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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20. 2018

삶의 가이드라인을 잃었을 때.

어쩌면 잃고 나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들 

편지 넷) 고마워요 떠나지 않아줘서. 그치만 미안해요. 떠날 수 없게 해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더라고. 당신이 흔들리면 나 마저도 흔들렸던 그 때...





안 주거나 굳이 안 받아도 될 상처를, 사람들은 살면서 너무 자연스레 주고받을 때가 꽤 많은 것 같아요. 

당연한 듯이 말이죠. '다 그런 거야'라는 어른들의 말로 인정되는 것들. 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를 텐데. 이왕이면 덜 상처받고 덜 아플 수 있음 최대한 그렇게 사는 게 좋을 텐데 말이죠. 그렇지만 그건 말이 쉬운 소리라는 걸 압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어떤 특별한 시간들을 거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저도 이젠 알 것 같은 나이를 먹어가나 봅니다. 


그럼에도 굳이 주고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받거나 주게 될 때면요. 사람들은 내가 아닌 어떤 누군가를 필요로 하진 않을까요. 난 여전히 그렇던데. 당신도 그런 적이 있었을까요. 참고 참다가 입 밖으로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묵언들. 결국 입 안에서 맴돌다가 주저하게 되는 문장들, 절대 함부로 건넬 수 없는 어떤 마음들 말입니다. 


'제발..'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누군가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죠.


어린아이들의 행동은 누군가의 미러링(Mirroring) 이라던데

목소리, 말투, 눈짓, 몸짓, 행동 등 내 세상 안으로 들어온 어떤 것들은 대부분 스캔해서 제 것으로 만들어 봤던 것 같아요.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누군가 모방하거나 동경하거나 그대로 따라 하고 싶다는 건 그 세계 혹은 그 상대를 향한 호의적 관심, 혹은 사랑이 없다면 스스로 움직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요. 


당신이 '내 엄마'라는 사실을 좋아했었습니다.

이 다부지고 단단한 사람이 나의 '엄마'라니. 모든 면에서 퍼펙트 '하게 보였었던' 그때의 당신을 자랑삼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었다니까요. 참 축복받은 거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커다란 선물이잖아.. 내가 한때 당신의 자랑이 아닌, 말하고 싶지 않거나 숨기고 싶은 대상이기도 했었던 것과는 달리 말이죠.   


사람이란 세상에 태어나서 스스로 보고 느낀 그대로 자신의 세계에서 다시 복기해 보며 그렇게 '경험치'를 쌓아가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타고난 선천적 성정보단 노출된 환경 속 후천적인 환경들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편인 저로서는요. 사람 사는 게 어찌 보면 다 경험의 연속이고 그 경험의 시간들이 '좋게 느껴지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엄마. 사실 어렸을 때의 마냥 좋았던 건 조금씩 사그라 질 때도 있더라고요. 


당신은 내 삶의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이드라인도 박살 나는 건 한 순간일 수 있겠구나 라는 걸 왜 그때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요. 더 일찍 알았다면 당신의 쌓여만 가는 외로움과 더불어 갱년기의 혹독함을 좀 더 공감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나였을까요. 비빌 구석 못 되는 친정의 빈곤함과 피로함, 요즘 시대에 이게 말이 되냐 싶지만은 뭐 따지고 보면 생리대가 없어서 학교에도 못가는 친구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인걸요. 하물며 당신한테 바퀴벌레가 식구이고 쥐가 일상다반사인 할머니의 그 공간에서 당신은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당신에게도 도망칠 수 있는 공간 혹은 사람 혹은 뭐가 됐든 비빌 구석이라는 게 있기를 자연스럽게 바랐던 것 같아요. 커가면서는. 정말 그랬던 것 같아. 왜냐고? 왜 그랬을까.. 


당신이 무너지면 나도 같이 무너질 것 같아서. 
절대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나의 가이드라인이었으니까



심장이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뛸 수 있다는 걸 느꼈나 봅니다. 

열네 살 때였나. 아무튼 교복을 입고 있던 때는 분명해요. 안방에서 당신의 언성이 높아지며 급기야 쿵하는 소리들이 연거푸 들렸죠. ’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의 뜻을 학교에서 배웠어도, 다 의미 없는 개소리 같았어요. 그땐 그냥 그랬어요. 흔한 게 부부싸움'이라는 텍스트는 당시 제겐 완벽한 오타였던 셈이죠. 두 사람의 작고 큰 부부싸움을 겪어낼 때마다, 동생 손을 꼭 잡고 식탁 밑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으니까. 무서워서 떨기만 했던 것 같아. 사실 마음속에는 뭔가 뜨거운 게 가득 차면서 심장이 그렇게 뛸 수 없더라고요. 


어둠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어떤 뜨거운 것. 그게 근데 좋지 않더라고... 별로 만들어 내고 싶지 않은 것들이죠. '트라우마'는.



