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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22. 2017

#46. 기다렸던 그를 만났다.

더 테이블의 '김종관' 감독과의 하루를 기억하며..


어차피 힘들게 살 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속옷장사와 용달차 운전을 하다가 뒤늦게 영화 학교에 들어갔다는 그였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김종관이라는 사람만의 독특한 감성과 특유의 연출력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 약 40명 정도가 어제 한 서점에 모였다. 그렇게 우리들의 북토크는 시작되었다. 


 저녁 7시 30분. 

 판교에 위치한 북바이북에 찾아갔다. 문이 없는 줄 알고 그대로 들어가다가 투명문에 부딪혀 머리를 밖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시간이었던 탓일까. 마음과 몸이 앞서서 미쳐 문을 보지 못하고 밖아버린 얼얼한 이마와 머리. 그 모든것이 이상하게 좋았고 아프게도 설렜다. 좋아하는 작가의 북콘서트나 이야깃거리를 들을 기회가 생기면 종종 가는 곳. 시간 내기가 정말 빠듯하지만 '반드시'라는 부사를 쓸 만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탓이겠다. 


서점으로 가는 길까지. 내내 그냥 설레서 기뻤어. 아직 설렐 수 있는 나도 기뻤고...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와 '더테이블'로 유명한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그를 책에서 먼저 접했다. '더테이블'이라는 영화와 똑같은 제목으로 단행본 200페이지 정도의 영화 대사 및 시나리오와 그의 후기를 담은 이야기가 적혀 있는 손길이 가는 예쁜 책. 서점에 비치된 그의 다른 산문집인 '골목 바이 골목'을 잠깐 훑어보고 있던 차에,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들어왔다. 


 단상 마이크가 보이는 앞에서 두번째, 꽤 가까운 거리에 앉아있던 나는 오지 않을 전화와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찰나였다. 왼손으로는 핸드폰을 꽉 잡은 채 오른손으로 훑어보고 있던 책을 무릎위에 놓았다. 그렇게 그와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크지 않은 키의 아담한 체구와 진네이비색 아디다스 운동화와 검은색 코트, 멜란지그레이의 보풀이 약간 일을 듯한 스웨터가 그의 약간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와 듬성 듬성 보이는 하얀 머리카락과 이상하게 잘 어우러지게 보였다. 나이와 답지 않은 개구쟁이 같은 익살스러움과 동시에 영화와 글쓰기라는 '창작자'로 살고 있는 그의 삶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들을거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또 진중함이 느껴졌다. 


초상권에 문제된다면 자삭을 하겠습니다만 뭐 이미 브런치북콘테스트 심사위원으로 딱하니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광고해주시기도 하셨으니 저도 문제없을 거라며..(덜덜덜)


 미리 적어둔 노란색 포스티잇에 적혀진 나와 같은 청중들의 질문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대답하는 형식으로 북콘서트가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나는 '단 한번'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름 도발적인 질문 두 개를 적었다. 


'나를 읽어줘' 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나의 질문이 적혀있는 포스티잇이
그의 손가락에 닿는 순간, 이상하게 긴장이 서렸던 건 질문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와 정면으로 꽤 길게 마주한 눈맞춤 때문이었을까



작가님의 세계관에서 '불륜'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을 보자마자 그가 씽긋 웃었다. 너무 도전(?) 적이었나. 그러다 갑자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익명의 질문이지만 왠지 눈이 마주해서 그가 금방이라도 나를 알아챌 것만 같은 이상한 설렘과 긴장을 느꼈다. 질문지를 보면서 그가 한참을 미소짓다가 말했다. 


 소설가나 에세이스트, 영화감독 등 어떤 이야기와 컨텐츠물을 창작해 내는 사람들에게는 '불륜'이라는 사랑의 소재가 의외로 필수 아이템 처럼 기본적으로 쓰여지는 소재라 했다. 그래서일까. 불륜이라는 사랑의 형식이 그에게는 그다지 도덕적으로 금기시된 언급하기 꺼려지는 단어가 아닌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그저 사랑의 또 다른 단편적인 형식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했다. 마치 더 테이블에 나오는 혜경과 운철이 탄생된 것도 그런 이유였을 지 모르겠고. 


