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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25. 2018

앨리스를 죽이지 않기로 한다.

마음속 앨리스를 계속 살려 보면서 살아 보는 거라며...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을 끝으로 몇 년의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저 멀리 '가나'라는 새로운 미지의 땅으로 떠난다던 그녀였다. 그녀와는 일터에서 만났으나 일보다는 개인의 세계와 '꿈'에 대해서 종종 이야기 나눴었다. 아니 종종이 아니라 사실은 대부분 그랬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마지막에 기어코 눈물을 쏟아 냈던 건. 회사 인간이 아니라 '내 사람'으로 대했던 '나와 너의 진심'이 맞닿았기에..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참고 참아냈던 눈물방울은 기어코 흘러나와 버렸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검은색 종이봉투 겉에는 장미꽃 덩굴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향기가... 그녀의 향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 어... 주연
- 언니 
- 아...
- 몰래 놓고 가려고 했는데 여전히 일찍 나와 
- 아아... 있다가
- 응. 있다가! 
- 응.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요즘 회사에서. 

급작 스레 다가온 인수인계. 정신없이 새로운 일을 짧은 시간 내 배워가며 '실행'까지 해야 하는 나로서는 요 근래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불평불만보단 일단 'solution'을 도출해 내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오지라퍼가 일을 다 '떠받아 쳐 내기' 바쁜 일상들을 감당해 내느라 적잖은 분노는 주말 육아에 그렇게 간간히 쏟아져 나온다. 저번주도 그랬다. 그리고 파김치가 되어 드디어 오늘 월요일을 맞이했었는데. 

그 파김치도, 쌓아져 있었던 표출해 내지 못한 약간의 짜증과 슬픔과 분노는 그녀가 남기고 간 향기 묻은 포장지와 그 안에 노란색 편지. 그리고....'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보자마자 눈물이 났고, 그 눈물과 같이 흘러내려간다. 그래. 이렇게 흘러가본다. 

오전이 지났고 그녀에게 톡이 왔다. 
잠깐이라도 보고 싶다던 우리의 마음은 딱 10분. 근무하던 6층의 사무실로 12층의 그녀가 내려와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우리 둘은 만났다.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고 여전히 서로의 꿈을 북돋아 주었다. 

말했었다. 그녀에게. 마음 속에 앨리스를 죽이면서 살아왔었던 지난 과거 그리고 요즘의 현재들을. 
그러나 또 말하면서 다짐했다. 


마음속의 앨리스를 죽이지 않기로 한다고. 
어떻게든 내가 기억하는 한, 살려서, 그렇게 살아 보겠다고.
내가 놓지 않을 거니까..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녀의 앨리스와 나의 앨리스를 응원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떠나간 이와 남겨진 이의 중첩되는 아이러니한 시간의 흐름이. 그 짧았던 10분이 이상하게 먹먹하고 뭉클했던 건 왜였을까. 목이 메여서. 차마.... 그녀와 점심은 먹지 않았다. 우리 둘은 그러기로 했다. 다만 서로 약속했다. 

- 결혼 하면 연락해. 아니 하지 않아도 연락해. 가나 가서 인증샷
- 당연하죠. 언니... 
- 미안... 약속 못 지키겠어.
- 왜 울어... 아니야. 뭐가 미안해 내가 고마워
- 고마워요..
- 안되겠다. 
- 고마워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의 이름을 지키자고 
'오늘의 이름이 나였으면 좋겠다' 는 마음이 담겼던 보라색 책을 수줍은 듯이 건넸던 나의 시간과 받고 더 좋아해 준 그녀의 시간은 이렇게 평행선처럼 각자 흐르고 있다고. 그리고 또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살자고. 그게 힘들고 때론 이미 잊혀져 있더라도 내가 기억해 주겠다고. 감히도 터진 입은 그렇게 입방정을 떨어 보았다...그렇게 그녀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지금 이 곳에서 잠시 글을 쓰고 있다. 이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아니 어쩌면 아끼고 싶어서. 이 뭉클함과 무언의 간절함을 여전히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이 에너지를 고스란히 모아 두면서 새롭게 재탄생 시키고 싶어서. 

고생했다는 말, 수고했다는 말, 그리고 널 대신해서 울어주고 또 미안하다는 말. 
사실은 그 모든 말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다는 걸 그녀는 알까. 들리지 않지만 그 들리지 않은 침묵을 불평하기 이전에, 이제는 내가 대신 해 주기로 결심하고 오늘들을 살아 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챘을까.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또 보아. 
아니 비록 또 보지 못할 지언정. 이렇게 연결되었음에. 감사하고 또 고마워. 다만 이 한마디로 모든 것들이 갈음 될 테다. 

고마웠어. 그리고 고마워. 여전히. 그래서 보고 싶을거야....


너와 채웠었던 우리들의 짧고 긴 시간들이 참 고마웠어. 그래서 그만큼 눈물이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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