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Jul 06. 2018

지갑 저기 있어. 너 다 써.

그 와중에도 밥과 돈을 생각했던 그 마음을 기억합니다. 

편지 둘) 당신이 나보다 덜 아프기를 바라. 


당신이 아프면 내가 울어. 그것만으로도 삶이 형편없진 않을거예요. 그쵸. 그렇다고 믿어봐..





병원에 가게 되면 늘 생각나는 장면이 있어요. 

바로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오열하는 제 모습입니다. 과거란 쉽게 지울 수도 지워지지도 않나 봐요. 마주하면 여전히 잔흔 같은 감정이 밀려오는 걸 보면 말이죠. 당신이 4번째 수술을 마치고 6인 입원실에 다시 들어오던 날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마취가 깨지 않았었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죠. 느낌 탓이었을까. 수척하고 창백해서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을 바라보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쳐다보고 있을 수 없었죠. 그렇게 뛰쳐나간 장소가 바로 병원 화장실이었어요.  


먹었던 음식물을 전부 게워냈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내 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라는 식의, 정말 말도 안 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요. 어찌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나 봅니다. 속이 꽉 차서 더부룩해지더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애써 먹은 것들을 전부 토해내 버리고 있었던 거예요.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끓는 냄비에서 펄펄 끓어 넘치고 마는 물처럼 설명할 수 없는 좋지 않은 감정이 내면에서 밀려드는 기분이 들면요. 이상하게도 속이 몹시 더부룩해지더라고요. 그리곤 곧잘 안에 있는 것들을 다 뱉어 버리고 싶은 욕구가 들어요. 지금은 그 악취미가 덜 하지만. 어쩌면 그날도 무언의 감정에 휩싸여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혼자서 토해내듯 그렇게 울었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환한 복도도 어떤 이들에겐 어둡게만 보여요. 내가 그때 그랬던 것 같아. 당신의 병원 그리고 나의 그 때 그 날의 병원도...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별거 아닌' 것이었죠. 

그렇지만 제겐 별 거 같았습니다. 4번이나 같은 부위의 수술을 해내고도 일상 속 쓰라린 통증을 참다 참다못해 결국 병원으로 달려오다시피 한 당신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으셨죠. 큰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버리는 당신의 그 속내 혹은 식구들을 위하는 어떤 배려심인가요. 그게 무엇이든 이상하게 저는 당신의 그 마음이 슬펐습니다. 애처로웠고 미련 맞아 보였고 때로 원망하기도 했죠. 미안해요. 대신 아파주지도 못하는데 원망이나 하다니... 


"이게 뭐야. 그러니 좀 빨리 병원에 올 걸 그랬잖아.." 
"괜찮아질 줄 알았지." 
"안 괜찮으니까 수술하는 거잖아. 그니까 몸을 너무 혹사시켰어.. 왜 그랬어." 
"내가 안 하면 누가 해" 
"... 말하면 다들 도와주잖아. 하여튼 엄마 손 아니면 다 안될 줄 알지" 
"말 안 하면 안 도와주잖아. 그리고 도와주려면 제대로 도와주던가." 
"... 그랬네... 안 물어봤네.... 근데. 나 진짜…아 씨…" 
" 별 일 아닌 거 같고 괜히 난리야. 됐어. 걱정 마. 보험 들었고 끄덕 없어." 
"..... 속상해 죽겠어 정말.. " 


나에게 당연했던 것이, 사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게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당신을 볼 때마다 묘하게 억장이 무너졌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안함에 등 떠밀려서였을까요. 아니면 죄책감 혹은 그 비슷한 어디쯤의 감정 때문에. 여하튼 그랬어요. 혹시 그런 적, 당신도 있었을까요. '아 이게 내 바닥인가' 싶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진해지면 말이죠. 마음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하물며 내면이 약해진 상태에서라면 누군가는 '죽음'이라는 키워드까지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이 무거워지기도 하겠죠...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을 감추는’ 당신의 그 단단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걸 배울 수 있으면 배우고도 싶었죠. 그래서 요즘 나 또한 제법 감추는 걸 배워가는 걸지도 모를 테고 말입니다. 여러모로.. 



"많이 아파?" 
"... 지겨워. 이제 수술받는 거..." 
"아....." 
"… "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다 사줄게. 말만 해.!" 
"...."
"퇴원하면 다 먹자. 엄마..." 
"얼른 밥 먹고 와. 칼퇴하면서 눈치 보는 거 아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아냐. 눈치 안 봐.... 괜찮아... 그리고 엄마. 나도 돈 있어. 벌잖아. 그니까 돈 걱정하지 마." 
"지갑 저기 있어. 너 다 써. " 


그 말을 듣자마자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끝까지 겨우 붙잡고 있던 끈을 탁 하고 놓아 버린 기분이었어요. 그 짧은 한마디에 갑자기 그 자리에서 난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죠. 덩달아 당신의 끈도 탁 풀려 버린 걸까요. 눈물이라곤 찔러도 안 나올 것 같았던 나의 단단했던 당신이 그렇게 같이 울어버릴 줄이야. 


여기, 이제 오지 말아요. 되도록 우리 가지 말아요. 그러기를 늘 바라..


위로를 '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받아' 버렸습니다. 

힘들게 쪼그려 자고 샤워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출퇴근을 하는 나를 위로했던 당신은 이미 '부모'의 삶을 사는 데 익숙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당신을 두고 감히 난 '어른'이라는 명패 달고 어깨에 힘주고 가오 세우며 마치 내가 더 커다란 힘이 있는 것 마냥, 당신에게 같잖은 위로를 건네려 했었다고요... 참 모지리에 치기 어렸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미안해요. 정말... 


