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Nov 23. 2017

#47. 모지리가 되었다.

바보 같은 모지리는 그러나 안다. 약해 빠졌을 때 더 성장함을.

 삶과 드라마가 다른 점은 '재방송' 되지 않는다는 것일 테다.

단 한순간들 뿐이어서 소중하고, 다시 붙잡을 수 없어서 안타깝고. 이 생각이 부쩍 이유 없이 절실한 요즘이기에, 그 안타까움을 최대한 덜 느끼고자, 더 뭐든지 시도해 보는 나다. 그러나 어제는 실패하고 말았다. 병신이 되었다. 회사에서 아주 오랜만에 쓸데없는 헛짓거리를 경험한 순간이었다. 철저한 무시 하에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나의 호의와 진심이 누군가에겐 그저 만만하고 가벼운 호구로 비치는 것 같았다. 자책감에 빠져들 정도로 갑자기 내가 초라하고 작아진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물론 안다. 그 누구도 악의가 없고 뜻하지 않게 벌어졌음을.

그럼에도 그냥 무너졌다. 상황이. 그리고 거기에 대처하는 여전히 나약한 내 모습이. 퇴근을 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남은 집안 정리를 하고 캔맥주 하나를 오랜만에 냉장고에서 꺼내어 땄다. 스스로 자체 병신 연출하고 깊은 반성을 한 그런 밤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낮이 뜨거워질 정도로 정말 별 것 아닌 상황이었다. 초대받았으나 막상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왜 왔냐는 듯한 날 선 시선들과 행동들. 그런데 나는 그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그냥 아무 말 없이 그 무리들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아무 말 없이. 누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으나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한마디라도 입에서 뭐든 나오는 순간 크게 울어버릴 듯해서. 여전히 나약해 빠진, 여전히 덜 성숙된 순간을 다시금 맛본 것이다.


괜찮았는데, 내가 여전히 좀 '아쉬운'게 있나보다.


 참고 참고 또 참아내다가 결국에 예상치도 못한 어이없는 자극 하나에 그만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미노 효과라고나 할까. 맥주 한 캔을 깠으나 한 모금도 채 마시지 못한 채 멍 때리며 글감을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만 알 수 있는 깨달음의 순간은 일상을 흘러가다 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렇게 내 마음에 훅 파고든다.


 

시리아 난민이 노예시장에 400불에 팔려 가는 세상임을 알게 되었다.

500원도 채 되지 않은 단 돈 몇 백 원의 구충약을 먹지 못한다고 한다. 인분을 비료로 쓰기에, 같은 나라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세상인 북한 주민의 대다수는 기생충 감염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 와중에 그 나라 대다수가 당연한 듯 앓고 있는 그 처절한 감염이, 그곳에서 넘어온 한 병사에게 발견되었을 때, 그것을 알리는 것은 사회적 맥락과 1도의 관련도 없는, 오직 그 사람의 인권을 학살 하 듯한 썩은 냄새 진동하는 가십들이었다.


 더군다나 단지 한 생명을 구하느라 진땀 뺀 의사가 오히려 외압에 욕을 먹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는 세상 임도 더 알게 되었다. 모지리 같은 관점의 보도들이 난무했고, 그중의 단연코 제일은 같은 업에 종사해도 서로 시기 질투에 쓰레기 소리하며 할퀴지 못해서 혈안이 된 모습들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 의사는 억대의 치료비가 드는 현실과 동료들의 숱한 비판과 시기 질투 온갖 악소문을 짊어진 채, 묵묵히 그저 그의 본업을 할 뿐이었다.

                                                                                                                     

 못 먹고 못 입고 치료 못 받는 삶이 있다.
나 같은 누구들에겐  노 이슈인 것이 누군가에겐 처절한 이슈인 세상.
그것이 이 세상의 절반이라는 픽션보다 더한 팩트의 현실.


 나는 이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행복에 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으며 더한 고충과 고통도 담담해 인내하며 그렇게 본업에 충실한 대단한 삶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른다운 진정한 시간들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나보다 타인을 위할 줄 아는 멋지고 강한 마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오늘의 내 행동이, 눈물이, 내가 맞닥뜨렸던 그 보잘것없는 순간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치기 어린 나의 여전히 어린, 어리석음이었음을 느낀다.


아는 게 어디냐. 그래도. 어리석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테니까.


 한편으론 새삼 다행이기도 하다. 내가 바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스스로의 깨우침에.

제법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 걸까. 아니면 군살이 베길대로 배겼는지, 바닥을 내리찍어도 그만큼의 자체 회복력도 꽤 강해져서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금세 다시 마음을 진정시킬 줄 알게 되었으니까.


 자신의 행동들이 누구에겐 상처임을 모르는 진짜 병신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상에 그런 병신들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의 절반은 또 다른 세상의 절반이 어떤 삶을 사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무지가 그만큼 큰 죄악이 될 때도 있다는 것.


 그러니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다독여봤다.

 세상의 절반에 대한 관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또한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만 사실은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된 사람이라고. 그러니 오늘 잠깐 모지리 같았지만 모지리임을 인정도 하고 알기에 다행이다.


그래서 나에게 고맙다. 고마움을 스스로 표현해 낼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음에 다행이고 감사한 순간이다.


 그 모지리는 가장 약해 빠졌을 때 오히려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어제 먹다 남은 캔맥주는 결국 마시지 않고 반 이상을 버려 버렸다. 찬 맥주가 유난히 더 차가운 하루였어서.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새로운 시작은 그렇게 다시 찾아온다.


 몸도 마음도 사뭇 가벼운 시작이다. 만약 오늘도 어제와 같은 모지리 장면이 연출될지언정, 괜찮다.

나는 아직 괜찮은 사람이라고. 비록 때론 모지리가 될지언정, 그 모지리가 사실은 보이지 않은 소중한 것들을 여전히 알려고 하고 그러니 스스로 움직이려 하며, 마음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득 품은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약해 빠졌을지언정, 그게 오히려 단단한 성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 테다.


나완 상관없는 그저 남들의 얘기만 같을 설레는 일들이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일어나 주기를 바란다.


유난히 춥지만 그만큼 기대되는 하루가 되어볼까.

누군가에겐 삶의 다른 터닝이 될 수 있는 날. 누군가에겐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행운이 주어진 날. 또 누군가에겐 상처로 너덜거려서 한없이 약해빠지는 날. 그 모든 날도 여전히 살아있으니 가능한 날들임을 기억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46. 기다렸던 그를 만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