서로의 미래를 해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지르는 사랑. 
그것도 사랑이라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끝마디에 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가 불륜을 경험했다는 건, 글쎄요. 음. 약간의 재미를 위해서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는 걸로. 다만 제 영화와 소설이나 글쓰기의 소재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화두이긴 합니다. 


 최근 브런치에서 제멋대로 중편 소설을 연재해 낸 나로서도 '불륜'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던 탓에 한편으론 다른 창작자들의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비춰질까가 사뭇 궁금했었다. 언젠가 한번 더 내공이 길러진다면 좀 더 거침없이 써 내려 가고 싶은 소재기도 해서 여러 이유(?) 하에 과감한 질문을 던졌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그 답게 담백한 대답이었고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더 테이블의 혜경과 운철 스러운 느낌의 그들의 뒷 이야기, 그리고 맺음 없이 그저 이어져 있는 연결고리같은 여전한 미지수의 느낌일지도 모르겠고.


더 테이블을 이젠 읽지 않고 '보고'싶어진다. 영화를 봐야겠다. 시간을 또 내야겠지... 언젠가  당신과도 같이 봤음 좋겠어. 한번은 그랬으면 좋겠다.


 여러 질문들이 오고 갔고 즉석 질문에서 나는 다시 손을 들었다. 역시나 '단 한번'의 만남일 지 모른다는, 아니. 그 보다 정말 힘들게 낸 저녁시간이 너무나 소중했고 간절한 탓이었을 지 모르겠다. 


기억에 가장 남는 사랑이 있다면요? '가장' 

 그가 또 피식 웃었다. 사랑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이지만 실제 자신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는 몹시 쑥쓰러워 하는 그였다. 본인 입으로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여간 쑥쓰러워서 두루뭉술하게 대답해 버린다는 그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소년같은 순수함으로 다가온다. 


이해 안되는,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미래를 해치는 사랑을 해 봤는데, 갑자기 그분이 생각이 나네요. 호러는 아닌데, 언젠가 한번 자고 있다가 눈을 떠 보니 그 분이 절 보며 울고 있더군요. 그때 이해가 이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분과의 그 사랑이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왠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것만 같았던 나는 왜였을까. 


언젠가부터 사랑이란, 나의 모순을 깨닫고 괴로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감정.
그게 사랑인 것만 같다.  



 영화와 창작자로의 삶. 글쓰기와 책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듣고 또 나누며 그와의 시간에 빠져든 지 어느새 9시. 끝이 아닌 것 같은 끝(?) 으로 북토크는 마무리 됬다. 잠든 아기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시간을 허락받은 터라 또 부랴부랴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달려가 잠깐 버스를 대기 하고 있던 중 매섭게 부는 겨울바람도 이상하게 추운 느낌은 아니었다. 생각에 빠져서 그랬던 걸지 모르겠다. 


기다렸던 만큼, 제일 먼저 도착해서 바라본 저 마이크. 언젠가 나도 이야기를 듣다가 '들려주게 되는'날도 오게될까. 야무진 상상을 잠시 해 본다.


 그가 했던 말. '이왕 힘든 삶이라면 좋아하는 걸 좀 하면서 살아보자'라는 그 한마디가 내내 마음속에 남아있어서일 지 모르겠다.

 어떻게 변화가 다가올 지 모르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니까. 그래. 이왕 힘들다면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용기를 내 보는 것. 그리고 저지르고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마치 내가 스스로 주문을 걸듯 마법에 빠지듯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또 누가 알까.
행운이라는 것이 내곁에 다가와 있을 지.


오늘도 기다려본다. 여전히 그리운 나의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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