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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13. 2018

엄마의 엄마들이 미웠어

미안해요 미워해서. 근데 정말 미워했었어..

편지 셋) 사는 거 별거 없다던 당신 목소리,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었어.. 


별 거 없다했지만 사실 별 거를 기대하며 사는거 아닌가. 다들 그러면서.. 아닌 척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나’가 대세인 요즘인 것 같아요. 

서점만 가봐도 단연코 베스트셀러나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책은 이런 종류들이래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 그리고 '오늘의 이름이 나였으면 좋겠어' 란 제 아류작도.  너도 나도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더 강하게 기억하고 싶은 시대인가 봅니다. 물론 당신도 알겠죠. '나'라는 존재가 안 중요할 때는 사실 없었다는 것을. 누가 그걸 모르겠어요. 다만 책 제목들을 보고 있자니 현실과는 어딘지 동떨어진 채 그럴싸하거나 뻔뻔스럽게도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먹고 살기 빠듯한 이들에겐 
'나의 삶'을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을까 싶어요.



당장 주어진 현실을 살아내는 누구들에게는 말이죠. 

'나'로 산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하던가요. 당차게 개인주의자 선언을 마다하지 않는 시대를 사는 저조차도 쉽지 않은걸요. 하물며 당신의 과거, 그 시절은 더더욱 '나의 삶'을 생각할 여유가 허락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편해 지나 봅니다.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그 메시지가 이상하게도 어떤 삶들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거부감이 느껴지나 봐…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소중하지만 
‘나만’ 생각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  



나를 포기한 대신에 주어지는 대가 혹은 선물 같은 것들은 일상 곳곳에 알게 모르게 숨겨져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죠. 


자신이 아닌 역할을 위한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태어나서 주어진 당신의 이름 세 글자는, 어쩌면 역할이 쥐어지는 그 탄생 순간부터 본의 아니게 부정되어야, 살아지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만 생각하지 않았기에 지금이 있었고, '나'로 살고 싶어도 당신에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고마웠고 그만큼 미안했어. 그 '역할'이 당신 '자신'이라 여겼던 마음에...



그래서 엉뚱하게 그 화살은 당신의 ‘엄마들’께 튀기도 했습니다. 한때 그녀들을 참 많이 미워했었어요.

  

당신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고 마는 장본인들 같았거든.  



공부. 정말 하고 싶었다면서요. 

어린 삼촌들의 돌봄 노동을 서포트하며 동시에 돈을 벌어야 살아지니 자연스레 학업의 연속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었나요. '어린 동생'이라는 건 사실 어설픈 핑계 같습니다. 그렇잖아요. 당신도 어렸잖아. 2살 터울이면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던가요. 공부에 관심 1도 없는 남동생들, 그럼에도 학교를 다녔던 삼촌들과 그러지 못해도 공부하고 싶어서 야간 학교를 악착같이 다녀서 졸업장이라는 걸 손에 얻어낸 당신이었지만, 곧장 취직해서 돈벌이했다면서요. 


기대 좀 하지 그랬어 엄마.. 기적을 기대하면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그런 믿음은 헛된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물론 세상이 불공평한 건 반박할 수 없는 이치가 되었지만, 삶이라는 게 그만큼 당신에게 '기대' 조차 못할 만큼의 무게여서 체념했었던 걸까요. 아니, 어쩌면 늘 이상향이나 꿈같은 헛된 상상을 기대하는 편인 제가 헛물켜는 바보일지도 모르겠고요. 


할머니가 당신에게도 물려준 것 같았거든.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살림밑천이어야 하는 큰딸이어서 희생을 '더' 원하던가요. 아니면 말귀 잘 알아듣고 군소리 없고 손 빠르고 셈에 강하고 삼촌들보단 똑똑하니까. 외할머니의 파트너로 살지 않음 안됬었던 걸까요... 그녀에게도 당신의 존재가 사랑을 주며 키워내야 하는 '아이'였기를 바랍니다. 


'어른'스러운 '아이'를 바라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잖아. 


어른스러운 큰 딸로 자라야 했던 그 자연스러운 현실이 비참한 부조리극 같이 느껴졌나 봐요. 

물리적인 지원이나 마음 씀씀이는 삼촌들에게 더 베푸신 것 같았죠. 베풀면 뭐 나오나. 정작 안 베푼 당신에게서나 뭐 나오면서... 그러니 저로선 당신의 옛이야기를 가끔 접할 때마다 슬펐습니다. 정작 그녀를 도와줬던 건 당신이었을 텐데. 살림 챙김과 경제적인 짐 또한 당신과 나누었다는 건 반박할 수 없는 팩트 아니던가요. 부디 이런 내 모든 생각이 꼬여버린 오해이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일 년에 치러야 하는 명절들은 또 어떤가요.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망자들을 위한 이벤트 말입니다.

