊임이 없겠지 싶기도 했던 그런 시대.



한 번 태어나면 결국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겠다. 그래서 허무하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것. 그렇기에 모순이고 역설적인 인생이 원래 고통스럽다는 걸 인정하며 지내다 보면 조금은 편안히 또 어떤 무언의 고통들이 한편 괜찮아질 수도 있는 것일까. 사실은 좋은 삶 나쁜 삶 따질 것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살아내는 모든 삶은 다 존귀하고 대단할 테니까. 게다가 나로서는 누군가를 돌보며 - 특히 아이들 - 자신의 삶도 지내야 하는 이들의 삶이야말로 특히 더 훌륭해 보이더라. 그만큼 인생의 무게를 지고 나아가야 할 테니. 물론 인생에 답은 없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타자에 대한 깊은 관찰과 조력이 없는 이상 함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상대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면.



Portrait of Beatrice Cenci_1600.jpg @Portrait of Beatrice Cenci_1600



'베아트리체 첸치'를 아는 이라면 어쩌면 이 생각에 동의하실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의도치 않은 슬픔과 비극으로 막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에 대해. 그녀의 초상을 처음 접하고 그 그림에 담긴 여러 일화들과 속설들을 알게 되던 해, 나 또한 여러 삶의 부침들과 고독과 내적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한편 그녀의 아름다운 초상 이면에 담긴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부끄럽게 반성해보게 만든 조용한 자극이었다. 물론 잔인하지만 위로가 되어 주기도 했다. 무릇 위로란 나의 슬픔보다 더 큰 남의 슬픔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슬픔이 온데간데없이 감춰지는 법이어서. 면목없고 잔인하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내내 바라보며 소란스러운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그린 이가 이탈리아의 화가 '귀도 레니 (Guido Reni)' 인지 아니면 그의 제자로 있던 문하생이었던 '엘리자베타 시라니 (Elisabetta Sirani)' 인지에 대한 여러 학설과 구전이 난무하다. 그러나 누가 그렸다 한들 그림은 말이 없고 변함없는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이야기다. '모나리자'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함께 3대 여인상으로 꼽힌다 할 정도의 이 아름다운 초상화는 타고만 미모 때문에 아버지인 프란체스코 첸치로부터 강간을 당한 그녀의 비극적인 결말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은 그녀가 사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의 베아트리체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한다. 흰색 터번과 옷, 그리고 그에 걸맞은 그녀의 커다랗고 동그런 눈망울과 피부색은 어두운 배경과 대조적이라 더더욱 돋보인다. 왜 흰색이었을까. 흰색은 지켜지면 그 고유의 순수한 존재를 드러낼 수 있지만 반대로 순수해서 쉽게 더럽혀질 수 있는 것. 흰색 위로 다른 색깔이 덮혀지면 흰색은 결국 그 본연의 고유함을 잃게 된다. 베아트리체가 바로 그녀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에서도 초연했던 건 어쩌면 그게 그녀의 운명이었음을 이미 체념하듯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까.



피해자였으나 오히려 그 시대와 주변인들은 그녀의 편은커녕 진실은 왜곡되기 일쑤였다. 모의에 휘말려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베아트리체는 끝내 로마에서 사형을 당해야 했다. 그런 그녀의 초상화를 보기 위해 안달했다던 프랑스의 극작가 스탕달은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의식을 잃는 엄청난 감정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용어가 다름 아닌 '스탕달 신드롬'. 이 얼마나 비극적이지만 우스운 인생의 모순이던가. 짓밟힌 한 인간의 삶은 온 데 간데없이 그저 그녀의 동그란 눈망울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담담하게 현생의 고통스러움을 죽음으로서 마칠 수 있다는 무언의 고마움을 말하는 것 같은 그녀의 너무나도 고운 입술. 그림 속 그녀는 말이 없다. 딱히 더 이상 이제는 할 말조차 잃은 것일까. 순박하고 슬픈 한 영혼은 시끄러운 세상을 등지고 조용하게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그렇게 영원히 잠들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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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 herriet hosmer beatrice cenci.JPG @Harriet hosmer, Beatrice Cenci, 1857



'베아트리체'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심어준 뮤즈로도 유명하다. 단테의 베아트리체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베아트리체도. 여러 '베아트리체들' 은 단명했단 공통점을 지닌다. 그녀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진 못했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그를 둘러싼 여러 작품들로 재탄생되며 훗날에도 영원히 회자되곤 한다. '헤리엇 호스머'의 베아트리체를 담아낸 조각상을 보다가도 무언의 교훈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린 사람의 연약한 삶. 그러나 죽음은 그런 이들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기도 하는 법. 그러나 한편 생의 의지 여부를 떠나 어떤 죽음들은 일정 부분 사회적 타살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엄숙하고 진지하게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하지는 않을지. 누군가들의 죽음은 비록 자살이나 한편 타살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도 다정함도 전혀 지니지 못한 이들이 함부로 내뱉는 '말'과 '행동' 은 그 자체로 누군가를 헤치는 살인 병기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얼마나 의식하며 살까.