별 일 아니라고. 울지 말라고. 그리고 지갑 저기 있으니 가지고 나가서 김밥 사 먹으라고 말하였었나요. 엄마. 어쩜 그래요. 그 와중에 늘 당신이 생각해야 하는 밥 생각. 그게 지긋지긋했어요. 인간은 가축이 아니니까 좀 안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엄마… 그런 쓸모없는 생각을 병원에서 참 자주 했었네요. 그때는..



그놈의 밥이 뭔지. 먹고사니즘이 뭔지요. 


울어주는 것 밖에, 내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수술 전날은 둘이 울고, 수술하고 난 이후엔 화장실에서 또 혼자 울고. 퇴원하는 날도 울고. 미안해요. 너무 많이 울어서. 지겨웠었죠. 내 우는 모습. 나도 지겨웠는걸..


아빠도 남동생도 심지어는 당시 결혼을 약속한 그이조차도. 우리 두 여자를 완벽히 곁에서 도와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아니 못했단 표현으로 정정합니다. 그들의 사연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엄마. 우린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나 봅니다. 병원으로 가야 하는 순간이면 언제나 당신 곁엔 내가, 내 곁엔 당신이 있었죠.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휘청거리는 다리 끝에 서 있을 때 유일하게 바라봐 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바라보고 싶지 않아도 어느새 바라보게 되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한 번은 잠든 당신 바라봤었어요. 눈을 감고 있는 그 얼굴 때문에 이상하게 또 숨죽이며 울었다니까요. 울고 울고 또 울고. 이토록 모자란 나는 엄마에게 어떤 쓸모일 수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뭐 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난 당신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지만 난 지금 그러지 못하잖아. 오히려 신세를 지면 졌지. 그렇지만 대게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큰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하하)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을 뿐 은연중에 어르신들은 '딸'의 존재를 그리 취급하는 듯해요. 외할머니도 당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서, 그래서 속으로 많이 싫어했다니까요. 한 번도 제대로 뵌 적 없는 분께 미안하게도... 살림밑천이어서 힘들었을 당신의 그 시절을 알 것만 같아서 그랬습니다. 또한 가정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당신에게 생기고 나서도 '엄마 다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야 비로소 우리 세 사람이 큰 불편함 없이 일상을 지낼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러나 사실 엄마. 이젠 알 것 같아요. 우리 집의 편안함은 말이죠. 


어쩌면 당신의 무거움과 외로움으로 맞바꾼 대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렇지 않을까.. 미안 또 헛소리 하는 걸까. 다만 '엄마 다움'을 어느 새부터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아서 당신에겐 이제 그게 미안한 거죠. 그래도 다행이죠. 난 미안해할 줄 알아서. 때로 이 삶에서 누군가들은 미안한 것조차 모르고 받기만 합니다. 받는 게 당연한 사람들에겐 그게 정말 당연한 줄 알아요. 고마워할 줄 모르죠. 그런 사람들은 참 얄궂고 미워요. 그래서 저의 세계에선 언제나 '아웃'입니다. 


별일을 늘 감추고 살아야 했던 당신의 그 무게를 큰딸로 자라면서 어느새 짐작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내가 '엄마'라는 역할을 시작하면서부터 더더욱. 당신이 느꼈을 그 반복되는 삶의 무거움과 지겨움, 그리고 사회적인 코르셋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벗어날 순 없으니 인정하고 씩씩하게 살아간다고 스스로 속이며 살아도 철저히 혼자 남겨지게 되면 어딘지 모르게 끔찍한 어떤 감정이, 당신은 들지 않았던가요. 

 

제 멋대로 말하고 행동해서 당신 마음에 생채기를 냈던 시간들이 요즘 얼마나 생각이 나던지요. 

단 몇 주였지만, 엄마. 역시 경험의 축적이 그 사람의 삶 자체인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 출퇴근하면서 당신을 간호하던 그 시절 덕에 지금의 제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고요. 간호일기를 적었었거든.. 그게 나 자신에겐 꽤 큰 힘이었고 유일한 내 시간이었고 당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그 덕에 지금 시간이 지났지만 여기에 이렇게 용기 내어 당신에게 글을 쓰게 된 걸지도 모를 테죠. 


멍들고 아프고 시들어져가는 순간이 이젠 덜 해졌음 좋겠어. 아니 이젠 없다고. 믿으면 정말 그렇게 되기도 하죠. 



나는 이제 좀, '덜' 울고자 합니다. 

대신 '더' 많이 웃어주려 해요. 당신에게. 그래야 우리가 좀 더 웃을 것 같아서. 그래서 요샌 연습 중입니다. 훈련을 하다 보니 근육도 생겼어요. 나 요새 꽤 잘 웃는 편이죠. 다시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대면하지는 않을 거라고. 마음 단디 먹었거든.. 물론 나도 사람이라 가끔은 (아니 요즘은 다시 종종) 힘들겠지만, 당신에게 전화를 걸며 안부를 물으면 또 괜찮아지니까. 우리가 이렇게 동시대를 살아있는 그 순간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면 당신의 손이 결국 내게 와 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곁에서 서로를 지켜봐 주는 여전히 든든한 존재가 되어 보호할 테니까. 엄마로서 여자로서 이제는 같이 이 시간들을 흘러가면서, 다만 지난 몇 번의 차가운 겨울과 아프고 시린 몇 날의 밤을 서로 각자 보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가오는 또 다른 ‘오늘’이라는 시간을 그저 순응하며 현존하고 있는 우리들이기를. 엄마. 이제 제게 '내일'은 없어요. 그렇게 살게 됐어요. 다만 있는 힘껏 '오늘'을 살게 된 저로서는 당신께 지금 이 순간 이 목소리를 건넬 뿐입니다. 


  아프지 말아요. 
서로 보이지 않는 그 순간에도..(약속)
작가의 이전글 어디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