제사 음식 만들기는 결혼 이후 당신에게 주특기가 된 것 마냥 기본 장착 템이 되었잖아요. 타인을 위한 삶을 희생이라는 숭고함 혹은 어떤 강요된 감정으로 포장해 버리고 마는 빌어먹을 동방예의지국 특유의 그 이벤트를 한껏 치르셨죠. 


그런 당신이 안쓰러워서 자연스레 나도 거들기 일쑤였었죠. 정말 도와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머리 커질 무렵이면 아주 가끔 아빠한테, 작은 아버지께, 심지어는 당신에게조차 그 망자 이벤트 전후로 볼멘소리를 하며 대들기도 했었잖아요. '철없이 덤빈다고' 생각하셨으니 결국 나만 '예의 없이 이기적인 년' 되기 일쑤였지만... 그 '당연한 이벤트'가 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서 뺏어서 버려주고 싶었어. 그거 아니고도 챙길게 수두룩 밥상이었던 당신을 보았으니까....


내겐 소중했지만 그만큼 아팠습니다. 

밤늦게 그릇 정리하면서 함께 맥주 마시곤 했잖아요. 그때 잠깐씩 흘리곤 했던 이야기가 왜 슬프게 느껴졌는지 점점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여자'고 '장녀'였고 '누나'였으며, 장남의 '큰 며느리'였고 '큰 형님'이었고 '아내'이자 두 남매의 '엄마'로 충실해야 살아졌다는 것을. 그 역할이란 쉽게 덜어낼 수도 떨쳐낼 수도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의 이름 석자 생각할 겨를 없이 
'내 시간'을 부정해야 겨우 살아졌다는 것도.  



설거지의 달인, 청소의 달인, 집안일의 달인, 그 모든 달인들이 그냥 생긴 '당연'한게 아니라는 걸 이젠 압니다..

 

  

외할머니는 시장에서 생선을 파셨다면서요.   

그녀도 만만찮은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살았었다는 걸 모르진 않습니다. 딸린 아이 셋의 편부모 가정의 가장이었을 테니. 그럼에도 저는 참 이기적이죠. 역시 아쉽고 아프고 슬픈 건 어쩔 수 없는걸요. 당신이 7살 때부터 아궁이에 불 떼 가며 냄비에 밥 해 먹고살았다고 했을 때, 사실 믿을 수 없었어요. 거짓말 같았거든.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맞는 것도 같아. 현재의 당신을 보면.. 단련된 집안일과 꼼꼼한 수완. 당신의 멀티태스킹적인 액티비티의 노련함은 어쩌면 그때서부터 훈련된 것일까 싶어서 말이죠. 역시 사람은 지독한 훈련과 혹독한 환경에 더 소스라치게 무서울 정도로 적응하려 애쓰는 동물임은 분명한 듯해요.  


막걸리를 좋아한 친할머니는 손도 넉살도 퍼주는 인심도 크다 했었죠. 

그 인심이 당신에게도 컸었나요. 아니. 안 그랬던 것 같아. 잔칫상이든 제사음식이든 술상이든 허구한 날 당신은 만들어내야 했었다면서.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어른이 하는 말은 그냥 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면서요. 


'그때 좀 하기 싫은 건 안 하겠다고 댐 빌걸'이라는 말을 뒤늦게야 농담 삼아 당신과 주고받았을 때. 엄마... 기억해? 나 그때 말이죠. 당신의 그 담담한 고백을 들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왜 그렇게 울었을까. 이놈의 기분부전증에 가끔 찾아오는 과대망상증이란.. 그때부터 생겼었던 걸까. 아니면 은연중에 나 이외의 사람들을 모두 미워하기 시작했던 걸까... 고작 그래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슬픔을 감추고 사는 당신 대신 울어주는 것 외엔 딱히 없는데 말이죠.  


부업이든 주업이든 돈이라는 걸 벌면서도 집안일을 해내고 육아 3종 세트 (보육/훈육/양육)를 주 양육자로 해내며 제사음식도 거뜬히 치러내는 당신을 나는 뭐라 불러야 할까. 이런 종족은 진짜 슈퍼맘? 이 단어를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은 저는 이제 서른 중반이 돼서야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담담히 인정하게 됩니다.  



날 선 칼바람에 원치 않게 등 떠밀린 당신 같았거든.  