마음을 죄여 오는 트라우마란, 그렇게 '흔한 기억'들로부터 생겨나나 봅니다.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면 넌 누구랑 살 거야?" 
"몰라. 그냥 무서워. 언제 문 열어 누나." 
"기다려봐.. 조용해지면..." 
"누난 누구랑 살 건데" 
"나야 당연히.. 엄마… 랑..." 
"그럼 나도 같이 살래" 
"근데... 아빠는 어쩌지." 
"아빠도 같이..." 
"...." 



전혀 다른 낯선 모습이었답니다. 당신은 토끼눈이 되어서 바깥으로 뛰쳐나갔고 아빠도 그 뒤를 따라 나갔어요. 바깥에 비도 오지 않았는데 옆에 놓인 우산을 들고 말이죠. 그때 나, 서둘러 작은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었어요. 우리 세 가족보다 더 챙기는 것 같아서 어린 마음에 참 미워했던 그의 원래 가족에게 말이죠. 대안이 없었으니까요.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떼려 치워야지 어쩌겠어요. 다만 이 말만 연신 했던 것 같아.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그 말 참 하기 싫었는데. 그러나 내가 가끔 할 수밖에 없었던 말.. 무슨 일이 정말 벌어질 것 같았으니까. 우산을 들고나간 게 아무래도 영 불안했으니까.. 


당신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이미 내 가이드라인은 없어져버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그 무서웠던 몇 밤들 '덕분에' 반대로 이젠 그냥 스스로 만들어보자 싶었죠. 마치 누군가 날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존재가 돼보자는 무식하게 용감하기만 한 어떤 마음 말입니다. 의지하고 싶지 않았고 이미 의지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구나 싶었고. 반대로 당신이 언젠가 또 약해지거나 없어지고 싶을 때 반대로 내게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하고...


삶의 가이드가 새로 고침이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잃고 나니 알게 되는 것처럼.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가끔 악몽이라도 꿀 때면 그때의 잔상이 떠올라요.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쓸데없이 말이죠. 나와 남동생을 안심시키려는 듯 연거푸 괜찮다는 목소리의 애쓰고 있는 거짓말은 당신의 묘한 미소와 상기된 표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었죠.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그 새하얀 카디건의 흙 자국과 장미꽃 같은 모양.. 내가 제일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중 Top 3 에 드는 그 장면. 물론 그 이후론 볼 수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엄마는 타임머신 타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없어. 그런 거. 지금이 제일 좋아." 
"왜 없어? 할머니랑 있을 때 안 좋았어? 난 엄마랑 있을 때 좋았는데... 뭐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겨울이면 찬 물에 씻고 바퀴벌레 나오는 집에 살고 똥 푸다가 똥독 걸리기 일쑤고.. 기억하기 싫어." 
"... 고맙네 엄마."
"뭐가 또" 
"그냥. 난 그런 기억 안 만들어 줘서..." 
"... 우리 엄마라고 만들어 주고 싶었겠냐." 
"....."
"니들 거의 다 키운 지금이 제일 좋아. 허리 통증만 빼고. 얼마나 좋냐. 깨끗한 집. 화장실 두 개. 지금 집.” 
"그러게… 지금이 제일 좋네. 맞네. 지금이 좋은 거." 


가이드라인은 이제 없어졌지만 그로 인해 생긴 것들이 있어요. 어떤 소신, 신념, 가치관 같은 '나만의 것'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며, 또한 내 안의 살아있는 '앨리스'를 최대한 죽이지 않고 이번 생을 지내보기로... 합니다. 미안해요 엄마. 당신이 바라는 지금의 내 모습, 형태, 행동에서 자주 어긋나는 요즘의 나라서. 물론 바라는 지금의 내 모습을 최대한 죽이지 않기로 결심했어도 이렇게 뿜어낸 새치 같은 말에 담긴 굳건한 마음 한편으론 여전히 무섭기도 합니다.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난 다 포기하고 살았는데'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진짜 중요한 게 도대체 뭐니 가족 생각은 안 하니'라는, 여전히 당신의 이런 목소리를 종종 듣고 사는 저를 발견하면 말이죠. 무섭고 두려워요.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을 죽이지 않고 사는 나와, 한때 죽이고 살았던 당신.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어서. 어느 쪽이 더 기쁜 삶인지 정말 모르겠어서.  


정답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선택한 길에 '빛'이 좀 더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딱 그 마음만 간직해 보는 거죠...



그럼에도 내면에 잠들어 있는 상처도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음으로 인해 엉뚱한 형태지만 어쨌든 삶 속에서 소화시킬 수 있는 나름의 마음 챙김 방법을 찾아서 행하는 요즘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큽니다. 


내가 '엄마'가 된 지금, 당신의 그때를 종종 떠올리게 될 때마다 알 수 없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찾아오는 건 어쩌면 이런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마워요. 떠나지 않아줘서.
그렇지만 미안해요. 떠날 수 없게 해서. 


혼자도 좋고, 어쩌면 우리 두 사람 같이도 좋고. 엄마. 우리 여행을 가야겠어요. 그렇죠. 사실 나.. 요새 정말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지거든. 우리가 좀 더 자유로워지면 그땐 그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상상해 봤습니다. 오늘 떠나는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이나 착각은 언제나 '자유'로우니 까요. 


당신과의 드라이브를 상상했어요. 그냥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고마웠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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