죽음이란 모두에게 정말로 공평하게 주어지는 걸까. 자살이든 타살이든 병사든 자연사든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죽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어딘지 모르게 어떤 죽음들 앞에선 억울하고 아쉽고 화가 나기도 하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삶의 과정 속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의 시간이 과연 마지막엔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지. 그럼에도 아름다웠다고 말하며 눈을 감는 존재만이 죽음의 축복을 받고 편히 떠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살면서 때때로 슬프고 여전히 누군가들의 죽음과 아픈 사정들을 직간접적으로 겪게 되면 마음이 무겁고 눈물도 곧잘 흘리고 마는 나는. 다만 아직도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그리하여 나의 무지함에 그저 고개를 숙이며 함구하게 되고 말뿐. 베아트리체처럼 힘든 생을 살다 허망하게 떠나간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과 장면들 앞에서는 더더욱.



1280px-Vincent_van_Gogh_-_Starry_Night_-_Google_Art_Project.jpg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화가 중 가장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도 그렇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화공은 마지막에 가슴에 박힌 총알에 의한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르렀다고는 하나, 한편 반 고흐 말년 그의 그림 속 우울감과 평소의 정신적 지병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설엔 여전히 여러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려 살아가려 했던 화공의 뜨거운 열정과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존재였던 동생 테오가 있었기에 그렇게 쉽게 마지막을 장식하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하여 그에게 총을 쏜 범인은 평소 고흐를 지독히 괴롭혔다던 한 소년이 우연히 그에게 총 쏘는 시늉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쐈을 거라는 설과 그것을 쉬쉬하며 감추려 했던 마을 주민들 때문에 말없이 덮혀졌다는 설에 나는 괜히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어떤 죽음은 그렇게 어이없을 수 있다는, 인생의 모순을 다시금 느끼면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바라보며 괜히 짠한 마음과 동시에 눈물이 나는 건 어쩌면 고흐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을 떠올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이야기도 생각이 나고 마니까. 평생 살면서 자기 마음속 '별' 하나에 의지한 채 화가의 열정, 순수함, 무엇보다 애타는 현실에서도 꿋꿋하게 지켜내려는 절박한 고결함이 모두 이 그림 한 곳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아서. 밤은 어둡고 끝나지 않은 것 같으나 결국 지나간다는 걸 믿고 싶었던 마음. 빛나는 별과 강물 속에 비치는 다른 반짝이는 별 또한 바라보려 했던 조용한 열정. 동틀 녘과 밤의 시간 그 경계 속의 처연한 현실의 슬픔. 그가 생전에 말했던 것처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현실 속에서 내내 그리워한 채 힘들게 살아간 한 인간의 애달픈 인생의 모순...



"가장 어두운 밤도 언젠간 끝나고 해는 떠오를 것이다. "


- 빈센트 반 고흐 -



Vincent_van_Gogh_-_Almond_blossom_-_Google_Art_Project.jpg @Vincent van Gogh , Almond blossom, 1890



남동생 테오의 아이가 탄생함을 축하하며 조카의 존재와 테오 부부를 위해 그린 작품이라 하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는 무엇보다 넘치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여러 갈래로 쭉 뻗어 나고 있는 나뭇가지와 꽃이 활짝 피는 모습은 화폭 가득 담겨 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생명들의 찬란함과 응원이 느껴진다. 이른 봄에 피는 아몬드 나무 꽃은 새로운 생의 상징이자 아몬드 꽃의 꽃말 역시 희망이란다. 역설적이게도 고흐는 이 그림을 정신병원에서 그렸다지만 그의 생에서 가장 우울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밝은 그림을 그리려던 고흐의 이야기를 접한다면 누구든 이 그림을 보면서 힘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쉽진 않겠지만. '그럼에도'라는 부사를 기억하며.



자신의 삶이지만 그 자신 본연의 의지대로, '나'로만은 좀처럼 살아가기 쉽지 않은 누군가들에게 나는 이 그림들을 조용히 건네주고만 싶어 진다. 내가 많이 위로받았고 현재까지도 가끔 떠올리며 '그럼에도' 힘을 내게 되고 마는 그림들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고. 어둡다가 밝다가 그렇게 인생은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감히 조심스럽게 말해보고도 싶어 진다. 현재 처한 고단한 상황들과 어려움들, 곤란하고 난처해서 피해버리고만 싶어지는 삶의 장면들과 견디기 힘든 감정들로 인해 오늘 살아내는 시간이 힘들다 해도. 그 모든 불편한 것들을 없애진 못하나 최소한 조금씩 흐려지게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어둠 속에서도 조용히 자신을 태우며 살아내는 촛불처럼 '나'를 밝히려 한다면. 힘들 땐 숨기지 말고 충분히 주변인들에게 밝혀도 괜찮다는 것을. 그러다 보면 또 인생의 그늘짐에서 조금은 벗어나 밝은 빛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임을. 그러니 우리는 조용히 스스로 선언해야 한다. 오늘 기쁠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그 선언은 결국 자신의 언어가 되어 어느새 '나'를 지켜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밤은 어느새 지나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 테다.



밤은 지나가니까. 끝없는 밤 같아도 그 밤도 언젠가 결국 끝난다.

영원할 수 없는 유한한 우리들의 인생처럼.







#Source : #Beatrice Cenci , #Vincent van gogh


https://en.wikipedia.org/wiki/Portrait_of_Beatrice_Cenci

https://en.wikipedia.org/wiki/Vincent_van_Go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