내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결혼하지 않았을까. 

덜컥 아이가 생긴 탓에 불확실한 사랑에 마침내 마침표가 찍히듯 후다닥 해냈던 결혼이었을까요. 막상 하고 보니 이건 웬걸. 신혼여행은커녕 천 기저귀 빨아가며 큰며느리 역할극을 혼수 삼아 시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한 신혼생활에, 고소한 깨는 없고 소금처럼 짭짤한 맛만 진하지는 않았었나요. 


징징 울어대는 당신의 껌딱지였던 나와의 육아시간, 늦은 시간까지 야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늘 고단했었는지 조용했던 아빠. 막걸리를 좋아하셨다던 손이 큰 친할머니. 해내야 하는 집안 살림들과 식구들 돌봄과 동시에 감정 받이 등등. 없는 집구석인 친정에서 나왔더니 더 큰 복병이 숨어있을 줄이야. 악쓰고 싶어도 '난 울지 않는 씩씩한 캔디'라며 도닥이며 살아냈던 맥락 없는 서사의 주인공은 아니었을까.. 


미안해요. 이렇게 제 멋대로 우스운 어리석은 생각을 가끔 하며 자랐나 봐요. 그럴 때면 내 존재 자체를 괜히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고 말이야. 이상하게도 정말 내 존재가 미안해졌으니까... 


 없는 집구석. 그럼에도 당신의 비빌구석은 할머니 한 명이었음을...알아요. 나의 비빌구석이 여전히 당신 뿐인것처럼..



당신과 맥주를 마실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내게도 흘러서... 정말 다행입니다.  

물론 단편적이었지만요. 엄마의 과거를 훔쳐볼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아팠지만 또 그만큼 좋았습니다. 내가 몰랐던 당신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네 할머니가 생활력이 강하셨어. 그래서 뭐든 아껴야 했어. 따뜻한 물 잘 나오고 난 화장실 두 개 딸린 집이 소원이었어."
"따뜻한 물 좀 받아달라 하지 그랬어. 바보같이..." 
"고무장갑 끼고 너네 둘 천 기저귀 빨고 치우고.. 그러다 보면 하루 가다갔어. 지금 육아? 우습다. 용 된 거야"  
"나 용 됐네..." 
"아빠는 야근한다고 늦게 오고. 난 너네 둘 보랴 제사음식 만들고 또 기저귀 빨고.. 그랬었어 그땐..." 
"왜 혼자 다 했어. 고모들 뭐했어. 제사 주인공은 아빠네 가족인데 왜 엄마가 다 해야 하는 건데." 
"그런 게 있어. 어려서 몰라 넌." 
".... 응. 나 어려서 몰라. 근데 그런 게 정말 어딨어? 없어 그런 거! 아빠. 할머니. 고모들... 다 싫어. 못났어. 진짜 미워..."   
"네 할머니 속은 오죽했겠냐. 우리 엄마가 나한테 그랬었는데... 너 같은 딸 낳으면 자기 심정 알 거라고."  
"..... 할머니가 엄마 공부시켰다면.. 엄마 하고 싶은 거 그때 했으면... 내가 안 생겼으면.. 어땠을까."
"지금 이렇게 맥주를 마시고 있겠냐! 쓸데없이 또 헛소리 하기는" 
"풉... 그러게. 말이 또 샜네..."
"...... 애쓰지 마라. 별 거 없다. 사는 거. 니 하고픈 거 하면서 살아" 
"엄마.... 그 말 돌리기 없기. 나.... 정말 멋대로 살 거야. 진짜.."  
"적당이 해. 이것아."
"풉... 알겠어. 적당히. 접수." 




시어머니 치매 병시중할 때도 당신은 늘 씩씩해 보였습니다.  

애지중지했다던 할머니 딸들이 아닌, 남의 딸인 당신에게 결국 의지했었잖아요. 그때 난 은연중에 느꼈던 것 같아. 당신은 훗날 내게 좀 더 편안하게 의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암묵적인 어떤 마음이요. 


남동생 컴퓨터 사 주라고, 늘 남동생 안부와 미래 걱정, 그리고 아빠 걱정을 줄기차게 해댔던 할머니네 댁에 방문하고 나면 엄마는 다녀와서 더 나한테 괜히 잘해주더라. 꼭 끌어안아도 줬었잖아요. 왜 그랬어요. 나중에 나 잘 써먹으려고 그랬나? ^^ (맞아요 엄마 써먹을 수 있을 때 써먹는 거야. 자식새끼 다 필요 없다니까... 그때뿐이야. 딱 키우는 그때. 크면 잘났다고 지 혼자 큰 줄 알고 생지랄을.... 요즘 나처럼...) 

