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권
한 달이 '또' 지나고 새 달이 시작되었다는 건, 이렇듯 어느새 '지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한 달의 책들을 정리할 무렵에서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고 만다. 예측 불허한 채 밀려들어오는 여러 생활 속 난제들로 인한 심적 부침이 상당한 2월이었다. 언제는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냐는 반문이라도 듣는다면 물론 멋쩍게 아무 말 못 할 테지만. 그래도 반대로 내성이 생기는 중임을 느끼곤 한다. 2월에도 몇 권의 책들 덕분에 덜 요란스럽고 덜 분했으며 조용히 침묵할 용기를 지닐 수 있었다고 자평하곤 하니까.
이번달 책으로 세 권을 선택했는데 그 중 드물지만 한 권은 국내 서다. 평소 구독하며 잘 읽고 있었던 김지수 기자님의 여러 석학들과의 인터뷰가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위대한 대화' 와, 해외의 떠오르는 뇌신경과학자이자 일전에 EBS 위대한 수업에서도 뵐 수 있었던 한나 크리츨로우의 '운명의 과학'. 그리고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떠올리게 하며 그의 메시지를 친절하고 대중적인 메시지로 다시 재탄생시킨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였다. 특히 '삶과 죽음에 대한 스피노자의 지혜'라는 부제가 담긴 스티븐 내들러의 '죽음은 최소한으로- ' 이 책은 그야말로 책갈피가 상당수였고 그렇게 두껍지 않았지만 생각을 여물게 하고 침묵을 일삼게 만든 책이었다.
이렇게 2월을 마무리하며.....
가장 인간적인 미래 ★★★★
죽을 때까지 치매 없이 사는 법 ★★★★
수전 손택의 말 ★★★★
데이비드 호킨스의 365일 명상 ★★★★
조셉머피 부의 초월자 ★★
라이프 인사이드 ★★
개와 나 ★★★★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
2022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
읽는 생활 ★★
러브 몬스터 ★★
만지고 싶은 기분 ★★
내 일로 건너가는 법 ★★
사는 게 정답이 있으려나 ★★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 ★★
나를 위한 노래 ★★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미셸푸코의 성의 역사 시리즈를 천천히 읽는 중인데, 3월엔 그 책들을 완독하고 단상을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내내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가 떼고 다시 노트북을 닫기 일쑤인... 여전히 발행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숙성만 시키는 중인 이야기들 앞에서. 부끄러움의 장막을 걷어내고 일단 발화할 용기를 떠올려본다.
아무 말이어도 좋을까.....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예전엔 어떻게 그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마구잡이로 글을 써 보였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만 한 사유도 깊이도 없는 문장들을 잘도 써내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작년 말부터는 무어랄까. 스스로도 갑작스럽지만 글쓰기에 대한 스탠스가 많이 달라진 기분이다.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성의 없이' '마구' 경박스럽게 천한 문장들로 점철된 가벼운 문장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 오만한 걸까 - 또한 생각이 활자라는 언어로 드러나는 데 있어서 내가 느낀 심적 순간과 확실한 매칭이 되어 닿아지는, 그야말로 확실하게 적확한 문장을 완성시키거나 최대한 닿기 전까지는 - 완벽함의 강박이 심해졌다 - 절대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인지. 한 문장 한 단어를 떠올리는 데 시간도 심적 에너지도 상당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필 한 꼭지조차 '저장'만 된 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요즘인데...
어제는 좀 쓰고 싶었다... 정말 그래버리고 싶었다. 기어코 써 내 버려서 마음의 오물을 덜어내고 싶었다. 물론 끝내 발행되지 못한 채 '저장'만 되어 버렸지만. 어쩌면 곧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겠지만 이 시절을 통과하며 여전히 따끔하고 지난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