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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30. 2018

# 원치 않든 원했든

말과 마음은 때론 달리 가니까. 바라지 않았지만 사실 바랐다고.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상상했었다. 

그랬던 비가 어제 주룩주룩 내렸다. 아기들을 씻기고 약속을 위해 잠깐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내린다. 이미 내리고 있다' 라고 마음은 이미 먼저 앞질렀던 것이다.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비 엄청 오게 될 거야. 아니 이미 내리고 있네. 우산... 어딨더라



삶의 부분 부분을 상상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 어이없게도. 
그 상상을 지나칠 정도 (는 해악이나 그럼에도 제대로 착각해 버리면 때론 정말 허구도 진실이 되는 걸까. 아니 그렇다고. 자신 있는 듯 없는 듯 다만 굳건히 믿고 있지만, 사실 제대로 착각조차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딱 현실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주위 타인들의 시선, 평판, 그들의 마음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내의 시선, 나의 마음, 나의 흐름을 꿰차지 못할 때가 생긴다. 어쩌면 당연한 걸까. 완벽히 혼자가 될 수 없는 없다면. 그러고 싶다 말해도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도 말한다면. 



원치 않든 원했든, 생각은 선행한다. 모든 움직임에




소리 없이 돌아가는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그렇게 흘러간다. 그 흐름에 맞춰.. 그냥 흘러가 본다.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다만 좀 더.... 좀 더 단단해질 순 없을까. 좀 덜 마음이 새어나가고 좀 더 스스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귀갓길에 아이스크림 두 통을 사 가지고 귀가하면서 중얼거려봤다.



엄마랑 같이 먹으려고 샀지
기집애. 집에 새우깡도 없냐
손가락 아프시다더니 왜 세 캔이나 따셨어 



1년 동안 우리 두 모녀의 하루 마무리는 언제나 캔맥주였다. 고통을 무던케 했던. 

마치 주술의 마지막은 언제나 그것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암묵적인 깰 수 없는 약속처럼. 그 시절을 문득 생각하며 엄마와 대화를 섞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은 어느새 캔 맥주의 캔꼭지에 손가락이 닿는다. 그렇게 한 캔을 따버린 나는 뭘까 싶고-



뭐가 제일 힘들어
그냥. 내가 너무 나 이외의 것들에 의지하고 지냈나봐. 단디가 없네 단디가. 
단디가 뭐야 
마음 단디 (베시시) 
됐고. 너 이름 바꿀 생각 정말 없어?


역시 쿨한 그녀. 이래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 


또 그 소리.. 이름 바꾸면 뭐 달라져?
아니 그래도 


그래 엄마. 나도 좀 달라졌음 좋겠다. 바꾸지 뭐. 알아봐 줘요


이 또한 원하든 원치 않든. 아니 사실은 좀 원했다. 

이름을 바꾸면 삶의 흐름이 좀 더 유해질 것 같아서. 지금처럼 불안하거나 이리저리 줏대 없이 흔들려대는 게 좀 덜 할 것 같아서. 



원했었을지 모른다. 깊이 마음에 묻어둔 장면들을. 
바랐던 비가 어제 내려준 것도 그래서일 거라고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장면부터 시작해서 귀로 들리는 멜론 선곡표 음악들이 들려지기를. 그리고 곧 제출할 공모전의 지금 정리를 마무리하고 있는 원고들은, 또 떨어질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하자 잠깐 또 눈물이 났고 (빌어먹을) 


모든 이루는 것들은 그전에 원했던 바람이 존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매일 혼자 먹다가 둘이 마시게 된, 오랜만에 그녀와의 캔맥주와 1+1의 싼 맛이 이상하게 정감 있는 바닐라맛 투게더 아이스크림, 그리고 나의 바뀌어질 이름 이야기를 하다가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먼저 인사를 건넸었던 내가, 어느새 내게 인사를 건네주는 이들이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에 문득 기쁨과 감사함을 느끼며..

그것도 원했으니까. 원하는 것들을 먼저 움직여 주니 결국 그렇게 다가와 주기도 한다는 걸. 아침 인사를 먼저 건네주는 것도, 이름 불러 주는 것도. 모두 다. 

아직 이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은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 보고 있다.  


                                                  

오늘 필사는 망.....하지 않고 점심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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