  

당신에게 고백할 게 하나 있습니다.

지금 살고 계신 그 집. 우리가 같이 살았었던 그곳에서 친할머니가 결국 돌아가셨을 때요. 나.. 사실은 그녀에게 몹쓸 말을 했었습니다. 어설픈 유교사상이 여전히 암묵적으로 절어 있는 이 세계에서는 어린 자가 어른에게 해서는 안 될 가당찮은 말이었었겠죠. 아마 천륜 지옥의 옥황상제에게 끌려가면 저는 아마 댄박에 '탈락'감이었을지 모르겠어요. 진짜 내가 뭐라고... 내 멋대로 그랬다니까..



"할머니 듣고 있어요? 들려요?"  
"....." 
"우리 엄마 이제 그만 힘들게 하면 안 돼요? 당신 식구들의 하인 아니라고요... 나도 알 건 알아요"  
... 
"죽을 거면……어서… 그냥 그래 줄래요. 미안... 이렇게 빌게요." 





도시락을 싸면 늘 내게 쪽지에 작은 메모를 남겼던 당신을 기억해요.  

물론 기억은 주관적이지만 말입니다. 엄마. 예전에 당신과 손글씨를 주고받았던 그 기억 덕분에 여전히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 그 대단한 마음과 애틋한 정성 때문에.. 당신이 외할머니에게 받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오히려 내게 해 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내게 세차게 화를 낼 때도, 날 위해 같이 울어줄 때도. 신변에 위험이 닥쳤을 때도 곁에 있었던 건 바로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당신이 몰래 이불 뒤집어쓰고 있었을 때. 사실 나. 그 모습을 훔쳐봤었습니다. 속내를 아무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그 짙은 외로움을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내가... 나도 정말 요즘 그런가 봐 엄마. 그래서 이 말, 당신에게 이젠 자주 하고 싶어 집니다. 사실 제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죠. 


 하고 싶은 게 보이면, 하면서 살아도 괜찮아요. 참지 말고 
가짜로 애쓰지 말고 진짜로 살아봐요. 



이제는 예전처럼 계산대 앞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덜하잖아요.

자식새끼들 버젓이 다 컸고 지들 갈길 가고 있잖아. 최연소 교수가 돼버린 언제나 당신의 든든한 자랑거리인 아들 녀석과,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듯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살기 일쑤였지만, 어쨌든 이젠 번듯한 집과 가정을 지닌 당신 큰 딸. 꽤 잘 컸잖아. 그러니 이젠 걱정이라는 것, 좀 덜 해도 괜찮아요. 


그러니 당신도 이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면서 살아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어 지지만, 한편으론 말해놓고 나니 겉만 잘난 이 마음에 말은 참 쉽게 내뱉어지네요. 일하다가 아기들 아프다고 전화라도 받으면 그 즉시 돌봄 지원을 위해 SOS를 치고 마는 '지만 아는 이기적인 딸년'인데. 그러니 당신이 정작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의 여유는 여전히 쉽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이런 말을 곧잘 하다니...(죄송해. 그렇지만 어떡해. 낸들 쌍둥이 낳고 싶어서 낳았나...) 

  

엄마의 엄마들이 생각나면 나도 모르게 하늘 한번 쳐다보며 중얼댑니다.  

많이 미워해서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런가 봅니다. 이제는 들리지도 않고 대놓고 말을 건넬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말이죠. 어리석죠... 늦은 후회는 언제나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정말 없어서 그 마음이 흘러넘쳐 기어코 눈시울이 붉어지는 당신의 순간을 발견하면 나도 같이 눈이 새빨개지려 합니다. 그리곤 어느새 어떤 문장을 입술 밖으로 기어코 꺼내 놓기도 해요.


미안해. 보고 싶어
이 말을 대신 전하는, 내가 여기 있어요.. 


하늘을 쳐다보다가 요샌 자주 중얼대는 버릇이 생겨났어요. 누가 보고 싶을때면 더더욱 그렇게 되나봐. 


무거웠던 당신의 지난 발걸음들이 점점 더 가벼워지기를 바랍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의 엄마들을 미워했던 무거웠던 이 마음도 이젠 조금씩 가벼워지기를 바라요. 그래서일까. 닿을 수 없는 또 다른 세계 어디쯤에 있을 '엄마의 엄마들'에게 난 또 말을 걸어 봅니다. 


'잘 흘러가고 있어요.. 지금.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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